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인? 국적은 잘츠부르크[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2026. 5. 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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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흔히 그는 '오스트리아 음악'의 상징으로 소개된다.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 작곡가'다.

사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는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를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활동한 국민 음악가'라고 단정하는 것은 시대적 맥락을 생략한 단편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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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흔히 그는 ‘오스트리아 음악’의 상징으로 소개된다.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 작곡가’다. 그렇다면 과연 당대에도 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을까?

사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는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아니었다. 그가 탄생할 무렵 잘츠부르크는 독립적인 주권을 행사하던 ‘잘츠부르크 대주교국’이었다. 이 지역이 오스트리아령으로 편입된 시점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25년이 흐른 1816년이다.

당시 유럽은 독자적인 통치권을 지닌 수많은 영방 국가와 공국, 자유 도시가 얽힌 복잡한 체제였다. 사람들의 정체성 역시 근대적인 ‘국적’보다는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섬기는 ‘군주’에 의해 규정됐다. 모차르트 또한 이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 소속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자유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지만, 당시에는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심장부이자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허브였다. 모차르트가 활약한 무대는 특정 국가라기보다 ‘유럽 궁정 문화권’ 전체에 가까웠다. 따라서 그를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활동한 국민 음악가’라고 단정하는 것은 시대적 맥락을 생략한 단편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모차르트를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부르게 된 배경에는 19세기 이후 등장한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형성의 영향이 크다. 근대 국가들은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국가적 자산’으로 재해석했다. 결국 모차르트를 ‘오스트리아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대적 기준에 따른 해석일 뿐이다.

그는 국적 개념이 확립되기 이전, 잘츠부르크와 빈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다. 따라서 특정 국가의 작곡가라기보다 18세기 유럽 음악 문화를 집대성한 거장으로 보는 편이 본질에 더 부합한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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