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미군 위안부의 마지막 바람
■ 생애 마지막 소송에 나선 미군 위안부들
미군 위안부 피해자 122명이 생애 마지막 소송을 시작했다. 앞서 대법원은 주한미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인근에 기지촌을 운영하고 성매매를 조장했다고 2022년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한국 정부의 책임을 밝힌 1차 소송에 이어, 공동 불법 행위에 대한 주한미군의 책임을 묻는 2차 소송이다.
이제 노인이 된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당시 미군의 성매매가 기지촌뿐만 아니라 기지 영내, 심지어 한미 연합 훈련, 팀 스피릿 현장에서도 이뤄졌다고 증언한다. 미군과 한국 공무원은 매달 '애국 교육'을 열어 미군 위안부들을 모아놓고 성병 예방이나 영어를 교육했다. 미군에 대한 성매매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 행위'라고 추켜올리고, 위안부에게 아파트 제공 등 노후 보장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들의 증언은 한미 양측의 정부 문서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다. 1차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해, 정부가 중대한 인권 침해를 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1차 소송은 한국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었다. 피해자들은 조직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성병 통제에 관여한 미군의 책임을 묻기 위해 2차 소송에 나섰다. 이달 말 첫 재판이 예정된 가운데 한미 정부는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 '미군이 구상하고 한국이 실행'한 강압적 성병 통제
피해자들은 미군이 위안부들을 직접 관리했다고 증언한다. 기지촌 여성의 명단은 물론 사진, 소속 업소 등의 정보를 미군 부대 의무과가 수집했고, 새로운 위안부가 영입되거나 위안부가 업소를 변경해도 미군에 보고하도록 했다. 소속 군인이 성병 증상을 보이면, 부대에 있는 여성들의 사진첩에서 접촉자를 찾아내도록 했다. 1973년 작성된 미군 문서에 따르면, 미군은 기지촌 여성들의 사진첩을 'VD books(성병 책)'라고 불렀다.
성병에 걸린 미군이 접촉자로 지목한 여성들은 병원이 아니라 성병 관리소로 보내졌다. 그리고 실제 성병에 걸렸는지 의사의 검진도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7일간 쇠창살이 달린 시설에 감금됐다. 한국인 의사들이 부작용을 우려할 정도의 고농도 주사액이 투여됐고, 격리 치료라는 명분으로 법적 근거도 없이 감금했다. 반면 성병에 걸린 남성 군인에 대한 별도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접촉자를 추적해 격리 치료하는 '접촉자 추적 조사', 그리고 여성을 격리 수용한 성병 관리소의 설치는 미군의 제안으로 도입한 미국식 성병 통제였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성병 통제는 당시 미국에서도 이미 폐기된 정책이었다. 주한미군 성병 통제의 역사를 연구한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군이 한국에 성병 관리소의 설치를 제안한 1965년보다 12년 전인 1953년 미국에서 마지막 성병 관리소가 문을 닫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본토에서는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새로운 항생제의 등장으로 통원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격리 치료가 중단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박정미 교수는 "미군의 구상으로 한국 정부가 실행한 강압적인 성병 통제는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제도였다"고 비판한다.
■ 사라지는 증거 장소들…역사 지우는 지방 정부
그런데 미군의 인권 유린이 규명되기도 전에 증거가 되는 역사적 현장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1965년부터 전국에 세워진 성병 관리소는 40여 곳, 이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경기도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가 유일하다. 그런데 부지를 사들인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 개발을 위해 옛 성병 관리소의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기습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시작했던 농성은 600일을 넘기고 있다.
기지촌 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를 시작한 두레방도 지난해 기지촌인 빼벌마을에서 내몰렸다. 1986년 출범한 두레방은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 성병 보건소가 문을 닫자, 이곳을 빌려 기지촌 여성을 위한 상담과 자활 교육, 생활 지원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지난해 두레방에 건물 임대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두레방이 떠난 뒤에는 건물을 비워 둔 상태다.
기지촌 여성들이 강제 성병 검사를 받던 국가 폭력의 현장, 그리고 그곳을 치유의 공간으로 바꾼 인권운동의 흔적까지 모두 사라질 처지다.

■ 공식 사과한 정부…미군 위안부 피해자 정책은 없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4년 만인 올해 여성의 날, 정부는 뒤늦게 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생활 안정을 지원하고 명예 회복을 위한 기념사업을 하는 것과 달리, 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정책이 없다.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서 경기도는 이재명 대통령이 도지사였던 2020년 기지촌 여성의 생활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지만, 상위법이 없어 한동안 조례를 시행하지 못했다. 미군 위안부들의 1차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린 뒤에야 경기도는 조례에 따른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기준에 대상자 상당수는 월 10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 신청을 포기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기지촌 여성 가운데 1차 소송 승소자만 자격이 있고, 지원금을 받더라도 기초생활수급자는 받은 금액만큼 생계급여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은 19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임기 만료로 연달아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법안의 발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입법 공백이 지속되는 사이, 고령의 미군 위안부들은 여전히 낙인과 편견 속에 삶의 마지막을 맞고 있다.
냉전과 분단, 권위주의 시대에 희생된 미군 위안부들의 목소리를 통해, 국가 폭력의 기억을 외면해 온 한국 사회의 현재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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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최승구, 장경진
편집:최민경
그래픽:장수현
리서처:홍민지
조연출:엄희주, 박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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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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