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산 깎겠다” “10년치 자료 내라” 민원 안 들어주면 공무원에 갑질

최연진 기자 2026. 5. 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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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지방의회] <5>
의원들, 예산심의권 ‘무기’로 전횡
지자체 “권한남용 도 넘은 수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A씨는 최근 시의원이 급하게 불러 의원실을 찾았다. 산하기관 담당자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아니 우리 지역 B업체에 왜 지원금을 주지 않는 거죠? 이런 식이면 이번 예산 심사 때 기관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어요.” 시의원의 갑작스러운 질책에 A씨는 진땀을 흘렸다.

A씨는 “시의원이 다짜고짜 특정 업체를 지원하라고 하니 눈만 껌뻑껌뻑했다”고 했다. A씨는 “그래도 이 시의원은 업체 이름을 콕 찍어주니 친절한 편”이라고 했다. 나중에 문제가 될 걸 우려해 업체 이름을 말하지 않고 공무원을 달달 볶는 시의원도 많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자체 공무원 C씨는 지난해 지역 체육단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보조금을 지원했다가 감사를 받았다. 이 단체 회장과 친한 시의원의 압박에 못 이겨 보조금을 지원했는데, 이 단체 부회장과 가까운 다른 시의원이 “특혜를 줬다”며 감사를 청구한 것이다. C씨는 “알고 보니 회장, 부회장과 시의원들이 뒤엉켜 벌이는 이권 다툼에 끌려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방의원이 ‘갑(甲) 중의 갑’이라고 말한다. 지자체를 견제하라고 준 지자체 예산 심의·편성권, 조례 제·개정권 등을 남용해 이권을 챙기고, 그 과정에서 애꿎은 공무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본지가 인터뷰한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은 “보복당할까 봐 두렵다”면서도 “지방의원의 권한 남용이 도를 넘어 견제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원하는 업체 선정 때까지 퇴짜… 의원들 이권 다툼에 새우등 터져

지자체 공무원들은 “청소·조경·연구 관련 용역을 발주할 때마다 지방의원 압력에 시달린다”고 했다. 서울의 한 구(區) 소속 공무원은 “지방의원들이 관련 사업 진행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연락이 온다”며 “지자체 사업 중에 시의원·구의원이 개입하지 않는 사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자체 사업은 지방의원을 끼지 않으면 따내기 어렵다는 얘기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자체 공무원은 “지방의원 등쌀 때문에 공무원은 관급 사업에 지원한 업체 뒤에 어떤 지방의원이 있는지 눈치껏 챙겨야 한다”며 “업체 뒷배가 다수당 소속 지방의원인지, ‘진상’으로 소문난 의원인지 잘 따져서 입찰을 진행해야 신상이 편하다”고 했다. 안 그러면 의원간 이권 다툼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것이다.

한 광역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D씨는 “도의원이 불러 저녁 자리에 나갔더니 사업 심사 대상 업체 대표가 앉아 있었다”고 했다. D씨가 당황하자 이 도의원은 웃으며 “밥만 먹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D씨는 “지방의원 중에는 이런 식으로 사업 담당 공무원에게 ‘내가 미는 업체’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 지자체 4급 공무원은 “지방의원이 사업 방향에 대해 계속 태클을 걸다가 ‘사업과 관련해 연구용역을 해보면 어떠냐’며 바람을 잡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지방의원이 염두에 둔 업체가 이미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그가 원하는 업체에 용역을 맡긴다”고 했다. 2000만원(여성·장애인 기업은 5000만원) 이하의 연구 용역은 조달청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이 점찍어준 업체가 경쟁 없이 용역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자체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지방의원이 밀어준 업체가 낸 연구 용역 보고서는 ‘엉터리’가 수두룩하지만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연구 용역 발주가 타당했는지를 심의하는 사람도 결국 지방의원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방의원들의 부조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한 전직 간부는 “시의원이 원하는 사업이 잘 진행이 안 되면 시의회 회의 때마다 공무원을 세워 놓고 모욕을 준다”며 “멀쩡한 사업 예산을 깎아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어 공무원 입장에서 당해낼 도리가 없다”고 했다. 서울 한 구의 20대 공무원은 “잘못된 건 지적하고 싶지만 지방의원과 트러블이 생기면 사업이 흔들리고 구청 안에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찍힌다”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지방의회에도 국회처럼 ‘꼬리표 예산’이란 게 있다. 수도권 지방의회의 한 시의원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시의원은 보통 수억, 상임위원장은 수십억 원을 자기 지역 사업에 꽂을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지방의원이 “무조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업 상당수가 지자체 예산안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를 ‘○○○ 의원 사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컨대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교육’처럼 이름만 있고 구체적 내용은 불분명한 사업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공무원이 짜야 한다. 수도권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시의원이 1억원을 따왔으니 사업 계획을 올리라고 해 황당했다”며 “지역 학교에 갑자기 에어컨을 놓거나 길을 포장하는 사업 중에 이런 사례가 많다”고 했다. 영남 지역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시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챙기느라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R&D(연구·개발) 사업을 포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국비 지원을 받으려면 지자체가 기본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돈이 부족해 포기했다는 얘기다.

지방의원들이 공무원들에게 자기 일을 떠넘기는 사례도 있다. 호남 지역의 한 공무원은 “지방의원이 조례 발의 건수를 채워야 한다며 ‘우리 지역엔 없는데 다른 지역엔 있는 조례를 찾아오라’고 하더라”며 “조례안을 대신 쓰고 있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지자체는 지방의회에서 행정 사무 감사를 받는다. 정부가 국회 국정감사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도권 지자체 공무원은 “지방의원이 또박또박 대답했다는 이유로 행정 사무 감사를 빙자해 10년 치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더라”며 “모두 종이로 인쇄해 오라고 해 기가 찼다”고 했다.

부당한 권한 행사가 문제가 돼 수사·재판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잖다. 검찰은 작년 4월 신충식·조현영 인천시의원을 뇌물 등 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두 시의원은 전자칠판 납품업체에서 1억6000만원을 받고, 시교육청에 전자칠판 예산을 반영하라고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이 업체는 학교 22곳에 총 20억원 상당의 전자칠판을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모 전북도의원은 2024년 전북도 공무원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 30억원 상당의 전력 절감 시스템 도입을 요구한 의혹을 받았다. 그 자리에는 업체 관계자도 있었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박 도의원이 예산 삭감과 자료 요구 등 불이익을 언급했다고 했다. 이 일로 전북도의회는 박 의원에게 ‘공개 경고’와 출석 정지 30일 징계를 내렸다. 박 도의원은 법원에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전주지법도 지난 3월 박 도의원 청구를 기각했다.

공무원들은 “지방의원들의 갑질과 비리 중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라고 말한다. 영남 지역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지방의원들은 공무원 호출, 자료 제출 요구, 감사, 예산 심사 지연 등의 방법으로 공무원을 압박한다”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지방의원이 명시적으로 이권 청탁을 하거나 압력을 행사하면 녹음이라도 해서 신고할 텐데 ‘잘 생각해 보라’거나 ‘이게 최선이야?’라며 계속 압박하면 공무원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라고 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25년 전국 공공기관 종합 청렴도 평가 결과, 전국 243개 지방의회(광역·기초)의 종합 청렴도는 74.9점으로 중앙행정기관(81.4점), 광역자치단체(79.5점), 기초자치단체(78.2점), 교육청(83.5점)보다 낮았다. 권익위가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지방의회 의정활동 영역의 부패 경험률’을 조사한 결과, ‘권한을 넘어선 부당한 업무처리 요구’가 20.9%로 가장 많았다. ‘특혜를 위한 부당한 개입·압력’이 11.43%, ‘계약업체 선정 시 부당한 관여’가 11.1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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