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면, 잊힌 여성 작가들이 보인다…설치 이전 ‘환경’의 역사

배문규 기자 2026. 5. 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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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츠루코의 ‘빨강’.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미술사에서 누락됐던 여성 작가들의 ‘환경’ 작업을 재조명한다. 사진 홍철기·리움미술관 제공

붉은 직육면체가 허공에 떠 있다. 바닥에서 70㎝ 떨어진 틈으로 몸을 낮춰 들어가면, 나무 뼈대로 틀을 잡고 붉은 비닐로 감싼 소박한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야마자키 츠루코의 ‘빨강’은 1956년 일본 아시야 공원에서 열린 제2회 야외 구타이 미술전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일본 가정집 침실의 모기장을 연상시키는 사각 구조물은 밤이 되면 내부 조명으로 등불처럼 빛났다. 안에서는 붉은 공간에 잠기는 듯한 경험을 줬고, 바깥에선 안의 움직임이 그림자 극장처럼 장면이 됐다. 전후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구타이의 창립 멤버인 야마자키는 신체와 비전통적 재료를 매개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했던 작가다. 이 작품은 1976년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제르마노 첼란트에 의해 여성 작가가 만든 최초의 ‘환경’ 작업으로 재조명됐다.

오는 5일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설치’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전에 이미 공감각을 예술 형식으로 선취한 ‘환경’을 다시 불러내는 전시다. 그 중심에는 주류 미술사에서 누락됐던 여성 작가들이 있었다.

‘환경’은 관람자가 작품 안으로 들어가 빛, 소리, 색, 공기, 움직임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예술 형식을 의미했다. 이런 작업은 좌대에 놓이지도 벽에 걸리지도 않았으며, 딱히 거래가 가능한 것들도 아니었다. 제도 미술의 중심에서 비켜있던 여성 작가들에게는 이 조건이 오히려 자유로운 발상을 실험하는 해방의 공간이 됐다. 하지만 회화와 조각 중심으로 쓰인 남성 중심 미술사에서 이들의 작업은 금세 잊혀졌다. 환경 작업의 특성상 전시 종료와 함께 해체되어 기록조차 거의 남지 않았기에 이들의 역사는 두 번 지워지게 됐다.

이번 전시는 1956년 야마자키의 ‘빨강’에서 출발해 ‘환경’을 역사적 계보로 정리한 1976년 제37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환경/예술>까지 20년의 흐름을 따라간다. 전시를 기획한 안드레아 리소니 하우스 데어 쿤스트 예술감독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에는 남성작가와 콜렉티브를 아우르는 리서치를 진행했는데 자료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을 때 서로 다른 작업들을 잇는 붉은 실이 보였다”며 “여성 작가들이 착안한 환경 작업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 확장된 조각들은 젠더와 지역을 넘어 기존 미술사를 다르게 서술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 사진 홍철기·리움미술관 제공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스펙트럼 통로’. 사진 홍철기·리움미술관 제공
레아 루블린의 ‘침투/배출’과 ‘움직이는 남근’. 사진 홍철기·리움미술관 제공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드는 여성 작가 11인의 작품은 관람객이 몸을 비집고 들어가고, 통과하고, 때로는 배제되는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페미니즘 미술의 기념비적 작업 ‘디너 파티’로 유명한 주디 시카고도 초기에는 환경 작업을 선보였다. 역사 속 여성들을 만찬의 자리로 초대했던 그는 ‘깃털의 방’에서 관람객을 구름 위를 거니는 듯한 공간으로 불러들인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 남성 작가들이 사용했던 강철이나 차가운 물성에 저항하듯, 가볍고 폭신한 거위 털을 무릎까지 가득 채운 방 안에서 따스한 해방감을 느끼도록 한다.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스펙트럼 통로>는 직선과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건축을 거부하듯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나일론 천으로 삶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레아 루블린의 작품은 남근형 튜브와 생식 과정을 암시하는 풍선 터널을 통과하게 한다. 접근을 거부하는 금기의 공간부터 무한히 확장하는 공간까지 저마다의 ‘환경’으로 관람객의 사유를 흔들어 놓는다.

한국 전위예술 1세대로 각인된 정강자는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환경 미술을 시도한 작가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검은 장막 안에 관람객이 들어서면 사이렌이 울리고 연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놀란 관객의 얼굴에 조명이 비치고, 작가의 목소리로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온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암시하는 이 작품은 1970년 전시 도중 철거된 이래 처음으로 관객 앞에 다시 서게 됐다.

전시 공동기획자 마리나 푸글리에세 밀라노 문화박물관(MUDEC) 관장은 이번 전시를 “일종의 포렌식 작업”에 비유했다. 사라진 작업들은 사진과 도면, 비평문, 작가와 유족의 증언을 단서 삼아 되살렸고, 생존 작가의 작업은 당시 못다 이룬 구상을 애초 의도에 가까운 형태로 재현했다. 기획의 무게를 앞세우지 않아도, 현대미술에 낯선 관객까지 몸으로 먼저 반응하게 하는 전시다.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환경 미술 형태를 시도했던 정강자의 ‘무체전’. 빛, 소리, 촉각적 요소를 활용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암시하며 예술의 개념과 경험 방식을 실험했다. 사진 홍철기·리움미술관 제공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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