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왜 약자를 배제하는가…신용등급·금리 '불문율' 건드렸다
신용등급은 과거의 잔상?
빌린 돈 상환 이력은 신뢰 지표
저신용자에게 비싼 이자?
예상 손실률·회수율 등 감안
"금융사에 해결책 내놔라" 압박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3일까지 이틀간 세 차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현행 신용평가 체계의 허점과 중저신용자의 금융시장 배제 문제를 제기했다. 개인이나 특정 기관보다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이른바 ‘금융구조론’이다. 신용도가 낮은 차주일수록 더 비싼 이자를 부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금융권에서는 갚을 능력에 따라 금리를 매기는 신용시장의 기본 원칙과 은행 부실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 실장의 주장을 5대 쟁점으로 나눠 따져봤다.

(1) “신용등급은 과거의 잔상”
김 실장은 “신용등급은 과거의 잔상”이라며 현행 신용평가가 차주의 미래 상환 능력보다 과거 연체 이력과 금융거래 기록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청년, 자영업자 등은 실제 상환 능력보다 불리하게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소득, 연체 없는 상환 이력 등 과거 정보를 보는 것은 신용평가의 핵심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안정적인 금융 궤적은 차주가 장기간 쌓아온 신뢰의 기록”이라며 “해외 주요국도 과거 상환 이력과 연체 기록 등을 핵심 지표로 활용한다”고 반박했다.
(2) “왜 절박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김 실장은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취약차주가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적으로는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다.
하지만 신용대출 금리는 차주의 절박함이 아니라 상환 가능성, 예상 손실률, 회수율, 충당금, 조달 비용 등을 반영해 결정된다. 고위험 차주에게 높은 금리가 붙는 것 자체를 ‘잔인함’으로 해석하면 위험 기반 가격 체계가 흔들린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용시장에서 금리는 곧 가격인 만큼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 역시 “위험은 실재하고, 그에 따른 가격표는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와 금리 부담 완화를 압박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3) “가운데만 뚫린 도넛”
김 실장은 한국 금융시장을 “가운데만 휑하게 뚫린 커다란 도넛”에 비유했다. 고신용자와 고위험 차주가 양극단으로 나뉘고, 정작 가장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중간 신용층은 비어 있다는 진단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도 “중저신용자 금융 배제 원인을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만 중금리 시장이 커지지 않은 이유를 금융회사의 회피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구간은 금리를 충분히 높이기 어렵지만 손실률, 관리비용, 충당금 부담은 작지 않은 ‘저수익·고관리 시장’이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중금리 시장을 키우려면 공급을 늘리라는 은행권을 압박하는 것뿐 아니라 보증, 손실 분담, 대안신용평가, 자본규제 조정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4) “인터넷은행이 체리피킹”
김 실장은 “체리피킹은 인터넷은행의 사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출범 당시 중저신용자 포용을 명분으로 은행업 인가를 받은 인터넷은행이 본래 취지와 달리 우량 차주 중심 영업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의 역할을 단순히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대출 승인율, 금리 인하, 신용점수 개선 효과 등 질적 지표까지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자체 대안신용평가를 적용해 기존 신용평가로 포착하기 어려운 차주를 선별하고 있다”며 “얼마나 많이 빌려줬느냐보다 기존 평가로 배제된 차주를 얼마나 정확히 선별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5) “끊어진 시장을 다시 잇자”
김 실장이 “끊어진 시장을 다시 잇고, 방치된 시장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중저신용자에게도 상환 능력에 맞는 대출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중저신용자 금리를 낮추거나 대출을 늘리면 관련 비용이 금융회사와 보증기관, 재정이나 또 다른 차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성실하게 신용을 관리해온 고신용자에게는 역차별이 될 공산도 크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받는 은행권에는 “전체 대출은 줄이라면서 상대적으로 연체 위험이 큰 대출은 늘리라”는 상충된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조미현/한재영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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