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사찰, 모두에게 활짝

한동안 사찰은 조용한 수행의 공간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요즘 풍경은 다르다. 명상과 체험을 위해 찾는 사람들,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 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방문한 이들까지. 특정 신앙의 영역을 넘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체험과 문화, 자연을 통해 사찰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머물고 비우기, 사찰 속 체험

템플스테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무언가를 채 우려하기보다 덜어냄을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템플스테이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지난해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34만9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인원 기준으로는 60만 명을 넘어섰다. 광주·전남에서도 주말이면 명상 체험을 하려는 청년들, 템플스테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사찰이 북적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힙불교’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불교는 젊은 세대에게도 새로운 문화 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광주 증심사는 도심과 가까운 사찰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무등산 자락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의 소음이 한 걸음 물러나는 느낌을 준다. 증심사의 템플스테이는 짧은 시간 동안 명상과 차담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성 백양사는 깊은 숲과 쌍계루를 중심으로 한 풍경 속에서 고요한 머무름을 제공한다. 물 위에 비친 누각과 사찰의 정취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해남 대흥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포함된 사찰로, 넓은 경내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전통 산사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순천 송광사는 수행 도량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절제된 프로그램 속에서 사찰 본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5월에는 보다 많은 이들이 사찰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불교의 달, 마음 평안의 달’을 맞아 ‘행복 두 배 템플스테이’ 행사를 운영한다.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여행가는 달’ 캠페인과 연계해 진행된다.
5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전국 120여 개 사찰이 참여하며, 1만여 명에게 참가비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1박 2일 기준 참가 비용은 내·외국인 모두 3만 원으로 책정돼 평소보다 부담을 크게 낮췄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당일형 프로그램은 1만5000원에 참여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를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약은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되며 선착순으로 마감된다. 1인 1회 참여를 원칙으로 하지만 미성년 자녀나 고령 부모를 대신해 대표자가 함께 예약하는 것은 가능하다.
◇보고 듣고 즐기기, 문화로 열린 사찰

성보박물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찰에 전해 내려오는 불상과 불화, 공예품 등은 종교적 유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재해석된다. 관람객들은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미감을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순천 송광사·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장성 백양사 등에서도 성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사찰에서는 성보박람회를 열어 평소 공개되지 않던 유물을 선보이기도 한다. 백양사 성보박람회에서는 근대기 태극기가 전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성 대원사의 티벳박물관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티베트 불교 문화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통해 낯선 문화권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국적인 색채와 상징, 의식 도구들은 사찰이라는 공간이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찰 안에서 예술을 만나는 경험도 늘고 있다. 광주 무각사 갤러리는 한동안 휴식기를 거친 뒤 최근 다시 문을 열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고요한 사찰 공간 속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일반 전시관과는 또 다른 감각을 준다. 소음을 덜어낸 공간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관람의 속도를 늦추고, 작품과의 거리를 좁힌다.
공연 역시 사찰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고요했던 산사는 음악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화순군사암연합회는 지난 4월 화순 석천사에서 자연과 음악이 어우러진 ‘힐링 산사음악회’를 열었다. 고요한 산사의 품속에서 자연과 선율이 어우러진 공연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와 휴식을 찾을 수 있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대흥사에서는 창작음악극 ‘다우(茶友), 차에 깃든 우정’이 공연되기도 했다. 관람객이 해탈문에서 대웅보전에 이르는 길을 따라 이동하며 감상하는 몰입형 형식으로 진행돼 사찰 공간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자연 속에 머물기, 사찰의 찐 풍경

봄이 되면 사찰의 풍경은 화려하게 바뀐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매화로 꼽힌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이 나무들은 단순한 꽃나무를 넘어 하나의 문화유산에 가깝다. 개화 시기가 되면 전국에서 사진가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사찰은 자연스럽게 계절을 담는 공간이 된다. 꽃을 보기 위해 사찰을 찾는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영광 불갑사는 붉게 물든다. 사찰로 향하는 길목부터 산자락까지 이어지는 꽃무릇 군락은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힌다. 매년 9월 열리는 상사화축제 기간이 되면 사찰은 꽃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찬다.
함평 용천사 역시 꽃무릇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진입로를 따라 이어지는 붉은 꽃길은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늦춘다. 고창 선운사도 빼놓을 수 없다. 선운산 생태숲에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꽃길은 계절별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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