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재생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치권”…뻔한 공약 대신에 주민들이 내민 정책

2026. 5. 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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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자치 공동행동 “읍·면장과 이장, 주민이 직접 뽑자” 등 지선 공약 제시
지난해 3월 충남 홍성군 장곡면의 오누이 다목적회관에서 ‘읍면자치 공동행동’ 발족식이 열렸다. 읍면자치 공동행동 제공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는 ‘동락점빵’이라는 작은 가게가 있다. 2011년, 마을에 하나 있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가 행안부 마을기업 사업비에 자비를 보태 차린 곳이다. 2014년부터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면 소재지에 있는 4평 규모 매장을 기반으로, 매주 목·금요일에는 이동 차량이 42개 마을을 순회하는 이동점빵을 운영한다. 이동점빵의 주 이용자는 차량이 없는 고령층으로, 구조적으로는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이를 지탱하는 축은 고정 매장이다. 젊은 층과 지역 주민이 매장을 이용해 발생한 수익이 이동점빵의 적자를 보전한다. 여기에 경로당 부식비, 위기가정 지원 예산, 학교 간식 공급 등 공공 재원이 점빵을 통해 순환되도록 설계했다. 지역 내 소비와 공공 지출을 연결해 이동점빵의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확보하도록 했다.

권혁범 대표는 점빵의 지속 가능성을 ‘자치’에서 찾았다. 그는 “농촌 읍면의 식품 사막화 문제를 주민 다수가 공동 과제로 인식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 공론장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 인식이 공유되지 않으면 사업은 세금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초기에는 읍내 상점이나 온라인 구매로 충분한데 왜 이 같은 사업을 하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지만, 숙의 과정을 거치며 고령층의 먹거리 접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권 대표는 이러한 과정 없이 도입된 유사 사업은 보조금이 중단되면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숙의를 통해 형성된 운영 원칙이 지역의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라며 “생활과 직결된 의제일수록 주민자치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락점빵의 사례는 주민이 직접 결정하고 운영하는 자치 구조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농촌의 생활 기반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돈은 내려오는데 농촌은 왜 안 살아나나

지역소멸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전국 면 단위 인구는 1980년 1146만명에서 2024년 439만명으로 급감했다. 면의 면적은 전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인구는 전체인구의 30%도 되지 않는다. 읍면자치 공동행동은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자치권의 부재’로 진단한다. 지난해 3월 전국 네트워크 단체로 발족한 이 단체는 충남 홍성을 기반으로 한 마을학회 일소공도, 공익법률센터 농본, 전국주민자치화네트워크 등이 연대해 만들었다. 이들은 “농촌 재생의 실마리는 행정 주도의 하향식 개발이 아닌, 주민이 직접 계획하고 집행하는 ‘작은 자치’의 구현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권리.” 읍면자치 공동행동의 사무국을 맡고 있는 강윤정 일소공도 국장은 말했다. 역대 정권에서 농촌 관련 예산은 꾸준히 늘어왔다. 그러나 강 국장은 “실제로 농촌이 재생되고 있냐고 물었을 때는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부처별로 사업들은 파편화됐고, 정권마다 다른 이름을 달고 제각각 추진됐다. 운영위원으로 함께하는 하승수 농본 대표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농촌 지원 사업이 결국 건물 짓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유지·관리 비용은 뒷받침되지 않아 방치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하 대표는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권한이 문제”라며 “자치권만 있으면 각 면 지역 실정에 맞게 예산도 쓸 수 있고, 농림부·복지부·교육부로 나뉜 칸막이 사업들도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읍면자치 공동행동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10대 정책 제안과 10대 시범사업, 6대 법·제도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예컨대 시범사업 중 하나인 ‘읍면 단위 먹거리 선순환 체계 및 먹거리 복지’는 앞서 살펴본 동락점빵 사례처럼, 각 지역의 먹거리 문제를 지역 여건에 맞게 자치적으로 해결하자는 구상이다. 현재 지자체 먹거리 정책은 시군 단위, 농가 소득 중심으로 설계돼 실제 읍면 주민의 식생활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읍면 단위에서 로컬푸드 직매장과 공유주방을 운영하고, 경로당 급식이나 반찬 배달 등 먹거리 복지를 결합하는 구조를 제안한다. 동락점빵이 지역 매장 수익과 공공 급식 수요를 연결해 이동점빵을 유지하듯, 생산·유통·복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소농에는 판로를, 고령 1인 가구에는 식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들 제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치’다. 읍면 단위에서 주민이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는 구조를 복원하자는 취지다. 그 출발점으로 제시된 것이 ‘읍·면장 주민추천제’다. 현재 읍·면장은 군청의 인사 발령으로 임명되며, 주민이 수립한 마을 계획도 면장이 교체되면 중단되거나 원점으로 돌아가기 쉽다. 강 국장은 이를 제도적 후퇴의 결과로 설명한다.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 당시 읍면은 독립된 기초자치단체였고, 읍장 면장을 주민의 손으로 뽑았고 면의회, 읍의회가 있었다. 그러나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이 구조는 사라졌다. 이 같은 ‘형식상의 자치와 실제 권한의 괴리’는 이장 제도에서도 반복된다. 통상 이장을 주민이 선출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임명권은 읍·면장에게 있다. 강 국장은 이 제도가 일제강점기 구장 제도에서 이어진 행정 위촉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개발 등 주요 현안에서 주민 입장을 대변한 이장이 다음 위촉에서 배제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그는 “마을에서 선출한 대표라면 행정이 이를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데, 현행 제도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읍면자치 공동행동은 마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마을자치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 주민 동의 없는 폐교·농어촌 유학

교육 영역에서도 ‘자치’는 지역소멸을 막고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제시된다. 10대 제안 중 하나인 ‘작은 학교 살리기와 마을교육공동체 강화’ 제안은 학교 존폐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주민의 권한을 복원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국 면 지역은 초등학교가 한 곳만 남아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고, 통폐합 논의에서 주민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강 국장은 “초등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단순한 시설 폐지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읍면 단위 농어촌학교 특별보호구역을 지정해 주민 동의 없는 폐교를 제한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농어촌 유학 역시 주민 자치를 기반으로 농촌 활성화의 핵심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 학생이 일정 기간 농촌 학교로 전학해 생활하는 이 제도는 최근 교육청 지원으로 빠르게 확산했지만, 운영 과정에서 지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윤요왕 농촌유학전국협의회 회장은 전국 약 2000명의 유학생이 농어촌 학교에 머물고 있다고 추산하며 “농촌에서 2000명은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라고 평가했다. 강원의 별빛교육센터 사례처럼 졸업생의 상당수가 돌아가지 않고 지역에 남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학교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 속에서 마을이 함께 참여하는 체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자치의 문제로 연결된다. 방과 후 생활, 지역 아이들과의 관계, 도시 부모들의 생활 민원을 조율할 주체가 없다 보니 냉장고 고장이나 변기 수압 같은 민원들도 학교로 쏟아지고, 지역 아이들 사이에서는 역차별 불만도 나온다. 윤 회장은 “마을 주민들이 도시에서 온 아이들을 지역 구성원으로 어떻게 함께 품을지에 대해 자치의 관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읍면자치 공동행동은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중앙당에 10대 정책 제안 등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치권이 없어서 문제가 반복된다는 진단, 그리고 읍면 단위에서 주민이 직접 계획하고 집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요구다. 강 국장은 “얼굴이 보이는 작은 자치를 해야지 농촌 활성화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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