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어느 시한부 美 정치인의 탄식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 토론회에서 삼성전자에서 2년 근무한 이성배 후보가 고졸 여직원으로 입사해 임원 자리까지 오른 상대 후보를 향해 “본사 입사자들은 공채에 대한 굉장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생산직으로 입사해 잘 모를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후보는 고배를 마셨지만 한국 정치의 기괴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여당 후보로 나온 김용남 전 의원은 과거 ‘조국 저격수’로 이름을 날려 자유한국당에서 표창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7년이 지나 두 사람이 단일화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이러니 한국 정치를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때 고개를 들어 미국을 바라보는 게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이자 문법이었다. 미국은 어떻게 했고, 미국이라면 어떻게 할까. 전문가·원로를 찾아 마이크를 들이밀고 이렇게 묻는 게 특파원의 주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그런데 2026년의 미국을 보면 배울 점은 고사하고 반면교사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일 테지만 많은 영역에서 미국 사례를 참고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정치가 특히 그렇다. 국익과 가치 앞에서 당파 없이 하나가 됐다던 낭만적인 정치 지도자에 관한 얘기는 도시 전설처럼 돼 버렸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벤 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최근 CBS 방송에 출연했다. 근래 본 정치인 인터뷰 중 가장 강렬했다. 암 치료 후유증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의 인터뷰는 “지금쯤 당신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회자의 농담으로 시작한다. 1972년생으로 상원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세스는 “50대 초반에 불치병 진단을 받으니 사람들이 갑자기 93세 현자처럼 대우해 기분이 좀 이상하다”면서도 “주어진 시간이 없으니 더 큰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파탄난 정치의 복원, 무너진 공동체 재건 같은 것들이다. 그는 “좁은 집단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며 “상원이 인스타그램처럼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의회는 지루하고 더디더라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숙고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치인이 당장의 즉각적 반응과 관심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치인이 팬 서비스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처럼, 소수의 극단적 지지층에 휘둘려 책임과 원칙을 내려놓는 현실은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야 할 문제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말을 끊는 건 기본이고 가짜 사실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정치인인지 인플루언서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따금 재미와 웃음을 줄 뿐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나라의 미래를 디자인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유권자가 투표로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저들의 ‘개그 콘서트’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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