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률적 59㎡·84㎡엔 살 가족의 ‘삶’을 맞출 수 없잖아요” 커먼즈 종암

허남설 기자 2026. 5. 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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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정비사업 성공사례
개운산마을 원주민이 지은 아파트 브랜드, 커먼즈 종암
커먼즈 종암 조감도

성북구 개운산 ‘가로주택정비사업’
두 집 묶는 등 조합원 삶 형태 고려
130가구 규모에 평면 타입만 10개
국내 첫 목조·패시브 아파트 실험도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정책 토론회. 문재인 정부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민주정부’는 재개발 뉴타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정비모델 개발에 소극적이었다”고 자성했다. 수만㎡를 전면 철거하고 짓는 대규모 재개발을 ‘집값 상승’ ‘원주민 소외’ 등으로 비판하면서도 “그럼 소규모 재개발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8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정으로 가로주택정비사업·자율주택정비사업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실현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문재인 정부가 소규모 정비사업을 띄울 때, 서울 성북구 개운산 자락 단독주택에 살던 개운산마을 사람들도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뛰어들었다. 2020년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10월 착공했다. 소규모 정비사업 중 순항 중인 몇 안 되는 모델 중 하나다. 새로 태어날 단지 이름은 ‘커먼즈 종암’. 시공사가 아닌 원주민 조합원들이 직접 붙인 이름이다. 지난달 29일 커먼즈 종암 현장 인근에서 개운산마을 이원형 조합장과 홍보 담당 신기수 조합원을 만나 그 어렵다는 소규모 정비사업을 끌고 온 비결을 들었다.

좋은 사업성·HUG의 지원

커먼즈 종암의 시작은 원래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와 함께였다. 당시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조합설립·건축심의 등 행정처리와 사업성 분석 등을 보조하는 ‘공공참여형 소규모주택정비사업’ 모델을 내놨다. SH·LH가 시행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조합장이 보기에 개운산마을은 사업성이 좋았다.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되면서 용적률이 300%까지 허용됐다. 그간 빌라로 재건축한 집도 없이 단독주택이 유지됐기에 모든 가구의 대지 지분이 넉넉했다. 재개발 현장에서 흔히 보는 ‘지분 다툼’의 소지가 작았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었다. ‘미분양 약정매입’ 얘기까지 나누던 SH와의 협업이 갑자기 중단됐다. 다행인 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사업비 지원·보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이 조합장은 “HUG의 보증이 이 사업의 금융 리스크를 거의 해소해주면서 조합으로서는 큰 뒷받침이 됐다”고 말했다.

조합을 성실히 대변하는 CM

“우리가 짓는 아파트인데 우리 브랜드를 못 붙인다면 임대아파트처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조합장은 2024년 시공업체를 찾던 중 한 건설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간 사업을 진행하며 30여명 조합원 각 가구에 맞춤형 설계를 진행한 터였다. 공간기획·컨설팅 전문업체인 간삼기획과 함께 130가구 규모 단지에 들어갈 평면 타입을 무려 10개나 만들어냈다. 반려동물이 있는 1인 가구(36㎡), 노모와 성인 자녀가 함께 또 따로 살 수 있는 복층형 가구(69㎡), 조부모와 함께 어린아이를 돌보며 살기 좋게 두 집을 하나로 묶은 가구(133㎡)… 물론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30평 가구(84㎡)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접고 ‘평범한’ 59㎡, 84㎡ 아파트로 재편하고, 시공부터 분양까지 주도권을 다 넘기라는 건설사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간삼기획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찾은 시공사가 보미건설이다. 이 조합장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사업을 버티게 해준 한 축으로 건설사업관리(CM) 회사를 꼽는다. 커먼즈 종암이 택한 CM사는 한미글로벌이다.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많은 평면 유형, 국내 아파트에선 처음 시도하는 목조 시공, 공사 비용과 기간이 더 소요되는 패시브(단열 등 성능 강화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공법, 마을 특유의 성격을 고려한 개방적 커뮤니티 공간… 한미글로벌은 이러한 요구들에 공감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을 대변해 건설사와 조율 작업을 하고 있다.

입주자 모집을 위한 전략 설정

커먼즈 종암이 목조·패시브 주택을 택한 건 ‘탄소중립’이란 시대 흐름에 발맞출 뿐만 아니라 ‘잘 지은 아파트’를 원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목조 아파트’란 점은 향후 입주자 모집에서 홍보 포인트가 될 것이란 판단도 깔렸다. 굳이 핀란드의 유명 임업회사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이유다.

아파트 시장에 던지고픈 메시지도 있다. 신씨는 “건설업계는 패시브 주택을 못 짓는 게 아니라 분양하면 끝이니까 굳이 잘 짓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관리비도 많이 나오는 것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분명 있는데, 아파트가 자산화됐다보니 생활 불편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커먼즈 종암은 커뮤니티 공간에 공을 들였다. 다만 다른 정비사업에서 추구하는 ‘고급화’와는 다른 결이다. 주민들로 꾸린 협동조합이 카페, 어린이집, 도서관 등 부대시설의 설계뿐만 아니라 운영까지 지속해서 맡는 모델을 시도하고자 한다. 무료하게 지내는 고령 주민을 어린 자녀를 둔 부부와 연결해 자녀 돌봄을 맡도록 주선하거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하는 등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커먼즈 종암의 커뮤니티 공간은 근처 다른 아파트 주민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할 예정이다. 이 조합장은 “정부와 조합이 인센티브와 공공적 가치를 주고받으며 각각 ‘절반의 이익’을 실현하는 게 소규모 정비사업의 사업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커먼즈 종암은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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