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이뻐, 이뻐!’… 맹수도, 나무도, 당신의 아이도 마음을 엽니다

한마리 판다를 보기 위해 ‘새벽 6시 오픈런, 대기 400분’도 마다않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푸바오’란 이름의 그 판다가 한국을 떠날 때 빗속에서 울며불며 배웅하던 장면은 더더욱 기이했다. 푸바오가 뭐길래?
사육사 강철원을 만나고 모든 의문이 풀렸다. 어쩌면 사람들은 푸바오가 아니라 ‘푸바오 할부지’에게서 위로받고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이해와 기다림이 모든 관계의 출발”이라는 이 남자는 “미워도 ‘이뻐, 이뻐’ 해주면 맹수도, 수목도, 당신의 아이도 꽉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고 했다. 최근 펴낸 그의 농사일기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는 인간과 자연을 꿰뚫는 초록빛 성찰이다.
◇ 농사 짓는 사육사
-에버랜드 동물원 유니폼 대신 밀짚모자를 썼다.
“30대부터 꿈이었다. 텃밭이 있는 작은 집을 짓고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꽃과 채소를 기르며 살고 싶었다.”
-농부로 전업한 건가?
“아직 본업은 사육사다. 동물들 사는 터전이 자연이라 틈틈이 나무와 꽃을 기르면서 농사일기를 쓴 것이 한 권의 책이 됐다.”
-텃밭이 큰길에서 한참을 올라오는 산비탈에 있다.
“복덕방 주인도 말린 맹지(盲地)인데 나는 첫눈에 반했다. 초록숲에 둘러싸인 모습이 내 고향(순창)을 닮아 좋았다.”
-텃밭이라기엔 규모가 꽤 크다.
“사과나무,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등 나무가 40여 종, 마늘 참외 맥문동 아주까리 등 전체 작물을 합치면 90여 종 될 것이다. 소출은 아주 적다(웃음).”
-텃밭이 ‘나와 어머니와 바오(판다) 패밀리’를 연결해주는 곳’이라고 했던데.
“텃밭을 구입해 작물을 심는데 나도 모르게 어릴 때 어머니가 기르던 것들만 골라 심고 있더라. 농사를 시작하면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도 매일매일 통화하게 됐다. ‘옥수수는 얼마나 깊이 심어요?’ ‘거름은 뭘 줘야 돼요?’ 등등 시시콜콜. ‘오야, 오야’ 하며 답을 주시는 어머니도 무척 행복해하셨다. 돌아보니 큰 효도였다(웃음).”
-판다 가족을 위해 대나무와 당근도 심었다고.
“자이언트 판다가 좋아하는 설죽을 텃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핼러윈 때 맷돌호박에 눈 코 입 모양을 내 푸바오에게 줬더니 처음엔 무서워하다 신나게 갖고 놀더라. 당근이 까다로웠다. 첫해 잎이 무성하길래 신이 났는데, 막상 캐보니 새끼손가락만했다. 두 번, 세 번 시도해 마침내 튼실한 당근을 얻었는데, 이번엔 판다들이 먹어주질 않았다. 마트 당근 맛에 길들여져서! ‘아여사님(푸바오 엄마 아이바오)’만 예의상 먹어주더라, 하하!”
-동물원의 나무와 꽃도 직접 심은 건가?
“판다들 사는 곳에 수목이 많으면 좋을 것 같아서 탄력이 있는 남천나무부터 100주 심었다. 푸바오가 자라면서 나뭇가지를 스파링 상대 삼아 장난치며 노니까 관람객도 즐거워 하더라.”
-유채꽃은 중국에서 온 러바오와 아이바오 때문에 심었다고.
“그들이 살던 중국 판다 기지 주변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고향의 향기를 느껴보라고 매년 2월 말, 3월 초에 심는데 4월 중순까지 노란 유채꽃이 피면 판다들과 어우러져 정말 아름답다.”
-꽃과 나무 심는 것도 사육사 업무인가?
“그렇진 않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판다도, 관람객도 모두 행복해지니 보람이 있다. 땅과 바람과 햇살이 다 연결되어 만물을 살찌우는 모습이 경이롭다.”
-조경학도 따로 공부했더라.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돌볼 수 있어서(웃음).”

◇ ‘이뻐 이뻐, 아빠’
-온국민을 울리며 중국으로 간 푸바오는 잘 지내고 있나?
“아이바오의 딸이니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웃음).”
-중국으로 간 직후 학대 논란이 있었다.
“야생동물에게 가장 힘든 게 공간 이동이다.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당도한 곳이 낯선 공간이니 푸바오의 표정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을테고, 이를 오해하는 분들 계셨을 것이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사람들은 왜 푸바오를 사랑했을까?
“번식이 어려운 판다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낳은 첫아이였다. 코로나로 동물원에 못 가니, 에버랜드 사육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푸바오가 자라는 모습을 중계했는데, 여기에 댓글을 달고 피드백을 주면서 ‘육아’에 참여하는 분들이 급증했다. 그저 구경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아이처럼 푸바오를 함께 키운 것이다.”
-그 인기가 K팝 아이돌 못지 않아 기이했다.
“푸바오를 돌볼 때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우울증을 앓던 80대 노부부는 푸바오가 커가는 모습에 웃음을 되찾으셨고, 자살을 생각했던 고3 수험생은 다시 열심히 공부해 대학 합격증 들고 찾아오겠다고 하더라. 푸바오 덕분에 불면증을 치유한 여성, 대인 공포증을 이겨낸 청년도 있다. 동물이 주는 위로가 이토록 크다.”
-판다에게 건네는 강철원 사육사의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는 사람도 있더라.
“새 책을 내고 북콘서트에 갔더니 어느 분이 내게 새 별명을 지어주셨다. ‘이뻐 이뻐, 아빠’(웃음). 제가 아이바오만 보면 입버릇처럼 ‘이뻐, 이뻐’ 하는데, 그 말이 가족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말로 들려 울었다고 하더라.”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에게도 중얼중얼 말을 건네던데.
“나의 감정을 말에 실어서 전하면 훨씬 전달이 잘 될 것 같아서. 그 말이 진심인지, 건성인지 그들도 알 것이다(웃음).”
-푸바오와의 작별은 어떻게 이겨냈나?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면 응원하면서 보내줘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슬퍼하는 관람객들께도 푸바오가 자신의 ‘판생(판다의 생)’을 멋지게 살아가도록, 독립해서 짝을 만나 가족을 이룰 수 있도록 웃으며 보내줘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 동물의 마음을 얻는 법
-개인적으로는 푸바오보다 엄마인 아이바오에게 더 마음이 가더라.
“아이바오는 지혜롭고 모성이 강한 판다다. 나는 아이바오와 헤어질 때 훨씬 슬플 것이다.”
-그래선지 아이바오를 부르는 목소리에 콧소리(아이바옹)가 더 많이 섞여 있다.
“첫정이 든 데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를 낳는 고통을 오롯이 지켜봐서.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바오는 새끼를 보호하고 체온으로 품어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바오 별명이 ‘판사임당’이라던데.
“판다는 보통 4~5개월이 지나면 나무를 타기 시작한다. 사육사들은 나무에서 떨어질라 노심초사하지만, 아이바오는 푸바오가 나무를 타든 말든 계속 대나무만 먹는다. 그렇다고 무심한 게 아니다. 곁눈질로 지켜보다 아주 위험한 순간에만 달려간다. 믿고 기다리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훈육. 우리 부모들도 배워야 한다.”
-판다 이전에도 침팬지, 오랑우탄 등 80여 종의 동물을 보살폈더라.
“유인원은 텃세가 심해서 신입 사육사를 침입자로 여긴다. 나만 보면 괴성을 지르고 먹다 남은 과일 찌꺼기를 집어던져서 선배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같이 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야전침대를 놓고 2주일을 잤더니 비로소 식구로 받아주더라. 복란이라는 암컷은 내 옆에 여자 사육사가 있으면 시샘할 정도였다(웃음).”
-맹수인 인도 표범의 인공 포육도 성공시켰던데.
“입사 2년차 때였다. 인도 표범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는데, 맹수는 인공 포육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해서 내가 자원했다. 하루 8번 세 시간 간격으로 밤낮없이 수유하면서 새끼를 돌봤다. 그 무렵 군대 영장이 나왔는데 아기 표범이 내가 주는 먹이만 받아먹어서 입대 이틀 전까지 출근했다(웃음).”
-맹수의 마음을 얻는 비법이 있을까?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사랑의 마음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 사람도, 식물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동물도 지능이 있어서 누군가 물리적 행동을 가하면 아주 오래 기억한다. 한번 틀어지면 관계 복원이 쉽지 않다(웃음).”
-두 딸도 푸바오처럼 키웠나?
“야근하고 새벽에 귀가했는데 잠에서 깬 아기가 날 보고 울더라. 정작 아빠 역할은 못 했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아이들 목욕은 도맡아했다. 학교 다닐 땐 학부모 보안관으로 해마다 활동하고. 아빠는 저 혼자였는데 딸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더라.”
-최근 판다 외교에 반대한다는 동물보호단체 성명이 나왔다.
“외교는 잘 모르겠고, 판다를 매개로 사람들이 동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개체 수는 줄어드는데 무조건 야생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 동물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 가난, 내 生의 가장 큰 자산
-왜 사육사가 됐나?
“농업고 다닐 때 자연농원(에버랜드) 취업설명회를 듣고 지원했다. 4~5년만 다닐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38년이 됐다.”
-고된 직업이다.
“‘아직도 똥 치우세요?’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네, 치웁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답한다. 배설물은 동물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 사육사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런 업무다.”
-오래 전 한 관람객이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했다던데.
“조랑말 털을 손질하는데 옷을 잘 차려입은 신사분이 어린 아들에게 ‘엄마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하시더라.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했을지 가끔 궁금해진다(웃음).”
-‘푸바오 할부지’ 인기로 사육사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더라.
“전국의 주키퍼들이 우리의 위상을 높여줬다고 고마워한다(웃음).”
-‘가난했던 유년기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자산’이라고 했더라.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에서 검정고무신 신고 4km를 걸어 학교에 다녔다. 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서 어깨에 매고 다녔는데 도시락 김치국물이 새서 책이 벌겋게 물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웃음). 집에 오면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러 달려가야 했고, 겨울엔 전 끼니를 고구마로만 먹는 날도 있었다. 그 시절 근면과 성실함을 배운 것 같다. 열매를 얻으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소작농으로 평생 흙에서 살다 가신 부모님께 배웠다.”
-‘실패’와 ‘포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던데.
“실패는 실을 감는 패이고, 포기는 배추 세는 단위일 뿐, 하하! ‘때문에’라는 말보다 ‘덕분에’라는 말을 많이 쓰려고 한다.”
-원래는 카우보이가 꿈이었다더라.
“광활한 초원에서 말을 타며 소떼를 몰고 싶었는데, 만물이 생동하는 나의 초록빛 텃밭을 무연히 내려다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행복하다. 자주 놀러 오시라!”

☞강철원
1969년 전북 순창 출생. 1988년 에버랜드 동물원에 입사해 38년째 사육사로 일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인도 표범의 인공 포육에 성공했고, 백호·보르네오 오랑우탄·황금머리사자타마린 번식을 성공시켰다. 2016년 중국에서 온 자이언트 판다 한쌍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돌보다 2020년 국내 최초로 판다곰 자연 번식에 성공, ‘푸바오 할부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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