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달라지는 에너지 믹스, 달라지는 패권 (상)

박상욱 기자 2026. 5.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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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38)

계속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에 국제유가는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유의 경우, 전쟁 직후 급등을 시작해 지난 3월 23일 배럴당 169.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일부 떨어졌지만 여전히 100달러를 웃돌며 전쟁 이전의 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월, 배럴당 60달러대를 오가다 2월엔 70달러 선에 머물렀던 두바이유가 3월 23일의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던 날은 단 이틀(4월 20일, 21일)에 불과합니다. 브렌트유 역시 두바이유와 비슷한 시기인 3월 31일, 배럴당 118.35달러까지 오르며 올해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4월 17일, 배럴당 90.38달러까지 떨어졌던 브렌트유 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해 4월 29일엔 이전 최고가격에 근접한 118.03달러까지 올랐죠. 연초 배럴당 최저 55.99달러까지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유 또한 브렌트유와 비슷한 가격 흐름을 보였고요.

호르무즈 봉쇄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글로벌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Ember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우디에서만 하루 620만배럴의 원유 및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됐습니다. 이라크와 UAE도 각각 360만배럴, 320만배럴을 수출할 때 이 해협을 거쳤고, 이란과 쿠웨이트 또한 240만배럴, 카타르는 140만배럴을 매일같이 이 해협을 통해 다른 나라로 수출했습니다.

그나마 '도로운송부문'의 연료로서의 수요는 예년보단 적은 것은 다행입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한 비중은 22%에 달했습니다.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해마다 증감이 있었음에도 전기차 판매는 항상 늘어난 덕분입니다. 코로나 19팬데믹이라는글로벌 경기침체 국면 속에서도 일반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년 대비 판매량이 증가할 정도였죠. 수년째 연간 1천만대 넘는 전기차가 판매됐고, 이제 연간 판매 2천만대 시대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 7위 국가이자 세계 판매량 3위 자동차 기업이 위치한 한국은 지난달에야 처음으로 '전기차 누적 보급 100만대 돌파'를 마주하게 됐지만요.

전기차의 폭증은 전력수요의 급증을 의미합니다. 2019년만 해도 전기차 충전을 위한 전력수요가 전 세계에 걸쳐 44.51TWh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241.86TWh로 5.4배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석유수요의 감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름으로 굴렸을 자동차를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전기차)로 대체한 셈이니까요. 전기차로 인한 석유수요 대체 효과는 얼마나 될까. 2019년, 하루 평균 28만배럴 정도였던 BEV의 석유수요 대체량은 마찬가지로 급증해 지난해엔 하루 평균 180만배럴에 달했습니다. 웬만한 산유국 하나를 대체할 정도의 양입니다.

이는 날마다 치솟는 기름값에 주유소 앞 장사진을 이룬 내연기관차들의 줄이 1970년대 오일쇼크 때 만큼은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젠 한번 충전하면 500km는 거뜬한 전기차들이 즐비해지면서 BEV는 이제 얼리어답터의 전유물을 넘어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체제로 거듭났으니까요. 이번 공급 위기에선 되려 '연료로서의 화석연료'보다 '원료로서의 화석연료', 즉 피드스톡에 대한 우려가 더 부각되고 있죠.

전기화와 그 전기화에 쓰일 전기의 청정화가 십수년전부터 본격화한 에너지전환의 주된 방향이었던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입니다. 다만, 안 그래도 전력수요는 증가하는데 과거엔 전기를 안 쓰던 많은 제품들마저 에너지원으로써 전기를 필요로 하는 만큼, 관건은 그렇게 급증하는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냐는 데에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이래로 전력수요는 2025년 무려 1만 6,500.59TWh나 증가했습니다. 2008~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2019~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도 수요를 꺾기보단 정체시키는 정도에 그쳤을 정도로 증가세는 견고합니다.

그렇게 늘어나는 수요에 우린 지구의 입장에선 부족하지만, 그나마 청정전력을 통해 최대한 대응을 해왔습니다. 재생에너지를 '먼 미래'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 국내에서야 실감나지 않겠지만, 전 세계적으론 화석연료는 이제 정점을 이미 지난 발전원이 됐죠.

2005년, 화석연료 발전량은 2000년 대비 2,246.94TWh 늘었습니다. 그리고 2005~2010년 사이, 화석연료 발전량은 배 수준으로 늘어났죠. 같은 기간, VRE(Variable Renewable Energy, 변동성 재생에너지)로 불리는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은 4배 이상이 됐습니다. 이후 5년(2010~2015년), 화석연료 증가율은 36.1%로 떨어졌고, VRE는 204.4%나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15~2020년, 화석연료 발전량이 불과 10.5%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VRE는 129%라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2020~2025년, 화석연료의 발전량 증가율은 24.4%, VRE의 발전량 증가율은 126.3%를 기록했고요. 특히, 최근 2년(2024, 2025년)을 봤을 때, 화석연료는 드디어 증가세를 멈췄습니다. 2024년을 정점으로, 이듬해엔 발전량이 소폭 줄어든 것이죠. 반면, VRE는 점차 그 역할을 키워왔습니다. 2000년 이래로 증가한 VRE 발전량 증가분이 2000년 이래 늘어난 전력수요의 3분의 1을 충당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파리협정을 전후로 화석연료의 증가세 자체는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연평균 발전량 변화량의 값이 줄어든 것이죠. 그러다 2025년엔 –37.8TWh라는 음의 값을 기록하기에 이르렀고요. 증가 속도가 더뎌진 것을 넘어 감소세에 접어든 겁니다.

2005~2009년, 연평균 3.4TWh 증가하는 데에 그쳤던 태양광 발전량은 이후 5년(2010~2014년)간 연평균 35.6TWh, 2015~2019년엔 연평균 100TWh, 2020~2024년엔 연평균 288.9TWh 늘었고, 지난해엔 무려 635.5TWh나 증가했습니다. 풍력 발전량 또한 2005~2009년 연평균 87.7TWh 성장하더니 2010~2014년엔 연평균 86TWh, 2015~2019년 연평균 143TWh, 2020~2024년엔 연평균 217.7TWh나 늘었습니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205TWh라는 여전히 견고한 증가세를 보여줬고요. Ember는 “2025년 청정에너지원의 발전량 증가분이 전체 전력수요 증가분을 충족할 정도였다”며 “특히 태양광은 홀로 증가량의 75%나 차지하면서 화석연료 중심의 증가 패턴을 완전히 뒤집어놨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력수요의 증가라는 파도를 재생에너지로 막아내고 있는 상황 속, 우리나라를 돌아볼 수밖에 없어집니다. 재생에너지를 그만큼 못 늘린 만큼, 수요 증가라도 억제가 됐을까. 아니면, 수요는 수요대로 늘어나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더뎌서 결국 화석연료만 더 태우는 것은 아닐까. 과연 어떤 상태일까요.

Ember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기준 '세계 8위'의 수요를 자랑(?)했습니다. 625TWh로 캐나다(646TWh)와 맞먹고, 우리보다 더 넓고, 인구도 더 많은 독일(520TWh), 프랑스(477TWh)보다도 많았습니다. 1인당 전력수요로 보면, 한국의 위상(?)은 더 올라갑니다. 세계 3위. 우리나라의 전력소비는 1인당 12.1MWh를 소비한 셈이었습니다. 2위인 미국(13.1MWh/명)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세계 평균(3.8MWh/명)의 3배를 넘고, 일본(8.4MWh/명), 러시아(8.2MWh/명), 중국(7.5MWh/명)보다도 많습니다. 분명 'Top 10' 리스트인데, 9위 브라질(3.6MWh/명)과 10위 인도(1.4MWh/명)조차 평균 이하인 것을 보면, 그만큼 '상위권 편중'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반갑지 않은' 상위권인 것은 맞지만, 이 통게가 “전기를 아껴 씁시다!”라는 대중 캠페인성 메시지로 직결되긴 쉽지 않습니다. 시민 개개인이 주요 선진국 대비 상당히 저렴한 요금체계 하에서 많은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나, '글로벌 탑티어' 수준의 전력수요는 우리의 일상보다는 산업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력수요에서 주거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안팎에 그칩니다. 산업용의 비중이 전체 국가 전력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중 대부분이 제조업에서 소비되죠.

이런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안보 강화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대외 의존이 필요 없는 에너지원의 확대가 근본적인 답입니다. 이미 화석연료뿐 아니라 원재료나 소부장 등 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쳐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 속, 우린 산업을 구성하는 여러 '수입 의존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불확실성을 줄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원유는 나지 않지만, 그 원유를 갖고 다양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수출해 온 우리나라입니다. 한국이 멈추면 캘리포니아의 공항이 멈출 만큼 그 영향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석유제품 생산국가라고 할지라도 원료인 원유의 공급 리스크에 취약한 것은 다른 비산유국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에너지전환의 길이 한국에서 유독 먼 것만은 아닙니다. 이미 우린 그 가능성을 목격하고 있죠. 지난 1일, 처음으로 공휴일이 된 노동절, 내륙에서 태양광발전의 비중이 최고 50%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을 태양광이 차지했던 순간은 한낮, 오후 12시 25분 잠시였지만, 오전 10시 5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 40분 동안 태양광의 비중은 40%를 넘었습니다. 태양광 발전량이 기록된 시간은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 55분까지. 일평균 비중으로 보더라도 태양광은 하루 전력 생산의 15.3%를 차지했습니다.

사실상 태양광에 집중된 오늘날 한국의 재생에너지 믹스이나, 전체 재생에너지로 보면, 그 비중은 22.8%로 높아집니다. 발전설비가 부족할 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한국에선 안 된다'고 할 일이 아님을 숫자로 분명히 보여준 셈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 종식을 목표로 전기화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에 박차를 가한 것처럼, 이번 중동산 화석연료 공급 위기는 우리에게도 더 안정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사회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석유 공급 위기 속, '한국이 멈추면 캘리포니아의 공항이 멈춘다'는, 한국의 글로벌 탑 티어 석유제품 생산 능력과 위상에 취하기보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탑 티어 수준인 플라스틱 생산 능력과 그 위상에 취하기보다, IATA(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 국제항공운송협회)가 항공유 전환을 위해 펼치고 있는 정책에 더욱 집중하고, EU가 오는 8월부터 시행하는 PPWR(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에 맞춰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더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한국의 석유제품 또는 플라스틱 패권을 빼앗을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린 이미 그런 경험을 해봤습니다. 브라운관 시대에선 일본에 밀렸지만 이후 OLED나 LCD 시대에선 일본을 압도했고, 리튬이온 배터리를 처음 대규모로 상용화한 것은 일본이었지만 이후 우리는 이차전지 시장을 이끄는 기술 리더가 됐죠. 이는 '남의 패권을 뺏은' 경험이지만, 지금은 '우리의 패권을 뺏길' 위기이기도 합니다. 에너지전환을 그저 '둥글게 둥글게' 지구를 더는 괴롭히지 말자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총성 없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戰場)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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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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