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과꽃 1kg서 단 9g…청송 ‘꽃가루 전쟁’ 현장을 가다
풍선기 포착부터 24시간 가공까지…기후변화 속 정밀 농업 총력전

4월 30일 오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위치한 청송사과 꽃가루은행. 겉보기엔 은은한 사과꽃향기가 감돌것 같은 평온한 공간이지만, 내부는 보이지 않는 '입자'와의 싸움이 한창이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풍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투입된 70여 명의 인력이 과수원 여기저기를 오가며 채취해온 사과꽃이 작업장 안에 가리런히 놓여 있다.
이곳의 공정은 단순한 농작업을 넘어선다. 채취된 꽃은 자연 건조와 정밀 가공을 거치며 꽃가루로 변신한다. 사과꽃 1kg을 투입해도 얻을 수 있는 꽃가루는 고작 9g 남짓. 극미량의 입자지만, 이 가루가 내년 가을 수백 톤의 청송사과를 좌우한다. 올해 생산된 약 5kg의 꽃가루는 내년 봄 청송지역 내 500여 농가, 약 40만 평 과수원에 뿌려질 '보이지 않는 씨앗'이다.

작업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플라스틱 용기마다 수북이 담긴 사과꽃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갓 채취된 꽃에서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고, 한편에서는 건조기가 돌아가며 꽃의 수분을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꽃은 색을 잃어가며 점차 '가루'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꽃들은 인근 청송읍 청운리 꽃사과 재배단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지난 달 16일부터 약 일주일간 진행된 채취 작업에는 하루 70여 명의 인부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가지마다 달린 꽃 중에서도 완전히 피기 직전, 봉오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이른바 '풍선기' 상태의 꽃만을 골라냈다.
김민소 청송군농업기술센터 기술개발팀장은 "사과꽃은 낮 기온이 25도를 넘기면 순식간에 개화한다"며 "가장 적합한 상태를 맞추기 위해 새벽과 낮, 저녁 하루 세 차례씩 개화 상태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만 시기를 놓쳐도 꽃가루로 쓸 수 없는 꽃이 되기 때문에 타이밍이 생명"이라고 덧붙였다.

채취된 꽃은 이틀가량 자연 건조를 거친 뒤 본격적인 공정에 들어간다. 꽃밥 채취기와 정선기를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개약기에서 12~24시간 동안 꽃밥을 터뜨린다. 이 과정에서 순도 높은 꽃가루만을 선별해낸다. 이후 꽃가루는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냉동 보관되며, 사용 직전 해동 과정을 거쳐 농가에 공급된다.
농가에서는 이 꽃가루를 증량제와 혼합한 뒤 면봉이나 붓, 전동 분사기를 이용해 암술머리에 묻히는 방식으로 인공수분을 진행한다. 자연수정이 어려운 환경에서 사실상 결실을 좌우하는 핵심 작업이다.
실제 수율은 극히 낮다. 사과꽃 560kg을 채취해야 약 5kg의 꽃가루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꽃가루는 지역 내 사과 재배 농가 약 500가구에 최소 10g씩 무상 공급된다. 10g이면 약 800평 규모 과수원의 수정이 가능한 양이다.
현장 한켠에서는 꽃가루은행으로 들어온 물량이 정리되고 있다. 이곳은 군이 직접 채취한 꽃뿐 아니라 농가가 가져온 꽃까지 가공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자재 확보를 돕는 셈이다.

작업에 참여한 한 농민은 "이제는 날씨만 믿고 농사짓는 시대가 아니다"며 "꽃가루를 확보해두면 훨씬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저온과 강우, 화분매개 곤충 감소 등으로 자연수정이 어려워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청송군농업기술센터는 2.5ha 규모의 꽃사과 재배단지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꽃가루 생산 체계를 구축해왔다. 2016년 국비와 지방비 등 2억 6000만 원을 투입해 조성된 이 시설은 만추리안과 호파에이 등 품종을 활용해 고품질 꽃가루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생산량은 2023년 9.4kg, 2024년 5.9kg, 2025년 5.1kg 수준이다.
청송군농업기술센터 하경찬 소장은 "기후변화와 곤충 감소로 인공수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적기에 고품질 꽃가루를 공급해 청송 사과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를 모으는 일. 그러나 그 미세한 입자 안에는 한 해 농사의 성패, 그리고 청송 사과의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