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울산시 행정에 필요한 것은 ‘선별’과 ‘속도’

석현주 기자 2026. 5. 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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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지방행정에서 용역은 필요하다.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고, 국비 확보 논리를 세우며, 법령·제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조사와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울산시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편성한 학술·기술용역은 340건, 예산은 724억원 규모다. 이는 도시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행정의 판단 비용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금 울산은 산업전환, 교통망 확충, 도시공간 재편 등 굵직한 현안을 동시에 안고 있다. 사전 검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모든 과제를 용역으로 시작하고, 비슷한 조사를 반복한다면 행정은 더 정교해지기보다 느려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용역의 양이 아니라 판단의 속도와 실행의 밀도다.

울산석유화학단지 통합파이프랙 구축 사업은 용역의 필요성과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이 사업은 노후 지하배관 문제와 신규 배관 매설 공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이격거리 규제에 막혀 중단됐다. 이후 울산시는 '석유화학단지 안전성 제고를 위한 연구용역'을 통해 대안을 찾고 있었고, 그 사이 고압가스안전관리법 관련 기준이 개정됐다. 안전성과 법령 적용 가능성, 입주기업의 민자 부담 의향을 살피는 용역은 필요하다. 다만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이 더 일찍 이뤄졌다면 국비 반납과 사업 중단이라는 우회로를 줄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R&D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사전타당성조사 보완 용역도 비슷하다. 하이테크밸리 산단과 KTX울산역세권을 잇는 이 도로는 산업단지 경쟁력과 기업 유치, 정주 여건 개선에 필요한 기반시설이다. 울산시는 지난해 예타 대상사업 선정 탈락 이후 보완 용역을 통해 도로 폭과 노선을 조정하고, 총사업비를 929억원에서 799억원으로 낮췄다. 비용 대비 편익값도 1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정부가 SOC 예타 기준 상향을 추진 중이고, 개정안이 조기 시행되면 예타 없이 진행될 수 있다. 제도 변화와 사업 일정이 맞물리지 못해 행정력이 이중으로 투입된 셈이다.

울산 도심공항터미널 유치 타당성조사 역시 외부 여건 변화에 맞춰 속도와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에 따른 도심공항 터미널 수요 예측, 후보지 선정, 사업 규모, 경제성 분석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덕도신공항 개항 목표가 당초 2029년에서 2035년으로 늦춰지면서 사업의 시급성은 달라졌다. 외부 여건이 바뀔 예정인데 기존 시간표대로 용역이 진행되면 결과물의 정책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올해부터 유사·중복 용역을 줄이고 꼭 필요한 용역만 추진하기 위해 관리 체계 개선에 나섰다. 용역관리시스템으로 기존 결과물을 통합 관리하고, 심의와 예산 편성 단계에서 필요성과 중복성을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실제 작동 여부다. 필요한 용역은 추진하되, 정부 정책 방향과 주변 여건 등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울산에 필요한 것은 더 정확히 고르고, 더 빠르게 판단하고, 더 확실히 실행하는 행정이다.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