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양극화… “7억 달라” 그들만의 잔치 vs “회사 살리자” 월급 반납

김성민 기자 2026. 5. 4. 0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원 약 4만명이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45조원 추산)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장련성 기자

[‘성과급 한탕주의’ 삼성전자 노조]

“‘그냥 DS(반도체 부문) 니네 많이 처받아라’ 다들 이런 마인드다. 잘해봐라. 결국에 니들이 휘두른 칼에 니들이 맞고 쓰러질 듯.”

삼성전자의 양대 사업부 중 하나인 완제품(DX) 부문 소속 직원이 최근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남긴 글이다. 그는 “작년에 (노조에) 가입했고 주변에 가입 독려도 많이 했는데 탈퇴했다”고 썼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달라며 오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에서 조합원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1인당 7억원가량의 성과급 논의에서 배제된 DX 소속 직원들이 ‘그들(DS·반도체)만의 잔치’를 비판하며 탈퇴하는 것이다. 전체 노조원 규모(약 7만5000명)를 감안할 때 크진 않지만 노·노(勞·勞) 갈등이 본격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정 조합원 이익만 대변하는 삼성전자 노조에 대해 ‘성과급 한탕주의’ ‘폐쇄적 이익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픽=양인성

◇조합원 갈라치기 하는 노조

삼성전자 노조에서는 4월 23일 투쟁 결의 대회 이후 이달 2일까지 약 2500여 명이 탈퇴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100건 안팎이던 탈퇴 신청은 지난달 28일 500건, 29일에는 1100여 건으로 급증했다. 한 탈퇴 조합원은 블라인드에 “노조가 대놓고 DX를 무시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석 달 넘게 지속되고, 더 이상 못 참아 다들 나가는 중이다”라고 적었다.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 사업부인 DS 부문에 대해서만 영업이익 15%를 성과급으로 상한 없이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DX 부문에 대해서는 별다른 요구가 없다. 노조 가입자의 80%가 DS 소속이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DS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올해 1인당 최대 7억원가량 성과급을 받는다. 반면 가뜩이나 실적도 좋지 않은 DX는 연봉의 50% 상한이 그대로 적용돼 사업부 간 수억 원대 성과급 격차가 발생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규모가 적절한지 논란과 별개로 노조 스스로 노노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함께 잘 먹고 잘살자는 노동조합의 본래 취지는 사라졌고 다른 사업부, 다른 계열사, 다른 노동자들이 어떻게 되든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귀족노조의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성과급 한탕주의’ 삼전 노조

삼성전자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와 총파업에 대해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는 당연히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현실적 타당성, 회사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수용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최고 대우를 받는 삼성전자 직원이 노조라는 울타리 속에서 생존권 문제가 아닌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하겠다는 목적으로 총파업에 들어간다면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삼성전자 노조가 많은 성과급을 가져갈수록 협력업체에 비용이 전가되거나 원청과 하도급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지게 된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에 따른 손실과 부정적 여론의 후폭풍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두고 동네 사람들 같이 불러 음식 나눌 생각은 안 하고 대문 걸어 잠그고 끼리끼리 먹자판 잔치와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모습 솔직히 불편하다”라고 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고, 우리 중소기업의 협력이나 도움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며 “그로 인한 열매를 삼성전자 노조만 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경기 광명시 KTX광명역 대회의실에서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 정기 대의원 대회가 열렸다. 대의원들이 ‘홈플러스 기업 회생, 지켜내자 생존권’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었다. 노조는 “직원 월급을 포기해서라도 영업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

[생존 절박한 홈플러스 일반노조]

“노동자들에게 월급은 피와 땀의 결정체이지만, 지금 회사가 무너지면 그마저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소속 노조원 1400여 명의 월급 수령을 포기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서울회생법원은 원래 5월 4일이었던 홈플러스 회생 계획안 가결 시한을 두 달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회생 계획안을 마련할 시간을 두 달 벌게 된 상황에서 홈플러스 일반노조가 노동의 대가인 월급을 포기하겠다며 회생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나온 것이다. 노조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홈플러스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의 대가인 월급을 포기하고, 해당 재원이 전액 영업 정상화 및 상품 공급에 투입될 것을 촉구한다”며 “이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뼈아픈 희생”이라고 했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한국 유통업계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1997년 한국 까르푸 노조로 출범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 마트 3사 중에선 가장 먼저 설립된 노조다. 한때 강성 노조로 꼽혔다.

그래픽=이진영

여기엔 사연이 있다. 까르푸는 2006년 국내에서 철수했고 이랜드가 이를 인수해 ‘홈에버’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랜드는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계산원 등 1000여 명을 해고하려 했다. 이에 대항해 노조원들은 512일간 파업했고, 결국 노사는 비정규직 2000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일은 영화 ‘카트’, 웹툰 ‘송곳’의 소재가 됐다. 이후 2008년 삼성물산·테스코의 합작사 삼성테스코가 홈에버를 인수하며 이름이 홈플러스로 바뀌었고, 이후 2015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다시 이를 인수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회사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노동자들은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 등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2019년에도 노조 소속 무기계약직 3000여 명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경영 악화로 1년 이상 기업 회생 절차가 진행되고, 이마저도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자 노조가 나서 월급까지 포기하고 영업 정상화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하는 월급은 직급에 따라 월 200만~600만원이다. 홈플러스 일반노조 관계자는 “까르푸 시절부터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아예 납품이 들어오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평균 근속 15년이 넘는 직원들이 대승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홈플러스 회생 전망은 불투명하다. 홈플러스는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이 득세하면서 경영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끝에 지난해 3월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자금 부족으로 거래처 납품 대금과 입점 업체 판매 대금이 밀리면서 서울 강서본점 등 핵심 점포에서도 매대가 비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노조에 따르면 현재는 PB(자체 브랜드) 상품 위주로 매대를 채우고 있고, 매출은 평소의 30% 수준이다.

홈플러스 직원 수는 희망퇴직 등으로 작년 2월 1만9924명에서 지난달 1만6450명으로 17% 줄었다. 회사 측은 올해 안에 부실 점포 19곳도 추가 폐점할 예정이다. 회사 전체를 파는 이른바 통매각은 무산됐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수퍼마켓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리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작년만 해도 7000억원이었던 익스프레스 매각 희망가는 현재 2000억원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요구한 삼성전자 노조는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얘기다. 홈플러스 일반노조의 한 조합원은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야 투자도 하고, 고용도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라며 “회사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월급까지 포기한 입장에서 삼성전자 노조를 보면 박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호실적이든 홈플러스의 경영 악화든, 직원들의 근태(勤怠)보다는 시장 흐름에 따른 결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시장 흐름과 산업 경쟁력에 따라 정규직 노동자들도 양극화하는 등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