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못했던’ 검열의 시대… 행간은 진실을 남겼다

김명래 2026. 5. 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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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가 기록한 ‘인천5·3민주항쟁’ 목소리

신군부 보도지침 압력 영향에도
‘강압통치·정치 비판’ 대목 확인
‘최루탄에 눈물…’ 스케치 기사도
혼란스런 사회 한탄 곳곳에 남아

1986년 5월5일자 10면 경인일보 ‘노변(路邊)’ 코너.

1986년 인천5·3민주항쟁은 당시 인천·경기지역의 유일한 종합일간지 경인일보가 집중 보도했다. 경인일보는 1980년대 신군부의 ‘1도1사’ 정책에 따라 존속됐고, 군사 정권의 보도지침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 다른 일간지들과 마찬가지로 독립 보도에 한계를 갖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신문의 행간을 읽으면 ‘강압 통치’에 불만을 느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가 2022년 발간한 ‘인천5·3민주항쟁 연구논문집’을 보면 당시 중앙·지역 일간지 보도 양태를 분석한 논문이 실려 있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가 연구한 ‘인천5·3민주항쟁 전후의 보도지침과 일간지의 기사문 분석’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5·3민주항쟁 당시 보도지침은 “폭동에 가까운 과격, 격렬 시위인 만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룰 것”으로 언론사에 보냈는데, 당시 경인일보를 보면 이 지침에서 벗어난 듯한 르포, 스케치 기사가 몇 개 확인된다.

경인일보는 1986년 5월5일 월요일자 신문에서 5·3민주항쟁을 첫 보도했다. 이날 3면 메인 기사는 ‘폭력 시위로 생계에 지장을 입었다’는 시민 목소리가 비중있게 나와 있는데, 중간중간에 당국의 ‘정치 행보’를 비판하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기사를 보면 5월3일 대규모 시위가 끝난 이후 당국은 시위대가 벽면에 쓴 구호와 거리에 내건 현수막을 신속하게 처리한 반면, 거리에 깨진 보도블록과 불에 탄 차량은 방치해 뒀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자가 만난 시민은 “아마도 시위에 대한 불편을 강조하기 위해 방치한 모양”이라며 “치울 것이라면 시민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신속히 치우는 것이 원칙일 텐데 행정기관에서 정치적인 데까지 신경을 써야 되겠느냐”며 정부의 차별적 대응을 직격했다. 경찰의 무분별한 최루탄 사용에 대한 비판도 기사에 담겼다. 경찰은 일명 ‘지랄탄’으로 불리는 SY-44(다탄두최루탄발사기)를 시위대 진압에 사용했는데, 시민들은 “4·19 이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것 같다”고 말했다.

5일자 10면에 실린 ‘최루가스에 얼룩진 백년가약’은 당시 언론 보도에서 보기 드문 형식의 스케치 기사였다. 5공 정권은 현장을 세밀하게 전달해 독자가 상상하게 하는 스케치 기사를 금지해 왔다. 기자는 4일 오후 2시 시민회관 앞 귀빈예식장에서 열린 ‘눈물의 결혼식’을 기록했다. 백년가약을 축하하는 자리가 최루가스 영향으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는데, 기자는 한 하객이 나직하게 말한 “이 모든 것이 기성세대인 우리의 잘못이지, 누굴 탓할 수 있나?”는 말을 캐치해 기사에 녹였다. 폐백실에서 신부가 ‘눈물을 흘려 죄송하다’고 하자 시댁 어른은 “괜찮다. 나도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느냐. 너도 알겠지만 네 시동생은 대학엘 다니고 또 너의 시아주버니는 경찰 공무원이 아니냐”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한 한탄으로 읽힌다.

경인일보 사회부 3년차 기자 시절 이 기사를 쓴 원현린 기호일보 주필은 40년 전 청년기자 시절을 회고하며 “공안 정국이 전체적 질서만 강조하면서, 무엇이 진짜 정의인지 헷갈리던 시절이었다”며 “5·3민주항쟁은 1961년 5월 이후 ‘물리적 광장’이 사라지면서 억눌려온 것들이 한번에 분출되는 촉매가 됐다”고 말했다.

/김명래 기자 problema@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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