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가 낯설다고요?
로타가 낯설다면, 번지수를 잘 찾아오셨다.

미지의 로타
로타를 몰랐다. 여행기자 타이틀을 달기 전까지, 나에게 마리아나 제도는 지도 위에서 단번에 찾아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사이판은 가 봤어도 마리아나는 처음인데?' 같은 무식한 소리를 속으로 삼켰던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 믿는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잘 아는 사이판, 그 옆의 티니안,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로타. 이 세 섬이 바로 북마리아나 제도를 대표하는 '삼형제'다.
지도상으로 보면 사이판이 맏형, 티니안이 둘째, 로타가 막내 격인데. 사이판이 글로벌 체인 호텔과 쇼핑몰 등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매끈하게 닦인 관광지의 표본을 보여 준다면, 티니안과 로타는 문명의 속도에서 한참은 비껴나 있다. 그중 로타는 단연 독보적이다. 세상 돌아가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원시림 속에 드러누워 낮잠이나 자는 무공해 자연인 같달까. 사이판에서 고작 12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풍기는 아우라는 완전 딴판이다.

가는 길부터 이미 모험의 시작이다. 현재 한국에서 로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수요와 노선 구조상 현재는 소형 항공기를 이용한 섬 간 이동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선택지는 단순하다. 사이판이나 괌에서 경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의 그 덜컹거림이란. 사람에 따라 설렘보다 떨림이 앞설 순 있겠지만, 30분 내내 창밖으로 펼쳐지는 태평양의 민낯을 보면 누구라도 일단 카메라부터 들게 된다. 본격 어드벤처 스타트.

근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전 세계 어디든 0.1초 만에 길을 찾아 주는 구글맵의 알고리즘조차 로타의 울창한 정글 앞에선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지도 위에 표시되지 않은 길도, 이름조차 없는 장소도 있다. 그래서 위도와 경도를 버무려 만든 암호 같은 '플러스 코드(Plus Codes)'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나관광청에 읍소하니 돌아온 대답. "로타는 원래 그래요. 아직 지도 데이터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지역이 많거든요." 검색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 맛집까지 찾아내던 나의 오만함은 로타의 원시림 앞에서 무너졌다. 디지털 문명이 닿지 않은 여백을 직접 더듬어 가야 하는, 이 아날로그적인 수고로움을 겪어야만 당신은 진정, 로타에 온 것이다.

로타의 면적은 약 85km². 울릉도보다 조금 더 큰 규모다. 그러나 인구는 1,900명 남짓. 관광객보다 주민이 더 적은 게 아닐까 싶은 이 한적한 섬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섬(The World's Friendliest Island)'이라는 낯간지러운 별명을 갖고 있다(마리아나관광청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이다). '태평양에서 가장'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이라니. 근데 이게 참, 가 보면 부정할 수가 없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차들끼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로타 웨이브'를 한두 번 겪고 나면 '과연 프렌들리하네' 싶어진다. 직진 차로인데 깜빡이도 없이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빌런, 비켜 줬더니 고맙단 비상등 한 번 안 켜고 쌩하니 가 버리는 서울의 아름다운 운전 매너와 비교하면 그 대조가 꽤 선명하다. 이 명백한 대비가 로타를 로타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섬 여행지를 소개할 땐 (당연히) 바다 얘길 빼놓을 수 없다. 로타도 사방이 바다다. 로타의 바다가 지닌 채도를 서술해 보려고 머릿속을 여기저기 뒤져 가며 그럴싸한 단어를 찾아본다. '에메랄드빛', '황홀한', '이국적인', '아름다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또 뭐가 있더라…. 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투박하고 게으른 단어들 중 뭘 갖다 붙여 봐도 바다보다 부족하고, 실제보다 가난하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했을 때 가장 덜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거다. '로타 블루(Rota Blue)'. 무슨 조색 전문가가 고심 끝에 제작한 브랜드 네임 같은 게 아니다. 로타의 바다를 마주했던 뭇 사람들이 이 비현실적인 푸름을 도저히 설명할 재간이 없어 붙인 이름이 그대로 고유명사처럼 된 것이다. 그들의 작명에 깊이 공감한다. 결국은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 내야 이 바다의 실체가 보인다. 로타의 바다에는 여러 개의 파랑이 들어 있다. 옅은 파랑, 짙은 파랑, 더 짙은 파랑이 하나인 듯 수천 개의 결로 번져 있다. 경계도 없이 퍼져 나가는 그 깊고도 푸른 스펙트럼. 스스로 아름다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인 줄 모르는 로타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왜 전 세계 다이버들이 해마다 장비를 챙겨 이곳으로 모여드는지 알 것도 같다.
거친 밀림이 봉인해 둔 역사의 궤적 또한 예사롭지 않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이판과 티니안이 포화에 휩싸였을 때, 로타는 미군의 직접 상륙전을 겪지 않았다. 이 기묘한 운 덕분에 섬에는 훼손되지 않은 시간의 지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고대 차모로 문명의 정수를 보여 주는 라떼스톤 채석장이 예고 없이 등장하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주인을 잃고 녹슬어 가는 해안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숲의 그늘 사이론 전쟁의 긴박함을 증언하는 터널과 방공호의 흔적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박물관 유리 상자 속 봉인된 역사가 아니라, 길가와 숲속에 무심히 놓인 미가공의 시간이다. 이토록 날것의 단서들이 지천인데…. 이상하게 로타는 알면 알수록 멀어진다. 철자는 읽히는데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고대 문장처럼, 로타의 실체는 저만치 서 있다.
몇 시간 내내 섬을 헤집고 다녔는데도 여전히 내게 로타는 미지(未知)다. 도무지 알 수 없고, 끝없이 아득하며, 기어이 어렵다. 억겁의 시간을 곳곳에 툭 던져 놓은 이 무심한 섬은, 고작 반나절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허락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고 검색 한 번에 발가벗겨지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알 수 없고, 알고 싶으며, 끝끝내 귀퉁이만 겨우 알게 되는 여행지가 남아 있다는 것. 얼마나 귀하고 다행스러운가. 나는 여전히 로타가 낯설다. 그래서 좋다.
■로타의 비밀스러운 장면 4

멸종위기종의 아지트
르첸촌 공원 조류보호구역
l'Chenchon Park Bird Sanctuary
로타 북동쪽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조류 보호 구역. 섬을 대표하는 자연 보호 구역 중 하나다. 야생 조류의 주요 서식지로, 수십 종의 바닷새가 절벽과 숲을 따라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특히 일부 종은 북마리아나 제도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절벽을 따라 전망대와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태평양과 열대림이 맞닿는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

비밀스런 천연 동굴
통가 동굴
Tonga Cave
송송(Songsong)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천연 동굴이다. 입을 벌린 채 숨어 있는 석회암 동굴로 들어서면 다른 차원의 공간에 온 것 같다. 기묘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순이 천장과 바닥에서 자라나며 기묘한 숲을 이룬다. 먼 과거 차모로인들이 삶을 의탁했던 통가 동굴은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일본군의 병동이자 피난처가 되어 주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시간을 삼킨 채, 동굴은 이제 로타의 원시적 고요함만을 내어 준다. 인공의 빛 한 점 허락하지 않아 어둠을 헤쳐야 하는데, 그마저도 이 섬이 간직한 가장 깊숙한 비밀을 엿보는 기분.

버터처럼 고소한
코코넛 크랩
Coconut Crab
로타의 눅눅한 숲과 해안의 경계에는 코코넛 크랩이 산다. 외모만 보면 무슨 외계 생명체 같은데, 이래 봬도 세계 최대의 육상 절지동물이다. 코코넛과 과일을 먹고 살며 그 풍미를 제 몸속에 농축시키는 덕분에 일반적인 게보다 농밀한 맛을 내뿜는다. 탄탄하게 차오른 속살과 버터처럼 고소한 내장은 흔한 '게 맛'을 넘어선다. 현지에서는 찜이나 구이로 조리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기교가 필요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잔잔한 천연 수영장
아스맛모스
As Matmos
로타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자연 해식 풀, 일명 '스위밍 홀(Swimming Hole)'. 절벽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들며 형성된 곳인데, 파도가 잔잔할 때 맑고 투명한 물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어 로타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로 꼽힌다. 외해와 맞닿아 있지만 암벽이 필터처럼 파도를 한 번 걸러 줘 비교적 잔잔한 수면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 다만 날씨와 파도 조건에 따라 접근이 제한되기도 하니, 방문시에는 반드시 현지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마리아나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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