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는 흔들리고, 챗GPT는 달려오고, 딥시크는 따라붙는다 — 2026년 AI 전쟁의 판세

김태현 기자 2026. 5. 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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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저하’ 인정한 앤트로픽, ‘덕테이프’로 반격 나선 오픈AI, 가격 전쟁 불붙인 딥시크… 세 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AI 패권 쟁탈전

[우먼센스] 세계 최고의 AI로 군림하던 클로드가 스스로 "우리 제품이 석 달간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이, 한발 뒤처진 줄 알았던 챗GPT는 한글도 완벽하게 구현하는 차세대 이미지 모델과 GPT-5.5를 이틀 간격으로 쏟아내며 선두를 다시 노리고 있다. 거기에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는 중국의 딥시크가 바짝 등 뒤까지 붙어오고 있다. 불과 한 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사진=Gemini 생성

지난 4월 23일, 클로드를 서비스하는 앤트로픽(Anthropic)은 이례적인 공개 사과문을 내놨다. 개발자용 AI 도구 '클로드 코드'가 석 달가량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반적인 서비스 오류 공지가 아닌, 날짜, 커밋 단위, 버그 세 가지를 적시한 일종의 분석 보고서였다. 코딩에서 특히 강점을 드러내며 AI 1등 독주 체제가 굳혀질 것으로 보였던 클로드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앤트로픽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성능을 낮춘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과 함께, 모든 구독자의 사용 한도를 즉시 초기화하겠다는 조치도 함께 발표됐다.

앤트로픽의 세 가지 실수와 고백

앤트로픽이 밝힌 문제의 발단은 3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로드 코드의 기본 추론 깊이 설정을 'High'에서 'medium'으로 낮췄다. 변화를 채택한 표면적인 이유는 응답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용자 피드백이 쌓이자, 응답 속도를 끌어올리는 쪽을 택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속도는 빨라졌지만 추론의 질이 같이 떨어졌다.

사진=앤트로픽 블로그

3월 26일에는 두 번째 문제가 터졌다. 유휴 상태 세션의 사고 기록을 정리하려고 넣은 최적화 코드가 오작동하면서, 클로드가 매 대화 차례마다 이전 맥락을 전부 잃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아까 한 말을 또 물어본다"거나 "토큰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소진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버그는 단위 테스트와 자동화 검증을 모두 통과했고, 세 차례의 코드 리뷰도 빠져나갔다. 앤트로픽 내부에서조차 다른 변경 사항들에 가려 포착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마지막 문제는 4월 16일 시스템 프롬프트 수정에서 발생했다. '도구 호출 사이 텍스트는 25단어 이내로, 최종 응답은 100단어 이내로 줄여라'는 간결화 지침이 추가됐다고 한다. 불필요하게 장황한 답변을 줄이려는 의도였으나, 코딩처럼 충분한 사고 과정과 설명이 필수적인 작업에서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내부 평가에서 Opus 4.6과 4.7 모델에서 3% 성능 하락이 측정됐다. 사흘 뒤인 4월 20일 즉시 원복 조치가 이뤄졌다.

세 가지 변경이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이용자 구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체적으로는 광범위하고 일관성 없는 품질 저하처럼 보였다. 스텔라 로렌조 AMD AI 그룹 수석 디렉터는 6천800여 개 세션 파일과 23만여 건의 도구 호출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하며 "클로드는 이 기간 동안 복잡한 엔지니어링 작업을 맡기기 어려운 상태로 퇴행했다"고 결론내렸다. 이 분석이 확산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왜 이렇게 이상하지?"라고 느껴온 개발자들의 불만이 수치로 가시화됐다.

앤트로픽은 재발 방지책으로 내부 직원들이 외부 사용자와 동일한 빌드를 쓰도록 했다. 또한 시스템 프롬프트 변경 시 모델별 광범위한 평가를 의무화하고, 지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경은 단계적으로 배포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클로드는 요금제 측면에서도 혼선이 있었다. 4월 22일에는 신규 가입자 일부를 대상으로 월 20달러 요금제에서 클로드 코드를 제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20달러 요금제 사용자는 클로드의 최고 강점인 코딩 관련 작업을 못하게 막으면서다. 논란이 커지면서 클로드는 20달러 요금제 사용자에게도 다시 클로드 코드를 허용했다. 

오픈AI의 반격: 덕트테이프와 GPT-5.5

앤트로픽이 전열 수습에 분주한 사이, 오픈AI는 4월 21일(현지시간) '챗GPT 이미지 2.0'을 전격 공개했다. 주목할 점은 출시 샘플 속 만화 배경에 등장한 '벽에 테이프로 붙여진 바나나'다. 이는 오픈AI의 전략적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오픈AI가 블로그에 공개한 샘플 이미지. 오른쪽에는 덕트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가 보인다.사진=오픈AI 블로그

2019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바나나를 덕트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 '코미디언'을 통해 현대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구글이 차세대 이미지 모델에 '나노 바나나'라는 이름을 붙이자, 오픈AI는 개발 코드명을 '덕트테이프'로 정하며 카텔란의 풍자를 그대로 재현했다. 구글의 '바나나를 벽에 붙여 버리겠다'는 선전포고로 보여진다. 

기술 경쟁의 핵심은 이미지 내 '텍스트 구현력'으로 옮겨갔다. 양사 모두 추론 엔진을 이미지 생성 단계에 통합하여 텍스트 렌더링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오픈AI는 한국어를 비롯한 10개 이상의 다국어 인포그래픽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한편, 프롬프트 하나로 최대 8장의 컷을 일관성 있게 생성하며 만화 및 웹툰 시장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공략했다. 반면 구글의 '나노 바나나 프로'는 영어 기반의 제품 패키지를 별도의 재작업 없이 한국어로 즉시 번역·교체하는 등 실무 디자인 최적화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Gemini 생성

이틀 뒤인 4월 23일에는 차세대 모델인 GPT-5.5도 베일을 벗었다. 오픈AI는 대다수 벤치마크에서 클로드에 우위를 점했다고 발표했으나, 코딩 영역에서는 여전히 앤트로픽 모델이 강세를 보였다. 연내 기업공개(IPO)를 앞둔 오픈AI는 GPT-5.5를 주축으로 챗봇, 코딩, 문서 작성 등을 하나로 묶은 '수퍼앱' 생태계를 구축해 실질적인 실적 반등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딥시크의 추격: 가격 전쟁과 마누스 방어전

미·중 AI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서는 다른 성격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4월 말 전 모델의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최상위 모델 V4-프로는 한시적으로 75% 추가 할인까지 적용해 토큰 100만 개당 가격이 오픈AI GPT-5.5의 100분의 1 수준에 근접했다. 이번 가격 인하는 글로벌 기업 고객과 개발자를 빠르게 흡수하려는 시장 점유율 확장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생성형 AI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약 1%에서 올해 약 15%로 급등했다는 집계도 나온다.

사진=Gemini 생성

이에 맞서 미국은 기술 유출 차단에 나섰다. 백악관은 중국 기업들이 수만 개의 대리 계정과 탈옥 기법을 동원해 미국 AI 모델을 무단 증류하는 산업적 규모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내부 경고를 각 부처에 전달했다. 앤트로픽은 딥시크·문샷·미니맥스 등 중국 AI 기업 세 곳을 공개 고발했으며, 하원 외교위원회는 디스틸레이션 기법을 사용하는 기업을 수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담은 법안을 가결했다.

중국도 방어에 나섰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메타가 20억 달러에 완료한 AI 스타트업 마누스 인수에 대해 취소를 명령했다. 중국 AI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통로로 이 거래를 지목한 것이다. 기술 이전과 자본 이동이 이미 완료된 시점에서 나온 명령인 만큼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중국이 AI를 핵심 국가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흔들리는 판, 빨라지는 시계

세 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 경쟁은 기술 개발 속도전을 넘어 인프라 투자 여력, 요금 체계, 기술 안보, 사용자 신뢰라는 복합적인 변수가 얽혀 있다. 앤트로픽의 올해 연간 반복 매출은 300억 달러(약 45조 원)에 달한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컴퓨팅 자원 부족과 잦은 서비스 장애는 고성장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오픈AI는 두 달도 안 돼 주요 모델을 새로 출시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고, 딥시크는 비용 경쟁력과 오픈소스 생태계를 앞세워 선두권의 등 뒤를 바짝 좁혀오고 있다.

사진=Gemini 생성

'AI의 가장 똑똑한 모델'을 가진 곳이 업계를 지배하던 시대에서 시장은 진화하고 있다. 지금의 경쟁은 누가 가장 안정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가장 촘촘한 제품 구조로 사용자를 붙들어두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그 싸움에서 한 발만 삐끗하면, 기술 격차를 보유하고도  왁벽한 승기를 잡기 어렵다는 것을 앤트로픽이 이번 봄에 몸소 증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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