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암세포 연쇄 파괴자 ‘CAR-T’] 살아 있는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3가지 동시 치료

자가면역질환은 수많은 환자에게 평생 안고 가야 할 형벌과 같다. 인체 방어군인 면역 체계가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공격하면 백약이 소용없다. 독일의 47세 여성이 이런 자가면역질환을 세 가지나 앓다가 자기의 면역 세포로 만든 살아있는 항암제로 완치되는 기적을 이뤘다.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 에를랑겐 대학병원의 파비안 뮐러 교수 연구진은 “자가면역질환 세 가지에 걸린 여성 환자가 단 한 번의 세포 치료 후 14개월째 약물 없이 건강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4월 9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메드’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환자의 면역 체계를 통째로 재설정해 호전을 넘어 완치에 가까운 상태를 끌어낸 세계 최초의 기록이라고 밝혔다.
혈액 기능 총체적 마비 상태서 회복
환자는 혈액 기능이 망가져 10년 넘게 침대에 누워 수혈에 의존하고 있었다. 원인은 면역 세포인 B세포에 있었다. B세포는 항체를 생산해 외부 침입자를 찾아 무력화시키고 다른 면역 세포를 불러 파괴한다. 하지만 고장 난 B세포가 만든 항체는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공격해 자가면역 용혈성 빈혈(AIHA)을 유발했다.
비정상 B세포가 만든 ‘반란군’ 항체는 혈액 응고를 돕는 혈소판도 공격해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ITP)을 일으켰고, 일부 지질 결합 단백질을 공격해 혈전(피떡)이 잘 생기는 항인지질항체 증후군(APS)까지 유발했다. 말 그대로 심각한 빈혈에다 피가 잘 멎지 않거나 피가 너무 굳을 위험이 공존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환자는 이미 아홉 가지 치료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상태였다. 혈액 성분이 부족해 매일 혈액 백을 세 개까지 수혈받아야 했다. 이 환자를 살린 것은 카티(CAR-T) 세포였다. 한 번 몸에 넣어주면 증식하면서 계속 암세포를 죽인다고 ‘살아 있는 약물’ ‘암세포의 연쇄 파괴자’로 불리는 면역 항암제다.
카티 세포 치료 효과는 극적이었다. 늘 침대에 누워 살던 환자는 치료 7일째 스스로 일어났다. 수혈받지 않고도 문제가 없었다. 치료 25일째 적혈구에서 산소와 결합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적혈구가 파괴되는 용혈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환자는 치료 14개월째인 지금까지 면역 억제제나 보조 약물 없이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면역 체계 재설정, B세포 정상화에 성공
카티 세포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가진 T세포를 의미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동물 키메라처럼, 면역 세포인 T세포에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을 찾는 유전자까지 결합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다른 항암제와 달리 정상 조직을 두고 암세포만 공격해 치료 효과가 월등하다.
연구진은 환자 혈액에서 T세포가 암세포 대신 항체를 만드는 B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인 CD 19를 찾아 공격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카티 세포가 반란군 항체를 생성하던 B세포를 추적해 섬멸하도록 한 것이다. 단순히 증상을 억제하지 않고 면역 체계가 고장 난 근본 원인을 없애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카티 세포 치료 몇 달 후 B세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새로 형성된 B세포는 더 이상 환자의 몸을 공격하지 않았다. 카티 세포 치료가 면역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면역 재설정에 성공했다는 의미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부작용도 거의 없었다.
카티 세포는 혈액암 치료에서 간혹 암세포가 한꺼번에 죽으면서 염증 반응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을 유발했다. 연구진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에서는 카티의 공격 대상이 암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론 환자에게 일부 경미한 증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카티 세포 치료보다는 이전의 약물 치료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KCL)의 루벤 벤저민 교수는 “매우 강력한 치료법임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이 완치된 것은 정말 환상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른 자가면역질환 치료도 기대
카티 세포는 이미 여러 혈액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부터 2024년 영국 오토러스의 오캣질까지 7종의 카티 세포 치료제를 승인했다. 모두 인체를 지켜야 할 면역 세포가 암세포로 돌변한 혈액암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문제는 비용이다. 카티 세포 치료는 환자의 세포를 채취하고 몸 밖에서 유전자를 바꿔 증식하는 과정이 필요해 1회 투여에 수억원씩 들어간다. 하지만 뮐러 교수는 환자가 그동안 복용한 수만 알의 약이나 반복적인 입원 비용에다 다시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티 세포가장기적으로는 경제적인 치료라고 밝혔다.
카티 세포 치료는 일반적으로 백혈병 같은 혈액암 치료에 사용되며, 자가면역질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실험 단계다. 시 준 중국 베이징 연합의과대학 혈액학 및 혈액질환 연구소 부소장은 “카티 세포가 자가면역질환을 완치했다고 확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적인 추적 관찰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다. 카티 세포 치료의 선구자인 칼 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200여 건의 자가면역질환 대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며 “1~2년 안에 카티 세포 치료가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전신성 경화증 등 여러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승인이 잇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카티 세포 치료 비용도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준 교수는 2025년 10월 ‘사이언스’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들 유전정보가 담긴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몸 안의 T세포에 직접 전달해 몸 안에서 카티 세포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카티 세포 생산 과정을 몸 안에서 해결하면 치료제 개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