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기의 HR 이야기] 인재 확보를 넘어 ‘전략적 방출’이 필요한 순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음은 분명하나, 그러면서도 조직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인재는 주변의 더 많은 인재를 이탈하게 하고, 조직 자산을 좀먹는다. 진정한 전략적 HR은 성과와 적합성 사이의 ‘병행’을 넘어, ‘우리 조직의 철학을 훼손하는 성과는 가짜 성과’임을 선언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유난히 이직이 잦았던 필자는 과거 여러 상사에게 사직서를 던졌다. 다행히 ‘쓸모 있는 인간’이었는지, 사직서가 반려되거나 카운터오퍼까지 받는 과분한 경험도 했다. 자, 이제 리더인 당신 앞에 한 직원이 찾아와 이별을 고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얼마나 강하게 그를 붙잡을 것인가.
만약 ‘이 사람이 떠나면 당장의 업무 공백은 어쩌지?’ ‘새 사람 뽑아 교육할 시간도 비용인데’ 같은 생각만 든다면, 당신에게는 ‘인재 확보’ 전략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인재 최적화’ 전략은 없다는 뜻이다.
전략은 선택, 선택은 ‘무엇을 버릴 것인가’의 문제
경영학의 거장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명제는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뿐 아니라 HR(인적자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많은 기업은 ‘좋은 인재일수록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이는 전략이라기보다 ‘손실 회피’에 가깝다. 냉정히 특정 시점의 경영 전략과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인재까지 억지로 품는 것은 조직의 밀도를 희석하고 혁신의 속도를 늦춘다.
여기서 ‘좋은 인재’를 재정의해야 한다. 흔히 HR에서는 직무 적합성(People & Job Fit)과 조직 적합성(People & Organization Fit)을 두 축으로 삼는다. 이상적인 인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이다. 문제는 이 두 축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적지 않은 리더가 고성과자의 무례함이나 독단적인 태도를 ‘능력’이라는 미명 아래 묵인한다. 하지만 이는 눈앞의 황금알을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음은 분명하나, 그러면서도 조직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인재는 결국 주변의 더 많은 인재를 이탈하게 하고, 조직 자산을 좀먹는다. 진정한 전략적 HR은 성과와 적합성 사이의 ‘병행’을 넘어, ‘우리 조직의 철학을 훼손하는 성과는 가짜 성과’임을 선언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조직의 신진대사 결정하는 ‘전략적 방출’
필자가 몸담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나 글로벌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 같은 기업은 인력 운용에 분명한 ‘순환 원칙’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실적이 나쁜 사람을 솎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이 고이지 않도록 ‘의도적인 신진대사(Strategic Turnover)’를 일으키는 데 집중했다. 두 기업이 기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일정 비율의 교체를 단행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오늘의 고성과자가 내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한 시니어 인력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 피’와 ‘외부 수혈’ 인재가 들어올 공간은 사라진다.
글로벌 선진 기업은 ‘떠남’을 설계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기업에도 그때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포스트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쳐 AX-(AI Transformation·AI 전환) 시대로 진입하면서 노동시장의 구조와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하는 방식도 혁신하고, 구성원의 가치와 철학도 마찬가지다. 참고할 만한 몇 가지 사례다.
넷플릭스(Netflix)의 ‘키퍼 테스트(Keeper Test)’: 리더가 ‘이 직원이 오늘 그만둔다고 하면,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울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에 대한 대답이 만약 ‘아니요’라면, 직원에게 넉넉한 퇴직금을 주고 작별을 고한다. 이것이 넷플릭스가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자포스(Zappos)의 ‘더 오퍼(The Offer)’: 신입사원 연수 기간 중 ‘지금 그만두면 20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정식 조직 배치 전, 조기에 회사의 가치에 진심인 사람만 남기고 비용은 부담한다는 ‘의도적 거르기’ 전략이다.
에어비앤비(Airbnb): 팬데믹 당시 대규모 감원을 진행하며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진심 어린 편지와 함께 퇴직자의 재취업을 돕는 ‘인재 디렉토리(떠나는 직원을 위한 특별한 웹사이트에 프로필과 포트폴리오를 올려 유망 리쿠르터에게 이들의 역량을 회사가 보증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함)’를 공개했다. 이별이 브랜드의 훼손이 아닌, 강력한 우군을 만드는 과정임을 증명했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예우가 결국 남은 사람의 몰입도를 결정한다’는 역설을 보여준 사례다.
의도적으로 놓아줘야 할 인재: 전략적 방출의 대상
그렇다면 어떤 인재를 포기해야 하는가. 다음 세 유형의 인재가 사직서를 낸다면, 미련 없이 손을 흔들어주자.
독불장군형 고성과자(Brilliant Jerks): 성과는 탁월하나 팀워크를 파괴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저해하는 자. 넷플릭스처럼 ‘아무리 뛰어나도 무례한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성장 정체 및 안주형(The Settlers):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어 AX 등 변화하는 조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변화를 교묘하게 거부하는 자.
가치 불일치자(Values Mismatches):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 이들을 붙잡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고문과 같다.
이외에도 회사의 전략, 철학, 조직 문화 등에 비춰 경영자와 HR은 대상에 대한 전략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며, 전략적 방출은 감정이나 즉흥적인 성과 판단과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 평소의 종합적 성과 관리, 전향적이고 투명한 커리어 전환 프로그램,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 작업의 프로세스에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라는 현실적이며 제도적인 뒷받침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리텐션 종말의 시대 앞에 서서: 기업이 인재를 놔줘야 하는 이유
HR의 역할은 ‘적합한 사람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 돼야 한다. 모든 인재를 전통적 개념으로 유지하려는 조직은 변화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질문을 바꿔 ‘우리와 함께할 때 가장 빛날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다른 곳에서 더 행복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전략은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그리고 HR에서 그 선언은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기꺼이 보낼 것인가’로 대변된다. 전략적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조직의 다음 단계를 위한 가장 정교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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