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 골프 오디세이 <271> PGA투어에 울려 퍼진 ‘U-S-A!’ 연호] “에티켓의 종말” vs “팬 확장 위한 변화” 엇갈린 시선


2026년 4월 1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 헤드 아일랜드의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잉글랜드 출신의 매튜 피츠패트릭(32)과 미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스코티 셰플러(30)가 PGA투어 시그니처 이벤트(특급 대회)인 RBC 헤리티지 우승컵을 두고 연장전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18번 홀(파4) 주변을 둘러싼 갤러리는 노골적으로 셰플러를 응원하며 “U-S-A!”를 연호했다. 일반적인 PGA투어 대회라고는 믿기 힘든, 마치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 하는 뜨겁고 적대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피츠패트릭은 약 4m 거리의 버디 퍼트를 홀컵에 떨구며 우승을 차지했고, 맹렬했던 군중의 함성은 그 순간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침묵으로 바뀌었다.
이날 피츠패트릭이 보여준 굳건함과 관중의 기이한 침묵은 현대 골프가 맞이한 거대한 문화적 변곡점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통적으로 ‘정숙(Quiet, please)’과 에티켓의 대명사였던 골프라는 스포츠가, 이제는 미식축구(NFL)나 유럽 축구장에서 볼 법한 거칠고 맹렬한 군중의 열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골프의 중심 무대인 PGA투어 전반에 걸쳐 미국 관중 특유의 애국주의가 가미된 응원 문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PGA투어에 스며든 ‘라이더컵’의 그림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PGA투어 일반 대회에서 특정 선수의 국적을 이유로 야유를 보내거나 국가를 연호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명백히 다르다. 피츠패트릭은 이번 RBC 헤리티지뿐만 아니라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도 미국의 캐머런 영과 우승 경쟁을 벌이며 노골적인 야유와 “U-S-A!” 연호의 타깃이 되었다. 중계진조차 이를 두고 “라이더컵 같은 분위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선수와 유럽 선수가 우승을 다투는 구도가 형성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선수의 훌륭한 샷에 국적을 불문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 골프 갤러리의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내 나라 선수냐 아니냐’에 따라 적대적인 압박 환경이 조성되는 이른바 부족주의(tribalism)적 응원이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선수가 겪은 사례를 보면 이러한 변화의 수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체감할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욘 람은 미국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에서 미국 관중의 노골적인 편파 응원과 야유를 겪은 뒤 “관중이 특정 선수를 응원하는 건 이해하지만, 존중은 유지돼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선을 넘은 애국주의: ‘F* you Rory’ 사태
이러한 공격적 애국주의 응원 문화의 정점이자 진원지는 바로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이다. 본래 라이더컵은 양 대륙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감정이 극대화되는 대회이긴 했으나, 최근 미국에서 개최된 대회들은 스포츠의 범위를 넘어선 거친 정치·문화적 충돌의 장으로 변모했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스스로 골프 애호가를 자처하고 다수의 골프장을 소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뉴욕주 베스페이지 블랙 코스에서 열린 라이더컵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미국 관중의 응원은 단순한 스포츠 열기를 넘어 강력한 정치적 상징성과 맹목적인 애국주의로 무장하게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가디언 등 주요 매체는 트럼프의 등장이 골프장에 ‘우리 대 너희(Us vs Them)’라는 정치적 구도를 형성하고 애국주의적 분위기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경호 문제로 수많은 관중이 경기 초반을 놓치는 혼란 속에서도, 관중 행동에는 트럼프식의 ‘강력한 미국’을 투영하려는 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으며 이는 배타적인 공격성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25년 베스페이지 라이더컵은 영국 매체로부터 “역대 가장 공격적인 라이더컵”이라는 오명을 썼다. 미국 팬은 유럽의 에이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향해 집단으로 “F*** you Rory”라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외쳤고, 일부 관중은 선수 가족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거나 코스 안으로 맥주를 투척하는 등 명백히 선을 넘는 난동을 부렸다. 급기야 선수가 셔틀로 이동하는 중 팬과 물리적인 충돌 상황까지 빚어지면서 PGA 오브 아메리카가 공식 사과에 나섰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시각 차이
이렇게 트럼프가 불을 붙이고 라이더컵에서 폭발한 이 거칠고 폭력적인 에너지가 이제는 일반 PGA투어 대회로까지 번지고 있다. 라이더컵이라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예외적인 국가 대항전에서 머물렀던 극단적 분위기가, 매주 열리는 투어 대회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는 골프의 본질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갈린다. 영국과 유럽 매체는 골프의 전통적 가치 훼손에 분노한다. 가디언(Guardian)이나 토크스포츠(TalkSport) 등은 미국 관중의 행동을 ‘존중이 결여된’ ‘선을 넘은 무례함’, 심지어 ‘교육받지 못한(uneducated) 미국 팬의 부끄러운 행태’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미국 매체인 골프다이제스트(Golf Digest)나 골프닷컴(GOLF.com) 등은 관중의 ‘적대성(hostility)’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선수가 극복해야 할 스포츠 장벽이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언론은 골프가 점차 NFL이나 대학 농구 같은 거대한 팀 스포츠 응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분석하며, 이러한 열광적인 소음이 대회 흥행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력에 주목한다.

피할 수 없는 ‘시대 변화’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이 거친 변화를 가장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주체 중 하나는 바로 미국 관중의 타깃이 되었던 피츠패트릭이다.
미국 갤러리의 일방적인 셰플러 응원과 노골적인 야유를 뚫고 우승을 차지한 피츠패트릭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스윙 때 소리를 지르는 등의 선을 넘는 행동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어릴 적부터 거친 축구장 문화를 보며 자랐다는 그는 현대 골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골프에도 역동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매주 엄청난 돈을 받으며 수많은 관중의 함성을 듣는 것은 최고의 기분이다. 무엇보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야유를 이겨내고 가장 큰 라이벌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큼 짜릿한 느낌은 없다.”
피츠패트릭은 골프가 고루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벗고,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세대의 팬을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엄숙주의를 어느 정도 탈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식축구 경기장의 귀가 터질 듯한 함성이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폭발적인 응원가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숨소리조차 내면 안 되는 골프장의 잣대는 스포츠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생각한다. 흥행과 자본의 관점에서 관중의 소음은 곧 분위기이며, 분위기는 현대 스포츠의 가장 강력한 생명력이다.
챔피언 피츠패트릭의 여유
시대가 변하면 스포츠를 담는 그릇의 형태도 변하기 마련이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고요한 링크스 코스에서 탄생한 골프의 기준은 이제 21세기 미국의 거대한 상업 스포츠 자본과 대중의 열광적인 팬덤 문화와 결합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 미국 관중의 맹렬한 애국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피츠패트릭은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미국인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애국적이다. 내 생각에 유일한 문제는 그들의 기억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불과 지난해 10월 라이더컵에서도 우리가 이겼다.”
정숙함을 무기로 삼았던 골프는 이제 세상의 변화와 함께 시끄럽고 거칠게 박동하는 스타디움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새로운 챔피언은 그 새로운 소음마저 자기 무기로 삼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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