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조열 묘·조금호 부부 묘’ 道 기념물 지정

권태영 2026. 5. 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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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에 있는 조선 초기에 조성된 '조열 묘와 조금호 부부 묘'가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조열 묘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주로 사용된 방형 구조로 조성됐으며, 왼편에는 묘표가, 오른편에는 첫째 부인인 곤양전씨의 실전(묘지나 고적 따위에 관련되어 전하여 오던 사실을 알 수 없게 됨)된 묘를 대신한 설단이 조성돼 있다.

조열 묘와 조금호 부부 묘는 방형에서 원형으로 바뀌는 조선시대 지방사대부의 무덤 양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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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방사대부 무덤 양식 변화 자료

함안군에 있는 조선 초기에 조성된 ‘조열 묘와 조금호 부부 묘’가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조열은 고려말 공조전서를 지냈다. 고려동(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을 세운 이오와 더불어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킨 함안 지역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 초 생육신으로 알려진 조려의 조부이기도 하다.
조열 묘.

조열 묘.

조열 묘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주로 사용된 방형 구조로 조성됐으며, 왼편에는 묘표가, 오른편에는 첫째 부인인 곤양전씨의 실전(묘지나 고적 따위에 관련되어 전하여 오던 사실을 알 수 없게 됨)된 묘를 대신한 설단이 조성돼 있다.

조금호는 조열의 증손이자 조려의 차남으로 첨지중추부사 겸 내금위장을 지냈으며,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원종공신에 책봉됐다. 조금호 부부 묘는 조금호와 부인 진주 류씨의 원형 합분 형태로 조성됐다. 묘역에는 신도비와 함께 아들 조수천이 지은 부모를 기리는 시문이 새겨져 있는 대형 망주석 두 기가 세워져 있다.

조열 묘와 조금호 부부 묘는 방형에서 원형으로 바뀌는 조선시대 지방사대부의 무덤 양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묘역 내 조성된 석물도 희소성이 있어 묘와 함께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권태영 기자 media9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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