비발디와 '비발디의 고아 출신 바이올린 제자'… 의외로 빨려든다

아르떼 2026. 5. 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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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
영화 '비발디와 나'

국내에 개봉된 영화 <비발디와 나>의 제목은 요즘 세대 말로 ‘어그로를 끄는 것’이다. 영화는 비발디와 그다지 상관이 없지만 비발디의 음악만큼은 주인공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정체가 애매하다. 원래 제목은 ‘프리마베라’, 곧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다. <비발디와 나>란 제목을 들으면 비발디와 어떤 여인의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건 마치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같은 지독한 예술적 사제의 남녀 관계를 그린 것이리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그래서 좀 놀랍다. 오히려 의외의 발견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생각지도 않게 재미도 있다. 영화의 내용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것은 티치아노 스카르파 원작 소설의 제목이다. 『어머니, 왜 나를 버렸나요』이다.

비발디에 대해, 특히 비발디의 시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1716년 베네치아의 한 고아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에서는 수천 명의 사생아, 가난한 여자 고아들이 수녀처럼 길러졌고 그중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이들은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다. 매우 인간적인 미담처럼 들리지만, 영화는 그 안에 담긴 시대의 야만성을 주저 없이, 낱낱이 드러내게 한다. 이 소녀들 아니, 다 큰 여성들이 고아원에서 음악을 배우는 것은 후원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고아원의 시스템으로서는 귀족의 돈을 합당하게 받아 내는 데 있어 실력 있는 연주회야말로 가장 확실한 '후원회의 밤'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단원들을 혹독하게 연습시키고 착취한다. 비발디 같은 유명 작곡가를 선생으로 '싸게' 데려오려 한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피에타 고아원에서 음악을 40년간 가르쳤다. 그는 사제이지만 음악으로 봉직을 수행하는 신부이다. 그의 최고작 <사계>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시기에 작곡된 것이다. 소설 원작, 그리고 영화는 이 기간에 벌어졌을 법한 일을 상상하며 가상과 윤색의 이야기를 전개 시킨다. 비발디의 애제자는 누구였을까. 그녀와 비발디 사이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성적 긴장감은 전혀 없었을까. 이건 또 다른 <카핑 베토벤>(2006) 같은 영화일까. <카핑 베토벤>에서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는 귀가 멀어 가고 착란 증세에 자주 빠지는 베토벤(에드 해리스)을 위해 그가 만드는 곡을 악보에 옮기는 일을 한다. 안나 역시 뛰어난 음감의 소유자이다. 안나는 영화 <카핑 베토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비발디와 나>에서도 주인공은 비발디(미켈레 리온디노)가 아니다. 그의 밑에서 제1바이올린을 맡은 체칠리아(테클라 인솔리아)이다. 문제는 고아원의 방침인데, 누군가 고아원의 여성에게 청혼을 하면 (대체로 몸값을 내고 사가는 경우지만) 연주를 포기하고 고아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아원 여성들은 그것을 감옥에서 나와 또 다른 감옥으로 가는 일로 받아들인다. 체칠리아 역시 정혼자가 있는 상태이다. 남자는 귀족 가문 출신의 대위 산페르노(스테파노 아코르시)이며 곧 전쟁이 끝나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은 1714~1718년까지 전쟁을 벌였다) 돌아올 예정이다. 체칠리아는 고아원 원장의 돈을 위해 그에게 팔려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처녀성 검사를 해야 하는데, 체칠리아는 결혼보다 음악을 선택하겠다며 채소 장수 주세페(안드레아 페나키)에게 의도적으로 몸을 내어 준다. 체칠리아는 차라리 전쟁이 계속되기를 고대했을 정도다. 체칠리아가 처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원장과 부원장은 체칠리아를 독방에 가두는데, 그런 그녀에게 빵과 물을 가져다주는 친구 카테리나(레베카 안토나치)는 그녀에게 다시 같은 말을 한다. "넌 음악을 계속하게 될 거야. 근데 그것도 너에겐 또 다른 감옥이 될 거야."

결국 <비발디와 나>는 여성에게 유난히 혹독했던 중⸱근세 사회, 오로지 돈과 계급으로 여성을 지배하고 처녀성 검사까지 하게 했던 야만의 시대에, 주인공 체칠리아가 분연히 일어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 분투하는 걸 보여주는 '여성주의 영화'이다. 비발디는 소도구이며 비발디 음악은 BGM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가혹한 시대에 인성을 회복하고 그나마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음악이고 예술임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의 안내자이며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간신히 연대한다. 비발디는 체칠리아가 고아원을 탈출할 것을 예감하며 그제야 그녀를 살짝 만진다. 이 영화에서 비발디와 '내(체칠리아)'가 유일하게 접촉하는 장면이다. 비발디는 체칠리아가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아끼려 한다. (비발디는 체칠리아를 제1바이올린 주자로 뽑을 때, “너는 칭찬받으려고 연주하지 않아. 그건 남들과 다른 점이지.”라고 말한다) 음악은 둘 사이를 잇게 한다. 고아원 부원장(파브리치아 사키)은 워낙 표독스러운 여자이다. 고아원 안에서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자 여자는 어린 새끼 세 마리를 가차 없이, 보란 듯이, 고아원 밖 물가에 던져 버린다. 고아원 여자들의 어머니들도 여자아이를 그렇게 버렸다. 그러나 이 부원장 역시 마지막 순간에 체칠리아의 탈출을 돕는다.

유명 오페라 연출가 출신답게 감독 다미아노 미키엘레토는 바이올린 합주와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에 공을 들였다. 비발디가 처음, 자신의 곡 '봄'을 연주하게 하는 장면과 마지막 연주 '유디트의 승리' 장면은 이 영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음악에 두고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 두 가지 장면만으로도 클래식 영화 팬과 영화 팬 모두의 오감을 휘어잡기에 충분하다. 주연인 테클라 인솔리아가 이 영화를 위해 바이올린 레슨을 별도로 받은 것 외에 다른 연주자들은 대개가 전문 연주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발디와 나>는 기본적으로는 코스튬 드라마이다. 넓은 소매에 길이가 바닥까지 끌리는 화려한 바로크 시대 의상들이 나오고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들이 썼던 가발이 등장하는 등 영화는 당시의 귀족사회가 지난 속물주의를 보여 주려 애쓴다. 발코니 위에 연주자들을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가둬놓고 아래층 홀에 자기들만이 모여 앉아 있는 귀족들의 모습을 풀 쇼트, 정지화면처럼 보여주는 장면도 감독이 지닌 내면의 계급성을 보여준다. 당시의 귀족들이 무례하고 천박했다는 것인데 그건 18세기나 지금의 21세기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발디와 나>는 이탈리아 국내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미국 시카고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29일 개봉됐다. 예술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업성이 꽤 높은 영화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