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태어나서 천지에 닿기까지… 프랑스 사로잡은 ‘60년의 여정’

박동미 기자 2026. 5. 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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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한 최초의 동양인.

프랑스가 먼저 알아보고, 2024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열어 준 한국 작가.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와 '빛을 심으며'에서는 동양의 종이와 먹, 서양의 아크릴 물감, 프랑스의 흙 등을 한데 버무린 작업이 주를 이룬다.

아들이 지어 준 프랑스 아주 지역의 작업실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빛의 노래'(2011)에서 그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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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韓 여성 추상화가 방혜자 국내 첫 회고전
동양인 최초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평생 ‘빛’을 화두로 인간 - 세계 입체적으로 풀어내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품 등 국내외 작품 67점 공수
작가가 남긴 드로잉·일기 등 아카이브 자료 총망라
방혜자 화백의 ‘하늘과 땅’(2011) . 지름 179㎝ 종이에 천연 안료를 사용해 제작했다.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로,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청주=박동미 기자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한 최초의 동양인. 프랑스가 먼저 알아보고, 2024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열어 준 한국 작가. 1961년 국비유학생 1호로 프랑스로 건너가 양국 미술계에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한국 여성 추상 화가 방혜자(1937∼2022) 화백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작품을 설치하고, 세계 현대미술 중심지에서 일찌감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선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방 화백의 작업 세계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펼쳐지고 있다.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평생 ‘빛’을 화두 삼아 세계와 인간을 탐구했던 ‘빛의 화가’의 삶과 예술, 철학과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국내외서 공수한 작품 67점, 작가가 남긴 드로잉과 일기 등 아카이브 자료까지 총망라한다. 회고전으로는 국내 국공립 미술관 최초다.

작가의 삶은 오직 ‘빛’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자리한 것이며, 저 멀리 바다 깊은 곳, 하늘 높은 곳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그 ‘무엇’이기도 했다. 이를 ‘빛의 탄생’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 ‘빛을 심으며’ ‘빛으로 태어나는 길’의 순서로 구성한 전시는 방 화백이 ‘빛’을 발견하고, 품고, 잉태하고, 종국엔 스스로 ‘빛’이 되어 버린 이야기처럼 들린다.

방 화백은 말년에 이르러선 바닥에 그림을 눕혀 그렸다. 사진은 2020년 프랑스 아주(Ajoux) 작업실에서의 모습. ⓒ정재준

지난달 23일 전시장 초입에서 마주한 ‘빛의 탄생’은 압도적이었다. 2022년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일부를 재현한 것으로, 암막 커튼을 쳐 배경을 어둡게 하고 성당에 쏟아지는 빛을 품은 듯 표현됐다. 이어, 1960년대 초기 추상 회화부터 한지를 도입한 1970년대 작품, 천연 안료와 프랑스 남부의 붉은 흙을 사용한 1990년대 작품을 지나 작가의 예술이 절정에 달한 ‘원 그림’ 등 2000년대 이후 대작을 만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등 출품작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예컨대 1960년과 1961년에 각각 그려진 ‘지심’ 연작은 기둥의 앞뒤에 배치해 비교 감상이 가능하다. 하나는 국립현대미술관, 하나는 퐁피두 소장이다.

방 화백의 ‘빛’은 만지고 싶은 빛이기도 하다. 한지의 질감이 살아 있는 작품들은 실제로 보아야 그 ‘맛과 멋’이 제대로다.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와 ‘빛을 심으며’에서는 동양의 종이와 먹, 서양의 아크릴 물감, 프랑스의 흙 등을 한데 버무린 작업이 주를 이룬다. 여기엔 프랑스 남성과 결혼하며 타국에 터전을 마련했던 그가 한국에 돌아와 8년간 머물렀던 시간이 영향을 끼친다. 당시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방 화백의 그림을 두고 “우리가 연구·포착한 것을 직감적으로 표현했다”며 놀라워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1995년 작 ‘태양의 중심’은 현지 과학잡지의 표지로도 쓰였다.

방 화백의 물질적 실험은 점차 일상과 정신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아들이 지어 준 프랑스 아주 지역의 작업실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빛의 노래’(2011)에서 그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온몸으로 빛을 받으며 기공 체조를 한 후 천연 염색된 순면 작업복을 입고, 눕혀진 캔버스에 작업을 했다. 수행자에 가까운 모습을 한 노년의 화백은 영상 말미에 가느다란 목소리로 단단한 말들을 전한다. “어둠과 재난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해요. 색을 더한다는 건 평화, 균형,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에요.” 전시는 9월 27일까지, 관람료는 2000원.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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