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입시 전략이에요?”···대치동 영어 강사가 자식들 시골서 키우는 이유

“이건 도대체 무슨 입시 전략이에요? 지역 인재 전형 같은 걸 노리신 건가요?”
2019년 서울 대치동에서 강의를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충북 증평의 시골 마을로 내려간 심정섭씨(52)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납득이 안 됐나 봐요. 대치동 20년 노하우를 자기 자식 입시에 활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떠나버리니까 또 다른 전략인가 싶었던 거죠.”
심씨는 대치동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며 학원 운영에도 참여했다. 연간 1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입시 컨설팅과 학군지 상담에도 이골이 나 <대한민국 입시지도>라는 책까지 냈다. 최근에는 <AI 시대 학부모가 할 일>도 펴냈다. 정작 자신의 자녀는 시골에서 키우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치동은 아이를 ‘맹자’로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치동은 ‘학군지 중의 학군지’다. 대치동과 강남권역에는 전국 1700여 개 인문계고 상위 100개 고교 중 상당수가 몰려있다. 대치동의 한 자사고는 2022년 한 해에만 의대 합격자 151명을 배출했다. 일반고들도 특목 자사고 못지 않은 이른바 ‘갓반고’다. 학원가도 성황이다. 다른 학군지 거주로 추정되는 학부모가 이 학원가 인근 도로로 캠핑카를 몰고 온 모습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심씨는 “대치동에 수능 대비를 일찍부터 시켜줄 수 있는 강사들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원래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입시 결과가 좋은 것”이라고 했다. “학원은 입시 결과가 곧 경쟁력이기 때문에 못 하는 아이를 잘하게 만드는 것보다 잘하는 아이를 더 잘하게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이른바 ‘레벨 테스트’로 아이를 가려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대치동은 아이를 바꾸는 곳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아이를 가려내는 곳에 가깝다는 취지의 얘기다.
심씨는 ‘맹모삼천지교’를 하기 전에 자녀가 ‘맹자’인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했다. “암기력, 계산능력, 5~6년 동안 하루 3~4시간 문제를 풀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준비’가 안 된 아이가 대치동에 가봐야 학교에선 ‘내신 깔아주는 아이’, 학원에선 ‘전기세 내주는 아이’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자존감 상실이에요.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포기로 귀결되곤 합니다.”
아이를 ‘맹자’로 만드는 건 “부모 몫”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부 부모들의 착각이 ‘7세 고시’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영아 단계에서부터 다른 학원을 보내는 게 ‘준비’라고 착각하시는 거죠.” 그는 “이건 ‘준비’가 아니라 “준비도 안 된 선수를 마라톤에 내보낸 것도 모자라 초반부터 전력 질주를 시키는 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번아웃’이 옵니다. 미리 문제를 많이 풀게 하고 인지 능력이 감당하지도 못하는 선행 학습을 시키는 게 준비가 아니에요. 암기력은 타고나는 거고, 치열한 공부 경쟁을 몇 년씩 버티는 건 체력과 근성의 영역이에요. 차라리 그 나이 땐 운동을 시키는 게 낫다고 봅니다.”

심씨는 실제로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시골 출신들은 근성이 있어요. 산과 들을 누비며 길러지는 체력, 들판을 뛰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근성, 미지의 숲속에 발걸음을 내딛는 배짱, 지루한 환경 속에서도 재미를 찾는 창의력, 그런 것들을 준비시키려 했습니다.”
지방의 교육 여건은 대도시보다 열악한 게 사실이다. 교육 인프라나 콘텐츠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면학 분위기도 대도시 학교들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물었다.
“면학 분위기보다 중요한 게 아이의 자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신 측면에서도 용 꼬리보다 뱀 머리가 낫다고 생각해요. 사교육비나 주거비도 별로 안 드니 가성비도 있고요.”
그는 자녀들이 ‘맹자’가 되더라도 대치동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치동의 신화를 유지해주는 한국의 사회구조가 더는 지속되지 않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지금까진 대학 졸업장이 삶의 보증수표가 돼 왔죠. 그래서 교육은 입시에 맞춰지고, 집을 팔고 노후자금을 깨서라도 사교육에 투자했죠. 대치동에서 ‘에듀푸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인공지능의 시대엔 정해진 답을 정확하고 빨리 찾아내는 ‘대치동 적성’만으론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녀들에게 ‘대학에 합격할 힘’이 아닌 ‘살아갈 힘’을 물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래 자본주의 사회에선 ‘물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격언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훨씬 잘 잡습니다. 언제든 대체되겠죠. 차라리 ‘물고기’를 줄 생각이에요. 돈을 대치동에 쏟아붓는 대신 아이에게 줄 겁니다. 그 돈을 투자할 자신만의 길을 찾아낼 창의력, 그 길에 발걸음을 내디딜 배짱, 내디딘 걸음을 끝까지 지속할 근성도요.”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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