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마가’가 되살린 오래된 논쟁, 그 까닭은?
“연구 예산은 깎으면서” 비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수장이 명왕성을 다시 ‘행성’(planet)으로 복원시킨다는 계획을 언급하며 천문학계의 오래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일각에선 ‘반과학’으로 지탄을 받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이 ‘애국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과학 논쟁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업가 출신으로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나사(항공우주국) 국장이 된 재러드 아이작먼은 지난 28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 캠페인을 적극 지지한다”며, 나사가 “현재 과학계가 이를 재검토하게 할 몇가지 문건들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이작먼이 언급한 문건이나 계획에 대해 나사 쪽은 아직까지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명왕성이 태양을 도는 다른 천체들처럼 행성에 해당하냐 아니냐는 과학계의 해묵은 논쟁이다. 태양으로부터 59억㎞가량(태양-지구 거리의 약 39배) 떨어져 있는 명왕성은 1930년에 처음 발견돼, 오랫동안 태양계의 아홉번째 행성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해왕성 바깥 쪽 ‘카이퍼 벨트’에서 명왕성 같은 천체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점차 이에 의문이 제기됐고, 2005년 명왕성보다 지름이 조금 더 큰 ‘에리스’가 발견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에리스를 비롯한 다른 많은 천체들도 행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천문연맹(IAU)은 2006년 제26차 총회에서 그간 명확치 않았던 ‘행성’의 기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왜행성’(Dwarf planet)으로 재분류했다. 당시 연맹은 △태양 궤도를 돌고 △충분한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으로 구형을 이루며 △자기 궤도 인근의 다른 전체들을 모두 청소했을 것을 행성의 세 가지 기준으로 규정했다. 명왕성의 경우 앞의 두 가지 기준은 충족하지만, 크게 찌그러진 궤도가 해왕성의 궤도와 겹치기 때문에 자기 궤도에서 지배적이라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와 목성 역시 수많은 소행성과 궤도를 공유한다” 등 행성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명왕성의 왜행성 분류는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우주항공 관련 기관의 수장이 이 논쟁을 다시 공식적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특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가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MPPA·Make Pluto a Planet Again) 구호와 연결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나사를 이끌었던 짐 브라이든스타인 전 국장도 2019년 “명왕성은 행성”이라고 선언하듯 말한 적 있다. 인기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을 연기한 배우 윌리엄 샤트너는 2025년 5월 소셜미디어 엑스(X)에 “대통령이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도록 일론 머스크에게 부탁하자”는 글을 올렸고, 당시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머스크는 여기에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유타주 상원위원 마이크 리(공화당)는 올해 2월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 만들어 달라”고 트럼프에게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명왕성에 대한 사랑은 미국에서 특히 강한데, 여기엔 ‘명왕성은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명왕성은 1930년 미국인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1906~1997)가 미국 애리조나 로웰천문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명왕성 탐사선 ‘뉴 허라이즌스’(New Horizons)는 2015년 명왕성과 그 위성들을 처음으로 근접 탐사하며 여러 사진들을 보내왔는데, 그중 특히 화제가 된 명왕성의 하트 무늬에는 ‘톰보 영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왕성의 산맥, 질소 빙하 등을 생생하게 포착한 당시 뉴 허라이즌스의 사진들은 명왕성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단, 명왕성의 행성 지위는 어느 국가나 기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가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국제천문연맹의 후속 결정이 필요하다. 다만 연맹 차원에서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친 적은 여태까지 없었다.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는 ‘행성과학연구소’ 소장인 행성과학자 아만다 헨드릭스는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은 진정한 과학적 문제에서 주의를 분산시킨다”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지적했다. 연맹의 행성 기준에 의문을 표하며 명왕성의 행성 지위 복원을 지지해왔던 우주생물학자 데이비드 그린스푼은 “나사가 이를 선언할 수 없다. 나사가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네이처는 “일부 천문학자들을 분노케 한 것은 아이작먼의 발언이 나사의 과학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행정부의 제안을 지지하면서 나왔다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부터 지금 임기까지 시종일관 과학 관련 예산을 줄이고 사람을 줄이는 등 ‘반과학’ 조처를 이어왔고, 최근에도 국립과학재단(NSF) 2027년 예산을 기존 90억달러에서 36달러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혀 과학계의 공분을 샀다. 상원에서의 명왕성 관련 이야기는 아이작먼이 행정부의 예산 삭감 제안을 옹호한 뒤에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행성과학자 아딘 덴튼은 소셜미디어 ‘블루스카이’에 “명왕성을 연구하는 우리의 경력을 파괴하면서 ‘명왕성을 다시 행성으로 만들자’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다”는 글을 올렸다.
다만 앞으로 나사가 무엇을 내놓느냐에 따라 과학계에서 논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뉴 허라이즌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켈시 싱어는 행성과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명왕성을 행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며, “나사의 공식 발표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네이처에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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