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동맹 상대로 안보·경제 동시 보복
유럽 車 관세 25%로 다시 올려
‘대서양 동맹' 해체 위기 가시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을 5000명 이상 감축하고,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25%로 다시 인상한다고 밝혔다. 대(對)이란 군사작전에 대해 “미국이 전략이 없다”고 비판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및 이란 관련 미국의 요청에 비협조적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전체에 대한 안보·경제 보복으로 해석된다.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안보 체계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는 한편, 전후 자유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축이었던 ‘대서양 동맹’의 해체 위기가 가시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을 상대로도 관세, 안보 우산을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州)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독미군 감축 계획을 재확인하며 “5000명보다 훨씬 더 많이 줄일 것”이라고 했다. 감축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앞서 국방부는 전날 피트 헤그세스 장관의 지시로 “향후 6~12개월에 걸쳐 주독 미군 50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에 주둔 중인 전체 미군 3만6000여명의 약 14%에 해당한다. 노골적인 경제 보복 조치에도 나섰는데, 트럼프는 유럽연합(EU)과 지난해 맺은 무역 협정을 일방적으로 깨고 다음 주부터 유럽산 승용차·트럭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10%포인트 인상한다고 1일 밝혔다. 트럼프는 협정을 파기한 이유로 “유럽이 무역 합의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못 믿을 트럼프… 토마호크·극초음속 미사일부대 독일 배치도 철회

미국의 주독미군 감축, 대(對)유럽연합(EU) 관세 인상 발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상황에 비협조적이었던 나토 회원국을 비판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과 유럽은 상호 관세,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협상,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에 대한 강제 병합 시도 등으로 번번이 갈등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대서양 동맹의 갈등이 돌이킬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X(옛 트위터)에서 “대서양 공동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외부의 적(敵)이 아닌 우리 동맹의 지속적인 붕괴”라며 “미국·유럽 관계가 멀어지는 재앙적 추세를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
◇ 트럼프 언급 사흘 만에 철수 공식화

주독미군 감축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1일 “국방장관이 독일에서 약 5000명의 병력을 철수하도록 명령했다”며 “유럽 내 미군 배치 현황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거친 것으로 철수가 향후 6개월에서 12개월 내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런 발표는 트럼프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검토하고 있고,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 밝힌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것이다. 독일에는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약 3만6000명이 주둔하고 있고, 슈투트가르트에 유럽사령부(EUROCOM)·아프리카사령부(AFRICOM) 본부가 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안보의 핵심 축 역할을 해왔다. 남부의 람슈타인 공군기지는 미군 작전의 핵심 거점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는 나토의 주요 회원국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 요청을 거절하고 기지 사용, 영공 제공에 비협조적이었던 것 등을 “기억하겠다”며 실망감을 드러낸 바 있다. 백악관이 나토 회원국들을 ‘기여도’에 따라 분류한 명단을 만들었다는 폴리티코 보도도 있었는데, 독일뿐만 아니라 스페인·이탈리아 등 이란 전쟁에 비판적인 유럽 국가에 주둔한 미군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정부에서 약속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다크이글 극초음속 미사일 부대의 독일 배치 계획도 철회했다. 유럽대학연구소의 미하우 마틀락 선임연구원은 NBC에 “‘대서양 동맹 이혼’을 향해 나아가는 또 하나의 단계”라고 평가했다.
◇ 유럽산車에도 보복성 관세 인상
트럼프가 EU에서 생산된 승용차·트럭에 대한 관세를 지난해 7월 27일 타결한 무역 협상 이전 수준인 27.5%(기본 관세 2.5% 포함)로 복원하겠다는 것도 이란 상황 비협조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어 보인다. 당시 양측은 EU가 7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군사 장비를 구매하고 6000억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미국이 자동차 등에 부과한 품목별 관세를 15%로 일괄 인하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관세 복원과 관련해 표면적으로는 “EU가 무역 합의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저에 EU와 나토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자동차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주요 자동차 생산 및 대미 수출국인 독일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동맹국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보복 조치는 단계적으로 다른 국가에도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한국을 여러 차례 콕 집어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달 6일엔 “우리는 핵을 많이 가진 김정은 옆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지만, 한국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는 약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현재 한미는 주한미군의 역할과 책임 재조정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맹 현대화’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일부 병력의 감축·이전 배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또 EU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상호 관세를 낮추는 무역 합의를 이뤘는데, 올해 1월엔 트럼프가 합의 이행 지연을 문제 삼아 자동차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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