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박안수〉리더가 읽으면 좋을 목민심서(牧民心書)
6.3지방선거 지방정부 수장을 뽑는 선거에 유력 정당과 무소속 후보가 확정되어 보인다. 후보 모두 자신이 가장 적임이라고 홍보와 운동이 열심이다.
하지만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는 일부지역에서 선거에서나 볼 수 있는 후보자간 흠집과 얼룩으로 적잖은 상처를 낳았다.
다산 정약용은 순조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강진 유배시절 자식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지간에 외롭게 서 있는 내가 운명적으로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책과 붓'이라고 썼다.
정·순조시대 정승 체재공 등 몇몇을 제외하고 우리가 기억되는 정승·판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다산은 유배에 처했음에도 독서와 많은 저서로 후세에 명예와 이름을 길이 남기고 있다. 더욱이 많은 정치인이나 지방정부 리더가 존경하는 위인이다.
유배기간동안 정치·경제·사회·의학·농업·실학 등 장르 불문 주옥같은 26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 중 가장 백미는 아마도 목민심서를 비롯 흠흠신서 경세유표로 생각된다. 기록에 의하면 목민심서는 유배 막바지나 해배 시점에 지었다고 전한다.
시대는 정조 임금이 갑자기 승하하고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라 안동김씨, 풍향조씨 수렴청정과 쇄도정치 그리고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삼정(三政)이 가장 문란한 시기다.
조선시대는 부(府). 목(牧). 군(郡) 모든 지방에 목민관을 임명·파견되어 정치와 행정은 물론 사법권까지 부여된 막강한 권한이었다.
최근 목민심서 책 원본 필사를 해보았다. 쉽게 이해되지 못한 어려운 한자도 많았다. 본디 심서(心書)는 마음속의 글로, 황해도곡산부사와 암행어사 경험을 바탕으로 부임(赴任)에서부터 해관(解官)까지 12편 육법전서에 가깝다.
기억에 남은 몇 구절은 첫 장 부임은 벼슬 중 유일하게 목민관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牧民之官은 不可求也니라) 반대해석을 해보면 그만치 지·덕과 훌륭한 판단이 필요했던 자리란 뜻일 게다.
물론 선거와 왕조시대 임명·파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방 수령과 리더가 행해야 할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율기에서 목민관의 청렴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廉者는 牧之本務이며 萬善之源) 몇 해 전 영화 '자산어보'에서 창대(변요한 배우)가 고기잡이 하다 흑산도로 유배 온 다산형 정약전(설경구 배우)에게 글을 배워 벼슬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벼슬을 금전으로 매관매수하고 어린아이와 죽은 사람까지 군포를 매겨 백성을 착취하는 부패한 관리의 탐욕이 나오는 장면이다.
지금도 리더 덕목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고도의 도덕성인 '청렴(淸廉)'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입찰 등 투명한 행정을 펼치고 있지만 인사와 정책에 대한 이권 유혹이 자칫 병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예전 나주(압해)정씨 전임 군수실을 방문한 기억이 있다. 군수실에 그 어떤 글. 그림이 게시되지 않았지만 목민심서에서 강조한 '청렴(淸廉)'이라는 문구만 걸려 있었다.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군수의 굳은 의지라 생각했다.
제가편에 자기 몸을 닦은 뒤에야 집안을 바로 이끌어갈 수 있고 그런 연후에 나라를 다스린다고 했다. (修身而後齊家하고 而後治國) 지도자 자신은 그 직에 적합한지, 또한 준비는 되었는지 한번쯤 반추(反芻)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애민에서는 혼인해야 할 나이가 지났으나 시집가고 장가가지 못하는 자는 마땅히 관에서 성혼시켜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過歲不婚娶者는 官宜成之니라)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역 대부분이 인구소멸 우려지역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호전은 수렴 직책 가운데 부패해진 전정이 최고로 어렵다(牧之職 田政最難)라고 했고 농사는 먹는 것의 근본이요, 양잠은 입는 것의 근본이라 했다. (農者食之本이요 桑者衣之本이라)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을 위한 마케팅도 필요해 보인다.
병기는 백년을 쓰지 않더라도 좋으니 하루도 준비가 없을 수 없는 유비무환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兵可百年不用이니 不可一日無備)
목민관은 학문을 권장하고 후학을 육성할 의무도 있다(牧民之職은 敎民而已)해서 강진유배지역 후학 양성에도 힘쓴 걸로 보인다.
중대한 범죄를 판결하는 요체는 밝고 신중하게 하는 공정,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斷獄之要는 明愼而已라)
마지막 해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귀장(歸裝)할 때 상자와 농에 새로 만든 그릇이 없고 주옥과 비단 고을의 특산물이 없다면 청렴한 선비의 행장이라 할 수 있다. 즉 부임할 때 가져온 물건만 다시 가지고 가야 한다는 내용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