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 따로 없다" 사흘째 전기 끊긴 세종 아파트, 무슨 일
복구에 ‘3일→5일→3주' 장기 조짐
휴대폰 충전·물 나르기 등 불편 극심
"화재 40분 동안 안내 방송도 없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3일 오전 세종시 조치원읍 자이아파트 단지. 우산을 받쳐 든 주민들이 단지 한복판 천막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휴대폰 충전 대기줄”이라는 입주민 김모(49ㆍ여)씨는 “전기 하나 안 들어올 뿐인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꼭대기층 15층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씨는 전날 몇 차례나 계단을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물 5리터를 1층 구호품 천막에서 받아다 올렸고, 이어 얼음팩 6kg을 보급받아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보관 음식과 식자재 부패를 지연시키기 위한 얼음팩이다. 배달 온 음식을 1층으로 내려가 받아와야 했다. 이번처럼 휴대폰 충전, 지하에 주차된 차에 다녀오는 등 생각나는 것만 7차례 걸어서 왕복했다. 김씨는 “3일 걸린다던 전기 복구 공사가 5일로 늘어나더니 어제 저녁엔 3주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온 몸이 쑤시더니 이젠 두통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밤 아파트 지하 전기실에서 난 불로 전기 공급이 끊긴 조치원자이아파트 1,400여 세대 5,000여 주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수도와 가스 공급은 재개됐지만, 전기 공급이 사흘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 승강기와 보안등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불편이 크다. 입주민 임모(56)씨는 “단지 전체가 깜깜해 일몰 후 외출은 힘들고, 집에선 촛불을 켠 채 지냈다”며 “당분간 친척집에서 지내다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오후 8시 2분 이 아파트 지하 전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1시간 30여 분 만인 당일 오후 9시 38분 완전 진화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전기 공급용 전선 다발이 소실되면서 1,429가구와 단지 전체에 정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수도, 가스 공급도 모두 중단됐다. 화재 당시 주민 10명은 승강기에 갇혔다가 구조됐다.
사고 직후 아파트 단지는 사실상 재난 현장을 방불케 했다. 전기가 끊기면서 단지 곳곳은 암흑에 잠겼고, 또 아파트 단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이동기지국을 가동하던 한 통신사의 통신망은 한때 두절되기도 했다.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는 등 임시 조치가 이어졌다. 택배 물품도 1층에 쌓여 일상 생활에 크게 차질이 빚어졌다.
상수도 공급은 전날 오전 10시쯤 재개됐다. 이어 도시가스까지 공급이 재개됐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가스레인지는 물론 보일러도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온수 공급이 안 돼 공동 샤워 시설이 주민들에게 안내됐고, 임시주거시설에 4세대 14명이 지내고 있다. 민간 숙박시설에는 329세대 1,005명이 이용을 신청한 상태다. 칠흑 같던 지하주차장에는 전날 임시 조명이 설치됐다.
사태 장기화 조짐에 세종시는 전력 복구와 함께 주민 불편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세종시 관계자는 “단지로 들어온 전력 배전반 복구를 위해 전기실 전원 공급 차단기와 소실된 케이블 교체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엘리베이터와 보안등 등 공용 부문에는 이른 시일 내 전력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는 이날 오전 9시 기준 입주민들에게 얼음 3㎏ 9,000개와 식품폐기 전용 수거용기(120리터) 52개, 생수 2리터 1,440개, 양초 412개, 모포 97개 등을 지원했다. 거동 불편을 겪고 있는 어르신 가구에는 생수를 직접 배달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는 세탁 지원도 이뤄지고 있으며, 오후 1시부터는 노인회관에서 드라이아이스를 세대당 10㎏씩 제공한다.
관리사무소와 입주민들에 따르면 2008년 완공된 이 아파트에 대규모, 24시간 이상 정전 사고는 처음이다. 현장은 우왕좌왕 그 자체다. 입주민 김민준(48)씨는 “처음엔 단지 일부에만 정전됐고, 이후 30~40분 후 단지 전역이 정전됐지만, 그 사이 어떤 안내 방송도, 안내 문자도 없었다”며 “그 때문에 평소처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민간 숙박시설 사용 비용과 식비 지원 계획을 알렸다가 몇 시간 뒤 철회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화재 원인이 아파트에 있을 경우 그 비용을 우리가 떠안을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세종=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대통령 "불법 대부는 무효, 안 갚아도 된다"...불법 사금융 근절 의지-정치ㅣ한국일보
- "장동혁 외치려면 집에 가라"... '윤 어게인' 못 털어내는 국힘, 지선도 흔들린다-정치ㅣ한국일보
- "아기가 39도 고열" 순찰차 문 두드린 남성… '5분의 기적' 일어났다-사회ㅣ한국일보
- 코요태 신지, 문원과 백년가약… 김종민·빽가 깜짝 공연에 눈물-문화ㅣ한국일보
- 정원오, 남대문 상인 하소연에 '훈계'?…"얄팍한 처방" vs "여러 대안 제시한 것"-정치ㅣ한국일보
- 전쟁 속 이재명 정부의 '줄타기 외교', 효과 있을까...앞에선 규탄, 뒤에선 달래기 [문지방]-정치
- '삼성 저격수' 박용진 "끼리끼리 먹자판 잔치, 솔직히 불편"-정치ㅣ한국일보
- "아내 시신 동물원 소각로에 태웠다" 자백한 日 사육사 검찰 송치-국제ㅣ한국일보
- "여러분 때문에 국힘 안돼" 조경태 한마디에…장동혁 첫 참석 개소식서 소란-정치ㅣ한국일보
- 대통령 지키는 101경비단, 젊은 경찰들 떠난다… 공채 경쟁률도 급락 왜?-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