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건축이 만난 ‘사유원’…공간마다 담긴 깊은 사색
느티나무 숲·연못 어우러진 정원, 사색의 길로 이어지다

□사유원(思惟園)의 주요 공간과 건축
△소요헌(逍遙軒)
사유원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장자의 첫 편 '소요유'에서 따온 이름의 이 특별한 공간에는 역사적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시는 1992년 세계문화수도로 지정돼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를 비롯해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대해 마드리드를 위한 가상적인 프로젝트들을 제안 받는다. 시자는 피카소의 임신한 여인과 게르니카를 전시할 갤러리를 오에스테 공원에 구상했다. 이런 생명과 죽음의 순환 공간을 한국 전쟁의 격전지였던 군위의 땅에 실현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마드리드 프로젝트를 축소 조정한 특별한 발상이 실현됐다. 임신한 여인 대신 생명의 알, 게르니카 대신 위태롭게 매달린 녹슨 철판, 피카소의 작품 대신 시자의 조각들이 설치된 공간이다.
△소대(巢臺)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소요헌과 함께 구상한 전망탑이다.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의 모국어로 '미라도로'라 했던 이 곳을 새둥지, 소대라 명명했다. 사유원의 낮은 남쪽 사면에 위치한 기울어진 잠망경 모양의 전망탑이다. 20.5m의 탑을 오르면 사유원의 멀고 가까운 풍광을 동서남북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
300년에서 600년 수령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심어진 정원이다. 한 때 밀반출되려던 나무들을 사유원의 설립자가 지켜내고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다. 바람과 서리, 인간의 욕망을 모두 견뎌낸 모과나무, 지금도 꽃 향기와 생명의 열매를 선사하고 있다. 계곡 가운데 연담, 채당, 회당, 세 곳의 연못을 만들어 고목의 그림자들이 은은하게 비친다. 세계조경가협회 '제프리 젤리코상'을 받은 조경가 정영선이 조경했다.
△현암(玄庵)
사유원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작은 집이다. 작은 집이지만 장대한 자연이 계절 따라 변하는 풍광으로 펼쳐진다. 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한국 건축의 정수를 간직한 공간이다. 흙, 억새, 코르텐의 옥상 마당은 열린 하늘을, 사랑방의 ㄷ자 창은 수평 파노라마를, 처마와 툇마루를 가진 안방은 아담한 자연을 품었다.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사담(思潭)
사유원이 군위에 자리 잡기 전 이 곳에 인공의 연못과 빼곡히 심은 느티나무 숲이 있었다. 사유원 숲의 동물들이 지금도 아침마다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다. 사색하는 물의 정원, 사담이다. 깊은 계곡의 풍치, 수생식물과 비단잉어들의 연못, 춤과 음악이 펼쳐지는 데크, 마주 하는 느티나무 숲 '한유시경'이 이어진다.
△내심낙원(內心樂園)
근대기 한국 가톨릭계의 거장이자 사유원 설립자의 장인 김익진(1906~1970), 그와 영혼의 우정을 나눴던 벨기에 출신의 찰스 메우스 신부를 함께 기리는 경당이다. 전라도 장성 군수 김성규의 아들 김익진은 해방 무렵 물려받은 재산을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대구에서 여생을 청빈하게 가톨릭에 바친 인물이다. 찰스 메우스는 SAM 선교단 일원으로 중국에서의 활동 이후 주한 미군 군종으로 일했고, 임종까지 대구 가르멜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활동했다. 김익진은 중국 종교학자 우징숑의 '내심낙원'을 번역하기도 했다. 김익진과 찰스 메우스의 인연이 우징숑을 통해 이뤄졌으니, 내심낙원의 뜻을 이곳에 간직했다.
△명정(暝庭)
사유원을 조성하는 초창기 땅의 가장 높은 곳에 건축된 사유의 공간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아름다운 풍경을 잊고 오로지 하늘만 보이는 마당을 만들었다. 현생과 내생이 교차하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다. 물이 흐르는 망각의 바다와 붉은 피안의 세계, 작은 성소와 삶의 좁은 통로가 상징적 건축으로 승화된 승효상의 야심작이다.

△첨단(瞻壇)
사유원은 산지 정원이어서 물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빗물을 저장하는 두 물탱크 중 높은 자리의 것에 콘크리트를 입혀 별을 보는 제단을 만들었다. 신라 시대부터 나쁜 기운을 막는 12지신을 묘나 불탑에 새겼던 것처럼 사유원의 가장 높은 곳 하늘과 맞닿은 곳에 단을 만들어 새겨 놓았다.
△한유시경(閑游詩境)
리기다 소나무의 상록 숲 길을 걷다가 느낌이 다른 숲으로 들어간다. 괴테가 사색에 잠겼던 튀링겐 숲길 같은 곳이다. 사계절 하늘의 빛, 숲의 색과 향이 오묘하게 변하는 느티나무 숲이다. 한가로이 노닐면 시인의 경지에 다다르는 곳이라 해서 '한유시경'이라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