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사 우위’로 재편된 CB 발행 시장…모멘텀 높은 기업에 자금 쏠림

이정민 기자 2026. 5. 3. 18: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로금리 CB 확산…이자 대신 주가 상승에 베팅
쓰리빌리언·디앤디파마텍, 대규모 자금 조달 성공
임상 발표·기술수출 가능성 기업 중심 자금 집중
유상증자 대비 희석 부담↓관리종목 리스크 완화
연초 고금리와 대비…과거 만기 2~5% 구조 일반적
큐로셀 국산 1호 CAR-T 치료제 허가…성과 가시화

최근 바이오 기업의 ‘제로금리’ 전환사채(CB) 발행이 잇따르면서 자금 조달 구조가 발행사(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상 성과나 기술수출 가능성 등 모멘텀이 뚜렷한 기업에 대해 투자자들이 이자 수익을 포기하고서라도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자 지급에 따른 현금 유출 부담 없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연구개발(R&D) 재원 마련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0415A04 바이오 기업 전환사채(CB) 발행 현황

3일 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 기반 희귀 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394800)은 최근 상장 이후 첫 투자 유치로 키움프라이빗에쿼티(PE), 키움증권, GVA자산운용 등으로부터 300억 원을 확보했다. 이번 투자는 전환우선주(CPS) 175억 원과 CB 125억 원으로 구성됐으며 CB의 표면 이자율과 만기 보장 수익률은 모두 0%로 책정됐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CB 표면·만기 이자율이 0%여서 사실상 CPS와 유사한 구조”라며 “미국 진출 등 회사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쓰리빌리언은 매년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3분기 미국 텍사스 법인에서 처음으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에 확보한 자금은 미국 현지 실험실 엔지니어 및 임상유전학·세일즈 분야 인력 영입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 같은 제로금리 CB는 최근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디앤디파마텍(347850)은 2265억 원 규모 CB를 표면·만기 금리 0% 조건으로 발행하며 올해 바이오 업계 최대 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나 CPS 없이 CB만으로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상환 안정성보다 향후 주가 상승과 임상 성과에 무게를 둔 구조로 평가된다.

셀비온(308430)도 250억 원 규모 CB를 0% 조건으로 발행했다. 전환가액은 결의일 전일 종가 대비 8.9% 높은 3만 6048원으로 결정됐다. 에스바이오메딕스(304360)는 222억 원 규모의 CB를 0% 금리에 리픽싱 조항까지 배제한 조건으로 발행했다. 큐로셀(372320)(표면 0%, 만기 1%)과 뉴로핏(표면 0%, 만기 1.5%) 등도 유사한 구조의 자금 조달을 이어가고 있다.

CB는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주식 연계 채권이다. 제로금리 CB는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대신 투자자는 주가가 전환가액을 웃돌 경우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 차익을 얻는다. 이자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전환 차익만을 노리는 구조로 발행 기업에 유리하다. 주가가 부진할 경우 투자자는 원금 상환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관투자가들이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한 것은 임상 성과나 기술수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올해 초만 해도 고금리와 투자심리 위축으로 무이자 CB 발행은 어려웠다. 실제로 올 1월 비보존제약은 표면 2%, 만기 4%, 디티앤씨알오는 표면 2%, 만기 5% 조건으로 CB를 발행했다. 과거에도 바이오 기업의 CB 발행 조건에는 만기 이자율 2~5%가 따라붙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주도권이 발행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매출 기반이 취약하고 적자가 지속되는 바이오 기업에 CB는 유상증자 대비 단기 주식 희석 부담을 낮추면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향후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자본이 확충돼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 사업 손실(법차손) 요건에 따른 관리 종목 지정 리스크도 완화할 수 있다.

이 같은 투자 흐름의 배경에는 각 기업의 뚜렷한 임상 모멘텀이 자리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이달 27일 유럽간학회(EASL)에서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후보 물질 ‘DD01’의 임상 2상 48주 조직생검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될 경우 글로벌 제약사 대상 대규모 기술이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대감이 주가에 본격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셀비온은 전립선암 치료제 ‘포큐보타이드’ 임상 데이터를 이달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에스바이오메딕스는 파킨슨병 세포 치료제 ‘TED-A9’의 임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개월 차 임상 1·2a상 중간 결과에서 긍정적인 데이터를 확인한 상태다. 김민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말~6월 중순 최종 24개월 데이터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될 경우 한국·일본·미국 등에서 상업화 전략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시점에서 기업가치는 저평가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제로금리 CB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 중 실제 성과를 낸 사례도 나오고 있다. 큐로셀은 최근 국산 1호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T) 치료제 ‘림카토’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했다. 이번 허가로 그간 노바티스 ‘킴리아’ 등 수입 제품에 의존하던 국내 CAR-T 치료 환경의 변화가 기대된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체 개발 신약 기반의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확보하게 됐다”며 “상급종합병원 진입 등 절차를 감안할 때 3분기 말부터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민 기자 mindmin@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