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 <27>전쟁은 멈췄지만 압박은 시작…“호르무즈 교착과 패권 재편의 시작”

정충신 선임기자 2026. 5. 4. 08:3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종전 협상에서 나타난 미국 vs 이란의 치열한 기싸움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휴전이 선언됐다고 적대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발포가 멈춘 자리를 채운 것은 더 정교하고 지속적인 압박이다. 2026년 5월 현재 워싱턴과 테헤란의 대립은 표면상 정전 상태에 들어섰지만, 실질적인 교전은 끝나지 않았다. 충돌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변화된 전쟁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란은 ‘30일 내 완전 종전’을 전제로 제재 해제와 해협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핵 문제를 이후 단계로 미루려 하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 문제를 종전과 분리할 수 없는 선결조건으로 규정해 거부하고 있다. 협상은 ‘핵 먼저’와 ‘종전 먼저’라는 시간 구조의 충돌 속에 멈춰 서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이견이 아니라 체제 생존과 전략적 시간표가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긴장의 중심에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협소한 항로에서 벌어지는 일은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선박은 움직이고 있지만, 그 항행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봉쇄는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가능하다는 인식 자체가 시장과 국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 전쟁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 전쟁이 영토와 군사력 투사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전쟁은 흐름을 통제하고 선택지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군사 충돌은 줄었지만, 에너지·금융·해상 통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긴장의 출발점은 이란이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봉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시장과 국제사회를 압박했다. 이러한 ‘존재하는 위협(Threat in Being·TIB)’은 실제 충돌 없이도 에너지 가격과 운송 비용, 금융 불안을 동시에 자극하며 전장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미국의 대응은 호르무즈 해협 현장에 존재하는 함대를 통한 역봉쇄였다. 전면 공격 대신 해상과 경제를 동시에 압박하는 이 전략은 단기 승리가 아니라 시간에 따른 상대의 약화를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이란이 만든 불확실성은 역봉쇄로 전환됐고, 이는 다시 이란의 경제와 내부 안정성을 직접 겨냥하는 압박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호르무즈의 현재는 휴전이 아니라 전쟁의 진화다. 총성이 멈춘 이후 시작된 이 새로운 전쟁은 더 느리지만 더 깊게 상대를 압박하며,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종전협상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 교착 상태의 본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단순한 협상 지연이나 일시적 휴전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겉으로는 충돌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이 정면 충돌하며 움직이지 않는 구조에 가깝다. 이 교착은 우연히 발생한 정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전략적 시간표와 조건이 맞물리며 형성된 ‘구조적 정지 상태’다.

이 교착의 핵심에는 두 가지 축이 존재한다. 하나는 ‘핵 문제를 언제 해결할 것인가’라는 시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제재와 해협 통제를 어떤 순서와 조건으로 연계할 것인가’라는 조건의 문제다. 미국은 핵 문제를 종전과 분리할 수 없는 선결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경제 제재와 해상 통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종전을 먼저 확정한 이후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다루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제재 해제와 해협 봉쇄 해제를 초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두 입장은 단순한 협상 카드의 차이가 아니라 체제 생존 방식과 전략적 시간표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이로 인해 협상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양측 모두 협상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그 의지는 상대 조건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갈등을 해결하는 장치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지연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그 공백은 군사적 충돌이 아닌 경제·해상·정치적 압박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교착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요인은 내부 정치구조다. 미국은 전쟁 권한과 관련된 법적·정치적 제약, 그리고 장기 개입에 대한 국내 피로 속에서 군사적 선택이 제한되고 있다. 이란 역시 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속에서 체제 결속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외부 압박에 대한 양보는 내부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 외부 협상과 내부 정당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며, 이는 협상의 유연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결국 현재의 교착 상태는 외교적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과 상충하는 전략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이 구조 속에서 전쟁은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양측은 직접 충돌 대신 상대의 선택지를 점진적으로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전쟁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목표는 더 이상 단기간의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시간을 활용해 상대를 장기적으로 약화시키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착은 정지가 아니라 압박이 작동하는 방식이며, 이는 곧 다음 단계에서 등장하는 ‘압박의 재구성’, 즉 군사적 충돌을 대체하는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이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사하고 있는 선별적 통제를 통한 압박의 재구성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압박의 재구성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압박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더 이상 전장에서의 충돌로만 수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상 통제, 금융 제재, 에너지 흐름, 그리고 시장 심리를 동시에 관통하는 다층적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트럼프가 선택한 방식은 전면적 공격이 아니라 ‘선별적 통제’다.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흐름을 제한하고, 제재와 해상 통제를 결합해 상대에게 지속적인 부담을 부과하는 전략이다. 이는 군사적 충돌을 최소화하면서도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봉쇄와는 구별된다. 핵심은 모든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차단할 수 있다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다. 이 가능성 자체가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고, 전략적 선택지를 축소시킨다.

이러한 압박은 물리적 통제를 넘어 시장의 인식 구조로 전이된다. 선박이 실제로 통과할 수 있음에도 보험료는 상승하고, 운송 비용은 증가하며, 에너지 가격은 불안정해진다. 위험은 실체보다 인식 속에서 확대되며, 그 결과 압박은 군사력의 직접적 사용 없이도 경제적 충격으로 전환된다.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시장에 스며들고, 그 영향은 특정 국가를 넘어 전 세계 경제로 확산된다.

이란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수동적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봉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전략은 ‘가능성’ 자체를 압박 수단으로 전환시킨다. 이는 실제 행동보다 잠재적 행동이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상대의 의사결정을 제한하고 비용을 증가시킨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도, 서로의 선택지를 점진적으로 좁혀가는 압박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압박의 목적은 분명해진다. 목표는 상대를 단기간에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있다. 이는 전쟁의 목적이 ‘결정적 승리’에서 ‘지속적 통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전쟁의 수단 역시 직접적 타격에서 구조적 압박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압박의 재구성은 전쟁의 중심을 전장에서 ‘구조’로 이동시키고 있다. 군사력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은 더 이상 충돌의 수단이 아니라 압박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기반으로 기능한다. 이 구조 속에서 시간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압박이 지속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으며, 그 결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3개 항모전단(CSG)과 2개 상륙강습단(ARG)을 전장에 대기시켜 놓고, 이란을 압박하는 트럼프식 능동적 현존함대(DAFIB·Active Fleet in Being) 전략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트럼프 전략… 전쟁을 하지 않는 전쟁

트럼프의 전략은 전쟁처럼 보이지 않는다. 선전포고도 없고, 대규모 지상군도 없으며, 역사적 결전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 이 전략의 본질이 있다. 전쟁의 외형을 제거하면서도, 전쟁 효과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방식. 이는 단순한 억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다.

이 전략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조건의 산물이다. 추가적인 군사 공격은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리스크를 수반한다. 의회의 승인 문제, 여론의 피로, 동맹국들의 확전 우려는 모두 행동의 제약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외부 타격이 이란 체제의 단기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내부 결속과 반미 정서를 강화할 위험이 존재한다. 이 조건 속에서 군사력은 더 이상 ‘사용을 통해 효과를 내는 수단’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을수록 더 큰 압박을 만들어내는 자산’으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 즉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집행되는 힘이다. 이는 단순히 전력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 배치된 상태에서 언제든 실행 가능한 조건을 유지하는 전력 구조를 의미한다. 항모전단(CSG)과 상륙강습단(ARG), 그리고 해상 통제 자산은 전면 공격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작전 상태를 유지하며 상대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한다. 중요한 것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이 언제든 실행될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AFIB 구조 속에서 전쟁은 ‘가능성’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상태’로 작동한다. 공격은 제한적으로 이뤄지지만, 압박은 끊임없이 유지된다. 해협은 완전히 봉쇄되지 않지만, 언제든 봉쇄될 수 있는 상태로 관리되며, 제재와 해상 통제는 끊임없이 결합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위험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비용은 스스로 상승하며, 압박은 군사적 충돌 없이도 경제적 효과로 전환된다. 총을 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총구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AFIB의 작동 방식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시간의 설계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란의 경제적 부담은 누적되고, 사회적 불안은 확대된다. 반면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압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비대칭 구조는 전쟁의 주도권을 군사적 충돌에서 시간의 흐름으로 이동시킨다. 경쟁은 더 이상 누가 더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압박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전쟁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목표는 단기간의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상대의 내부 균열과 피로를 축적시키는 데에 있다. 이는 물리적 파괴를 넘어 정치적·경제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전쟁의 결과가 전장이 아닌 구조 속에서 형성됨을 의미한다.

결국 트럼프의 전략은 전쟁을 확대하지 않으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에 있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도 현장에서 실제 집행 가능한 힘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상대의 선택지를 지속적으로 제한한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현재의 대결이 단순한 군사적 긴장이 아니라, ‘전쟁을 설계하는 힘’으로서의 AFIB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사례다.

호르무즈 해협의 교착은 앞으로 패권 재편의 시작에 대한 신호임을 나타내는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패권 재편의 시작

호르무즈 해협의 교착은 단순한 양자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쟁의 중심이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압박 구조로 이동하면서, 패권의 기준 역시 재정의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흐름과 그 조건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가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새로운 기준이 시험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 내부에서 먼저 가시화된다. 이란이 경제 압박과 외교적 고립 속에서 점진적으로 제약을 받을수록,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전략적 입지는 상대적으로 강화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세력 변화가 아니라, 압박 구조가 지역 권력 균형을 재배열하는 과정이다. 이란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시아파 네트워크 역시 영향력이 약화되며, 이는 중동의 종파 균형을 구조적으로 흔들고 있다.

에너지 질서 또한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호르무즈의 불안정성이 지속될수록 글로벌 시장은 더욱 안정적인 공급원을 선호하게 되며, 이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친미 산유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화시킨다.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압박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통제 수단이다. 이 수단을 누가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패권의 실질적 척도가 된다.

이러한 압박 구조는 단순히 이란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흐름과 지역 질서의 재구성을 통해 더욱 광범위한 전략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란이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제약을 받을수록, 주요 소비국들이 의존하는 공급 구조 역시 재조정되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외부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지에도 제약을 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해상 통제와 경제 압박은 직접적인 군사 충돌 없이도 경쟁 상대의 구조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구도는 미중 패권 경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란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따라서 이란의 상대적 제약은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과 물류 네트워크에 구조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미국은 압박 구조를 통해 에너지 흐름의 조건을 통제함으로써, 직접적인 충돌 없이도 경쟁 상대의 전략적 공간을 제한하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달러 기반 에너지 거래 체제의 강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란이 국제시장에서 배제될수록 에너지 결제는 다시 달러 중심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미국의 금융 패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동시에 유럽은 대체 공급 확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이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 미국의 전략적 구심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호르무즈에서 형성된 이 압박 구조는 지역 갈등의 범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총성 없이 작동하는 패권 재편의 메커니즘이며, 그 결과는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구조적 우위로 나타난다. 패권은 더 이상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이 아니라, 흐름과 그 조건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능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동맹과 글로벌 안보지형의 변화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동맹과 국제질서의 재조정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개되는 압박 구조는 개별 국가의 선택을 넘어, 동맹과 국제질서 전반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변화가 아니라, 시간과 조건을 통제하는 압박 구조 속에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다. 이 재조정의 핵심은 군사적 진영 논리에서 이익 기반 연대로 전환에 있다. 전쟁이 해상 통제와 경제 압박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각국은 더 이상 단순한 군사적 입장만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됐고, 동맹의 성격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 동맹 내부에서 가장 먼저 균열의 형태로 드러난다. 유럽은 전쟁 확대에 대한 우려와 에너지 안보 불안을 동시에 안은 채 외교적 해법을 선호하는 반면, 트럼프는 군사적 억제와 경제적 압박을 병행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니라, 압박을 운용하는 시간과 방식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같은 동맹 내에서도 대응 방식이 갈리고 있다는 사실은, 동맹이 더 이상 단일한 안보 협력 구조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중동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과 결속을 강화하면서도 직접적 충돌 확대에는 신중함을 유지한다. 튀르키예는 특정 진영에 편입되기보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유연한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진영 충성이 아니라 압박 구조 속에서 전략적 계산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중동은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닌 다층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아시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호르무즈의 불안정을 직접적 경제 리스크로 인식하며, 해상 교통로 안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제 정책과 군사적 준비 태세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들을 글로벌 해양 질서 논의의 새로운 행위자로 부상시키고 있다.

세 지역의 사례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국제질서는 고정된 진영 구분에서 벗어나, 압박 구조 속에서 각국이 상황에 따라 연대를 재구성하는 이익 중심의 유동적 구조로 이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질서를 주도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질서는 단일한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보다 분산된 압박과 대응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결국 동맹과 질서의 재조정은 군사력의 보유 여부를 넘어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일한 연합 체계에서 복합적 전략 네트워크로 전환을 의미하며, 호르무즈의 교착은 이러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전쟁은 멈춘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압박 구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역봉쇄를 통해 이란을 압박하면서 시간을 통제하는 트럼프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전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총성이 멈췄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압박은 더 정교해지고, 더 길게 지속되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짧고 결정적인 충돌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상대를 서서히 약화시키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번 교착이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하다.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전장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상 교통로, 에너지 흐름, 금융 시스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다. 군사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과를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트럼프는 역봉쇄를 통해 직접적인 충돌 없이 압박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란은 해협 통제 가능성을 유지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확장하고 있다. 양측은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상대의 선택지를 점진적으로 축소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전쟁은 충돌이 아닌 압박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가 결합된 구조적 경쟁이다.

이 과정에서 질서의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영토를 점령하는 능력이 힘을 정의했다면, 지금은 흐름과 그 조건을 통제하는 능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점령했는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드는가이다.

결국 이 교착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전쟁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 실제로는 누가 시간을 통제하고 있는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압박의 형태로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글: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정충신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