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의 인문학 21] 우리들의 안녕은 누구로부터 오는가

[한국독서교육신문 정성우 칼럼니스트]
-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 -
군인은 늘상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모를 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군복은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
그만할 각오로 군복을 입었으면
매 순간 명예로워라
당연함 속에 가려져 있는 직면해야 할 진실
신병이 전입 왔다. 모친께서는 농촌 사회학자이신 정은정 작가였다. 작가는「밥은 먹고다니냐는 말」이라는 저서에서 당연하게 올라오는 식탁 위의 음식들 이면에 가려진 사람들의 고초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노동을 거쳐 왔는지 질문한다. 또한 음식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한다. 농업, 배달, 조리 등 힘들게 여겨지는 노농이 사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귀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는 질문이 단순한 안부를 묻는 것을 넘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서 오는지 반문하며 철학적 사유를 심어준다.
2025년 내가 느끼는 군대는 외로운 도시처럼 싸늘함이 느껴진다. 뜨거운 전우애 속 그 치열함과 긴장감의 공존 속에서 누군가는 사명감으로 헌신하고, 누군가는 불가피한 사연으로 떠나야만 한다. 군의 가치 중 하나가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기에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정은정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한 식탁 위 음식의 달콤함과 이로움에 숨겨진 노동자들의 고초와 같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군인들의 고초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침을 맞이하며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기쁨 속에는 군인들의 보이지 않는 고초가 있다는 것 생각해야 한다. 주말의 달콤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군인이 있기에 가능하다. 군인은 존재 자체 만으로도 존경 받아야 하며,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우리들 마음 속에 잠들어있는 군인의 존재가치를 일깨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이라는 책 제목 속에 숨겨진 농업인들의 숨소리와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해야 할 생각과 행동이 떠오른다. 사라져가는 농촌의 삶에 관심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식탁도 곧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 안녕하냐는 말' 이라는 문장 속에 숨겨진 군인들의 숨소리와 그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진짜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과 행동이 떠오른다. 농업인들의 노동 없이는 맛있는 식사가 불가능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기꺼이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의 안녕한 하루도 없을 것이다.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은 2016년 군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가 강모연(송혜교 분)에게 했던 대사에서 소개된 시는 청은 시인이 쓴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을 인용한 대사이다. 태양의 후예가 방영되던 그 시절 나도 대위였다. 1990년대 드라마 「신고합니다」 이후 오랜만에 군인을 세상 밖으로 알려준 드라마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지휘관(군인)은 고독하고 복잡한 생태계 속 존재, 그것을 극복하는 독서
군인은 국가 보안이라는 보호막 아래 그들의 생활이 공개되지 못하고 봉인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할 일들과 고초들을 늘 가슴 속에 묻고 산다. 국군의 사명을 기억하고 부대 임무 완수와 장병들의 무사 전역을 위해 낮에는 부대원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부대를 지키고 밤에는 근무로써 부대를 지킨다. 간부들은 장기 근무를 하기에 퇴근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몸만 퇴근 할 뿐 마음은 늘 부대에 있다. 2026년 3월 27일 새벽 두시에 걸려온 전화에 잠이 깨버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요즘은 보이스 피싱이니 등등 사기가 많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혹여나 바뀐 부대원의 전화번호인지, 혹시 그 가족의 전화는 아닌지 걱정이 몰려왔다. 그 새벽 부대 근무자에게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 아무 관계가 없는 전화였다. 다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잠시 명상을 하고 「엥케이리디온」이라는 책을 폈다. 저자 에픽테토스는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아우렐리우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유명한 「명상록」과 이어져있다. 두 번째 읽는 시간이었다. 스톡데일 美 해군 제독이 베트남 전쟁 당시 비행기 추락 이후 8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극복하게 한 이 책은 '스톡데일 패러독스'로도 알려져 있다. 지휘관의 고독한 생태계를 지키는 힘은 독서의 힘이다. 독서를 이기는 것은 없다는 말을 남긴 쇼펜하우어와 워렌버핏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 새벽을 독서로 버텼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의 책「소신」에서 '지성은 흔들리지 않는 힘이 아니라 흔들려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군인이란 긴 항해의 시간에서 수많은 흔들림과 파도를 만날 것이지만 그 순간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주는 것은 지성, 곧 독서와 학습을 통한 지성을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지휘관이란 복잡하고 고독한 생태계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오케스트라와 무지개 같은 절묘한 통합을 이뤄내는 리더십을 발휘해야하며 동시에 부대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장병을 지휘 통솔하는 군인은 독서와 사색 없이는 이 민감한 생태계에서 최고의 리더십과 적절한 처세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임진왜란 중 난중일기를 쓴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도 손무의 「손자병법」, 「육도삼략」 등 고전과 병법서를 읽으며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겁에 질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필사즉생(必社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의 정신으로 명량해전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들의 안녕은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군인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평소 훈련한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직관을 발휘하여 불확실한 상황을 극복 해야하는 전투원이다. 그러한 적절하고 현명한 직관을 지닐려면 쉴틈, 즉 생각을 정리하고 학습된 것을 연결하는 창조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적절한 직관과 현명한 의사결정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독서'인 것이다. 아울러 군인은 다양한 지역, 각기 다른 이력과 가정환경 등 모든 것이 다른 조건의 장병들이 모여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처세, 올바른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절실히 필요하며 그것은 전투력 발휘를 위한 기본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군 생활 중에 나를 포함한 많은 장병들이 타인에 대한 공감 방법과 이해를 위한 마음 근육이 부족하여 개인과 개인, 부서와 부서간에 상충되는 견해와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처세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지인들과의 상담, 상급자와 가까운 사람들의 조언, 선배들의 경험담 등이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극복하기가 어렵다. 독서는 이러한 사람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사물에 대한 이치와 현재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진리를 찾는 길을 알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군인들은 끝없는 자기 학습과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국가를 방위하고 있다.
우리들의 안녕은 누구로부터 오는가
집을 떠나온 낯선 장소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편안함 보단 불편함을 선택하고 당장의 휴식보다는 훈련을 통해 전우애로 뭉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 치열한 삶 속에서 군인은 국민들의 삶의 근간을 만든다. 농업인들이 우리의 식탁을 지키는 것처럼, 군인들은 기꺼이 수의를 입고 이름 모를 전선에서 목숨을 잃을지언정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 완수를 위해 자리를 지킨다. 자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보호자, 산업 현장에서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땀 흘리는 노동자, 나라의 일꾼이 되고자 부족한 잠과 싸우는 학생,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 최고의 교육을 준비하는 선생님, 모두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 헌신하는 청소 노동자, 국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경찰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 속을 뛰어드는 소방관, 우리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추억의 공간을 제공하는 자영업자 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몫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군인은 그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부대를, 나라를 지킨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없다면 이 모든 꿈과 현실은 불가능하다. 우리들의 안녕은 과연 누구로부터 오는가. 오늘은 미국의 군인이었던 찰스 M 프라빈스의 글을 읽으며 잠들어야겠다.
「나는 군인이다」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성직자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기자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시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리게 해준 자는
변호사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투표할 권리를 누리게 해준 자는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고
국기를 받들어 봉사하고
시신을 넣은 관이 국기로 덮이고
시위자가 국기를 태울 자유를 누리도록 해준 자는
바로 군인이다.
찰스 브라빈스(美 육군 퇴역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