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밖에서 ‘이웃으로 산다’는 것…탈시설은 어떻게 ‘집’이 되는가

2026. 5.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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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씨 삶을 통해 들여다본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시설 밖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필요한 건 뭔가” 우리 사회에 되물어
뇌병변 장애인 김현수씨(왼쪽)가 친구들과 강원 평창 장암산 활공장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김현수씨 제공

뇌병변 장애인 김현수씨(50)의 취미는 캠핑이다. 지난 4월 28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빌라, 그의 집 거실 벽에는 전국 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지도의 길을 따라 전국을 다닌다. 4월 초에는 장애인 친구들과 휠체어가 들어가는 차량을 빌려 2박3일 강원 삼척에 다녀왔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서울식물원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를 돕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매일 2시간씩 동네 산책을 즐긴다.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한때 강서구 방화동의 한 복지관에서 컴퓨터 문서 정리하는 일을 하며 월 50만원씩 벌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로 1시간씩 이동하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김씨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월급과 장애인연금,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생활했고, 남는 돈으로 A사 주식을 조금씩 사 모았다. 그렇게 모은 주식이 어느새 20주가 됐다. “작년에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대박이 났어요. 수익률이 120%나 돼요.” 거실 벽에 붙은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는 그가 넷플릭스를 통해 보는 애니메니션의 피규어 4개가 진열돼 있었다.

옆에는 인터뷰에는 관심 없다는 듯 고양이 2마리가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김씨가 고양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적해서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했는데, 강아지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고양이를 키워요. ‘메주’와 ‘콩이’를 키우면서 말이 많아졌어요.”

캠핑과 산책을 즐기고, 투자하고, 반려묘를 키우고, 넷플릭스를 즐기는 일상. 여느 중년 독신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김씨에게 이는 기적에 가깝다. 그는 15세(1991년)부터 44세(2020년)까지 인생의 절반이 넘는 29년간을 경기 김포의 한 장애인요양원에서 지냈다. 장애인시설을 나와 홀로 선다는 것은 그에게 단순한 주거 이동이 아니라 삶의 결정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 머문다. 보건복지부의 ‘2025 장애인복지시설 일람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장애인 장기 거주시설(공동생활가정 제외)은 전국 614곳, 입소자는 2만2510명이다. 장애인들의 기본권과 시설 밖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4월 23일 국회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통과시켰다.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명시한 첫 기본법으로, 지역사회 자립생활과 ‘탈시설화’ 지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했다.

하지만 법 조항이 생겼다고 시설 밖의 삶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시설 밖의 삶을 지탱할 주거, 돌봄, 관계, 소득의 기반은 충분한가. 법이 선포한 권리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주간경향은 시설 밖에서 자신의 일상을 다시 만들어가는 김현수씨의 삶을 통해 그 간극을 들여다봤다.

뇌병변 장애인 김현수씨가 4월 28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자신의 집 거실에서 반려묘 메주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재덕 기자

바깥세상과 끊긴 29년

김현수씨는 또래보다 3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정확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던 삼육재활학교(현 새롬학교)의 초등학교 과정이었다. 그곳을 5년 넘게 다니다 졸업도 하기 전인 1991년, 경기 김포의 장애인 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애초 서울 강서구 양천동(현 양천구 신월동)에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이 도시미관과 질서 정비에 나서던 시기, 요양원은 김포로 이전했다. 장애인과 빈곤층을 도시 바깥으로 밀어내던 당시의 흐름과 맞물린 이동이었다.

요양원은 거주하는 장애인이 100명이 넘는 대형 시설이었다. 커다란 방 하나에 장애인 여러명이 함께 지냈다. 남녀 구분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몸을 가릴 공간이 없었다. 방 안에는 각자의 사물함과 TV만 있었고, 방과 방 사이에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많은 대형 시설이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

김씨는 처음 시설에 들어갔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너무 답답해서 울고 짜증만 냈죠.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원해서 들어왔다는 생각에 원망도 많았어요. 그 당시 부모님 입장에서는 시설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양원은 가족들에게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평생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논뿐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론가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은 시설 내 마당을 맴돌다 갈 곳이 없어 입구 앞 향나무 근처에 모여 잡담을 하곤 했다. 사지가 마비된 이들은 바깥 구경도 못 하고 방안에 누워 하루종일 지냈다.

쥐가 갉아먹은 식재료가 식탁에 올랐고, 밤 9시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소등됐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김씨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입소자들이 직원들에게 맞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시설 안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도 단절돼 있었다. 온 세상이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한 뒤에도 입소자들은 휴대전화를 가질 수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TV를 통해서야 바깥세상이 떠들썩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무렵 외부에서 시설에 전동휠체어 1대를 기부했다. 시설에서는 누가 전동휠체어를 가장 잘 조작하는지 겨뤘고, 김씨가 그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는 그날 전동휠체어를 타고 시설 앞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다고 했다. 가끔 옷을 사야 할 때면 시설 직원들이 떨이 옷을 파는 매장에 데려갔다. 입소자들은 직원들이 골라준 싼 옷을 입었다. 그때는 그 돈이 장애수당 등 자신들에게 지급된 정부 지원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변화는 우연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2007년 어느 날, 입소자들이 시설 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자신들에게 지급돼야 할 장애수당이 다른 곳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소자들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석암재단을 관할하는 양천구청 앞에서, 그리고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그해 서울시 감사에서 재단 이사장 일가의 보조금 유용과 장애수당 부정 집행이 드러났다. 기존 이사진은 물러났고, 인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 공익이사진으로 교체됐다. 석암재단은 ‘프리웰’로, 재단 산하 요양원은 ‘향유의 집’으로 이름을 바꿨다. 운영 방향도 달라졌다. 시설은 거주인의 자립과 탈시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향유의 집으로 바뀌면서 김씨도 외출이 자유로워지고, 장애수당으로 원하는 옷도 사입을 수 있게 됐다.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나이키 매장에 가서 트레이닝복을 샀어요. 수당이 많지 않아서 비싼 옷은 못 샀지만요.” 2020년 향유의 집이 자진 폐쇄되면서 김씨는 서울시와 프리웰이 함께 마련한 탈시설 장애인 지원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 그가 사는 장안동 집이다.

경기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에 있는 ‘여기가(家)’ 모습. 이재덕 기자

“여기가 바로 내 집이에요”

지원주택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된 주거 모델이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확보한 일반 주택에 탈시설 장애인이 입주하고, 운영기관은 주거 유지와 일상생활을 돕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사는 빌라 건물 안에서 이웃으로 함께 산다. 생활을 지원하는 코디네이터 사무실도 같은 공간 안에 마련돼 있다. 2025년 기준 서울시에는 10개 자치구에 장애인 지원주택 총 305호가 마련돼 있다. 이 가운데 김씨가 입주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빌라에는 지원주택 9호가 있다.

지원주택은 현재 서울시에서만 도입된 상태다. 거주 기간은 20년, 보증금은 평균 300만원, 월세는 30만원 안팎이다. 지원주택에 입주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장애인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거급여로 이 월세를 충당한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은 필수적이다. 김씨처럼 일상생활 전반에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 정부가 지원하는 기본 활동지원 시간에 더해, 서울시는 탈시설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게 추가 활동지원 시간을 제공한다. 김씨의 경우 기본 활동지원 약 400시간에 중증 장애인 추가 지원 200시간가량이 더해진다. 탈시설 초기 3년간은 추가 지원 120시간도 받았다. 배정된 시간 안에서는 비용 부담 없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씨가 지난 6년간 경험한 시설 밖의 삶은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었다. 주거와 활동지원, 지역사회 관계가 함께 맞물리면서 비로소 그의 자립이 가능해졌다.

다만 김씨의 자립생활이 지속되려면 중증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시가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오세훈 시장 체제에서 2024년 폐지됐다. 이후 이 사업 모델은 경기·전남 등 다른 광역지자체로 확산됐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사라진 상태다. 시설과 지역사회를 잇는 연결망도 약해졌다. 서울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방문해 입소 장애인을 만나고, 이들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 연계 사업’을 해왔는데 서울시는 2024년부터 이 사업 역시 축소·폐지했다.

폐쇄된 요양원이 있던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프리웰은 시설 폐쇄 후 그 자리에 장애인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의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해 지난해 임대주택 3채(총 28호)를 완공했다. 현재 장애인 가구(총 13호), 아동양육가구(총 7호), 1인 가구(총 8호)를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임대주택의 이름은 ‘여기가(家)’로 지었다. ‘여기가 바로 내 집이에요’라는 의미가 담겼다.

장애인 가구가 입주하는 집은 중증 휠체어 장애인들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화장실 공간을 넓히고 문 너비를 늘리고, 문턱을 없앴다. 각 층에는 장애인 가구와 아동양육가구가 섞여 살도록 했다. 공유주방, 커뮤니티실 등 주민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에게 장애인 전용 임대주택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다양한 가구를 위한 임대주택을 만든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이다. “장애인만 살면 또 장애인들만 모여사는 시설과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요.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렇게 함께 사는 주택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장애인의 기본권이 법으로 보장되고 탈시설 전환이 추진되는 지금도,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 강화군의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의 원장이 여성 입소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이 권리를 선언했지만, 현실은 아직 그 권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김씨의 탈시설 경험은 한 사람의 독립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 체계가 무엇을 빼앗아왔는지, 시설 밖의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 되묻는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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