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도 민주당도 싫다...2030이 '무당층' 되는 동안 정치가 놓친 것들 [지선 D-30]
당파적 의제로 지지층 결집하는 정치 실망
탄핵 따른 정치 효능감에도 다시 침묵 선택
기성 정당·2030 '상호 외면' 악순환 끊어야

#1. 지난해 3월 여야 3040 의원 8명의 기자회견은 대학생 이지안(22)씨에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혜택은 기성세대, 부담은 후세대에 돌아간다"며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비판했다. 보험료율(9%→13%)과 소득대체율(40%→43%)을 올리는 모수 조정이 청년에게 개악이라는 것. 이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내가 바라는 정치"라고 했지만, 이러한 청년 목소리를 담은 당파를 초월한 움직임이 여야 정쟁 속에 파묻힌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어느 한 쪽에 투표한들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 20대 대학생 권밀루씨는 지난해 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계엄이 2시간 만에 종료됐다"며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 권씨는 "내란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면서 기대가 사라졌다"고 했다. 스스로 '중도 진보'로 소개한 권씨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아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준비 중인 그는 민주당의 검찰개혁에 "검찰에 문제가 있다고 순기능까지 없애는 막무가내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41%, 36%. 한국갤럽 4월 통합 여론조사에서 20대와 30대 가운데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한 무당층 비율이다. 40대(23%), 50대(16%), 60대(21%) 등에 비해 상당히 높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2030세대에 무당층이 많다는 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얘기"라며 "우리나라에선 탄핵을 거치며 젊은 세대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되면서 투표 참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세대의 다수가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보다 다시 침묵을 택하고 있는 현상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왜 이들은 거대 양당에 마음을 주지 않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정치는 무엇일까. 한국일보는 지난달 24~27일 2030세대 5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대답은 간명했다. 인공지능(AI) 등장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 내려올 줄 모르는 집값, 지속불가능한 국민연금·건강보험 체계 등 삶에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정쟁을 통한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는 진영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는 것이다.

정치적 전장과 청년의 삶 간 괴리
청년들은 "여야가 당파적, 정치적 의제에만 집중한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심층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는 정책(424번), 부동산(128번), 지방(104번), 취업(45번), 일자리(32번) 순이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자주 언급하는 내란 청산,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6·3 지방선거에서 서울 성북구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한 개혁신당 소속 이호엽(29)씨는 "우리가 듣고 싶은 얘기는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집을 어떻게 구할지인데 뉴스에는 국민의힘 장 대표의 방미 논란,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 같은 것만 나온다"고 꼬집었다. 실제 "2030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박윤수·35), "선거가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다"(김연우·22) 등 정치적 소외를 토로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선우 전북대 교수는 "대결 정치를 선호하는 강성 지지층 때문에 공약, 정책에 집중하지 않는 양당이 투표율이 낮은 2030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며 "이에 2030도 양당을 통해 정치적 선호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투표하지 않는 악순환이 현상의 본질"이라고 했다. 정치 양극화에 편승해 거대 양당이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정쟁이나 이념 지향적 거대 담론에 집중하는 것이 '2030의 탈정치'를 가속화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두 차례 탄핵에도 바뀐 게 있나요? 효능감의 파산
역설적으로 두 차례의 탄핵 경험도 2030에 무당층이 많은 요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에 적극 참여해 정권 교체에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무기력 탓이다. 김성진(37)씨는 "20대 땐 집값이라도 저렴했는데, 지금은 수원 집값이 10억 원에 달한다"며 누가 당선돼도 삶이 바뀌지 않아 투표 의향이 없다고 했다. 강원도에서 손해사정사로 일하는 30대 김남혁씨도 "여야 모두 크게 믿음이 가지 않아 세금이나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선제(22)씨는 "내가 지지해 당선된 사람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고, 반대 세력은 '그 사람 뽑아서 망했잖아' 손가락질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며 "이젠 '누가 해도 똑같겠지' 하는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탄핵을 부른 보수 정권의 무능, 이후 집권한 진보 정권의 집값 폭등에 실망한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2030이 체감한 일상의 정치들
다만 일상 속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한 2030들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 기조가 2030 성향에 맞닿은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4월 통합 조사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0대 45%, 30대 59%로 민주당 지지율(20대 27%, 30대 35%)보다 크게 앞선 배경이다.
김모(35)씨는 서울 성동구에 거주할 당시 정원오 성동구청장(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이 수시로 긴급 상황이나 정책 관련 정보를 문자로 보냈다며 "형식적으로 뿌리는 게 아니라 고민해서 보내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번 지선에서 그는 서울시장 선거만 투표할 의향을 밝혔지만 나머지 선거엔 투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김모(27)씨는 정부의 '신용사면' 정책을 언급했다. 그는 "아나운서 준비에 돈이 많이 들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만 연체돼도 기록이 남아 제2금융권 대출조차 안 됐다"며 "연체 기록이 사라지면서 신용등급도 올라가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예원(21)씨는 "현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일부 해소되면서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했다.
다만 민생 지원금,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현 정부의 현금성 정책에는 "포퓰리즘으로 물가 상승만 유발한다"(강태양·20대) "나라 빚이 늘면 나중에 우리 세대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다"(김남혁씨) 등 우려 섞인 반응도 있었다.
"미래 세대인 청년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데..."

이들의 바람은 정치가 일자리·부동산·지방소멸 등의 현안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이나영씨는 "미래 세대인 청년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데, 노인 일자리와 중산층 대책을 말하는 건 순서가 틀린 것 같다"며 "우리는 집을 살 수 없는 세대"라고 했다. 전남 순천에 사는 기은재(21)씨는 "지방소멸은 그래도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 아니냐"고 했다. 군인인 오모씨는 "입대 전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며 "청년에게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정치가 고민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김지현 인턴 기자 bem236@naver.com
정내리 인턴 기자 naeri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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