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돋보기] 개헌은 시대정신이며 주권자의 명령이다

중부일보 2026. 5. 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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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 이래 아홉 차례의 개헌을 거치며 국가 최고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1987년의 전부 개정은 그간의 권위주의 체제가 낳은 질곡과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이뤄낸 찬란한 결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개정 이후 39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87년 체제'는 이제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이 되었다. 휴대폰도 없었던 시대에서 AI가 만능인 시대로 바뀌고 국민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국가의 가장 기본적 규범인 헌법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특히 12.3 비상계엄과 내란은 낡은 헌법의 효용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날 밤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달려간 국회의원들과 밤새 국회를 지켜낸 시민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계엄은 해제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의결정족수를 채워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회 담장을 넘어갔던 그 날의 엄중함과 긴장을 기억하고 있다. 계엄군이 국회 통제에 성공했었더라면 국회의 해제 요구 절차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노출했던 것이다.

이제 개헌은 국가 통치의 최고 규범이라는 제도적 의미를 넘어 국민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안전장치'라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개헌이 39년간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왜일까?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해온 정치적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각 진영의 이해득실을 따지다 세월만 보낸 것이다. 또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전면적 개헌을 시도하다 이견에 부딪혀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된 탓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개헌을 선도하고 있는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합의 가능한 범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단계적 최소 개헌' 의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 쟁점의 여지가 많은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등의 논의는 추후 과제로 남겨두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계엄의 국회 통제권 강화, 민주이념 전문 수록, 지역균형발전 등 '3대 핵심 아젠다'부터 해결하자는 것이다.

국회는 4월 3일 여야 국회의원 187명의 동의로 헌법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내용은 3가지다.

첫째, 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이다. 현행 국회의 사후 계엄 해제요구를 사전 승인으로 강화했다. 계엄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즉시' 효력을 상실하도록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 헌정 수호의 안전장치를 확고히 한 것이다.

둘째, 민주화 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다. 3.1 독립운동과 4.19 혁명 정신에 더해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명시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셋째,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국가 책임 강화를 명시했다. 국민의 83%가 찬성하는 이 과제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어디에 살든 공평한 기회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국가의 법적 의무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헌법은 재적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국회를 통과한다. 상당수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동참해야 가능하다. 국회는 헌법개정을 위한 6개 정당 연석회의를 개최하면서 개헌동력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개헌을 반대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선거용 졸속 개헌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개헌안의 어디에 선거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고 야당도 공감해온 최소한의 내용이므로 졸속이라는 비판도 납득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한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본질적 내용이 빠졌다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내용은 뒤로 미루고 합의 가능한 범위로 일단 개헌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주장은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또한 개헌은 국민 과반이 투표해서 그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전국선거와 병행하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성립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으로 연기해야 하는데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이번 6.3 지방선거가 개헌의 적기이다.

헌법개정안은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개헌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당론으로 개헌에 찬성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도록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것이 공당의 의무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개헌은 시대정신이며 주권자의 명령이다.

이상식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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