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구의 블랙박스] 4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 나랏돈은 벼랑 끝 삶 구하는 데 쓰자
월세·요금 연체, 부채 급증 등이 신호… 일본엔 실증 연구 결과도

4월 27일부터 국민의 70% 정도가 1인당 10만~60만원 사이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을 받고 있다. 선거를 앞둔 시기의 현금 살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으나, 고유가·고환율·고물가로 고생하는 서민을 돕는다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나라 곳간을 생각한다면, 돈을 쓰되 가장 시급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통계, 자살이 바로 그 후보다. 불명예스럽게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계산하는 자살 사망률은 2024년 기준 29.1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평균 10.8명(2022년 기준)의 3배 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1위다.
게다가 자살은 늘어나는 추세다. 2024년 사망 원인 가운데 다섯 번째다. 치매나 당뇨병보다 자살 사망자 숫자가 많다. 특히 10대부터 40대까지는 자살이 사망 원인 1위다. 40대는 원래 암 사망자가 가장 많았으나 2024년 기준으로 자살이 첫 번째 사망 원인이 되었다. 50대는 암 다음으로 자살 사망자가 많다.
한국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통계이다 보니 정부도 자살 사망률을 줄이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여러 자살 예방 대책이 쏟아지는데도 정작 자살 사망률은 되레 늘고 있다. 이쯤 되면 지금까지의 접근 자체를 재고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살 성향을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증상으로 보고 치료만으로 해결해 보려는 방식이 그렇다.
40대와 50대의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1, 2위라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그렇게 인생의 벼랑 끝에서 몸을 내던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실직과 빈곤 같은 경제적 사정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해 볼 수 있다. 거기에 늦은 나이라서 다시 재기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딸린 가족에 대한 부담감도 자포자기를 부추겼을 것이다.
감정 이입해 보면 그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월세와 각종 요금이 연체되고 은행에서 부채 상환 압박이 거세다.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의 불안한 눈빛은 가슴을 후벼 판다. 이렇게 생계 위협이 계속되다 보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터널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이 고통을 가장 손쉽게 끝내는 일, 즉 자살만이 최선의 해법으로 보이게 된다.

만약 이렇게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기 직전인 이들에게 재기를 위한 ‘인생 2회차 지원금’을 지급해 본다면 어떨까. 꼭 40대와 50대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실업 급여 종료 직전 대상자, 부채 급증 가구, 1인 빈곤 청년이나 노인 등에게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현금 지원과 다시 무엇이라도 시작하는 데에 쓸 저금리 장기 대출을 목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접근이 효과가 탁월하다는 실증 연구 결과도 있다. 자살 예방의 사회 결정 요인에 관심이 많은 일본 학자 오카모토 쇼헤이와 다나카 다카나오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오카모토 팀은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으로 1인당 10만엔 지급 등 긴급 지원을 시행하던 2020년 초, 일본 자살률이 약 14%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특히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40대, 50대일 가능성이 큰) 남성과 경제적 취약 계층에서 자살 예방 효과는 더욱 뛰어났다. 똑같은 100만원이라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누군가에게는 신이 내려준 동아줄이 되는 셈이다. 그 동아줄에 매달려 일단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지고 나면, 다시 살아볼 의지가 생길 수 있다.
단, 같은 연구는 중요한 경고도 담고 있다. 코로나19 지원금이 끊긴 뒤 일본의 자살률은 다시 16%나 치솟았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2014년 기초연금 도입 이후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했다. 현금 지원이 지속될 때 비로소 효과를 낸다는 방증이다. 인생 2회 차 지원이 일회성 현금 지원이 아닌, 재기의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이어지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인생 2회 차 지원금을 받아서 한숨 돌린 이들을 기존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에게 상담을 오라 가라 하는 일은 고역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 보려고 심호흡하는 이들에게 상담은 정신 건강을 고양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된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아주 거친 아이디어도 있다.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의 2.7%는 전력 산업의 지속성을 위해 기금으로 적립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 연대 기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지금의 반도체 산업처럼 초과 이익을 달성한 특정 산업이나 고소득층의 세금 일부를 활용해 사회 연대 기금으로 쌓아서 인생 2회 차 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기업과 개인이 당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힘든 시간을 넘기고, 자기와 가족의 생명까지 구한 이들은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커질 테다. 나아가 그들은 분명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웃에게 또 다른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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