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뒤집혔다”…미국·남미·중국까지 ‘에너지 패권 재편’[디브리핑]
남미 신흥 산유국 부상…“중동 대체축 형성”
중국 태양광·전기차 질주…재생에너지 패권 확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 원유 가격이 급등하며 나프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서울 도심 내 한 상점에 석유화학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헤럴드경제DB]](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ned/20260503150219519tsno.png)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과 이란 충돌로 촉발된 중동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단순한 공급 차질을 넘어, 수십 년간 유지돼온 ‘중동 중심 석유 질서’가 약화되면서 미국·남미·중국을 축으로 한 새로운 에너지 권력 구조가 형성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급감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은 역사적 수준의 충격을 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 통로가 사실상 막히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이 재편되는 양상이다.
실제 최근 글로벌 해상 운송 흐름은 급격히 바뀌었다. 각각 약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 약 30척이 미국산 원유를 싣고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 공급 공백을 메우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들 선박 규모는 평상시 미국 원유를 선적하던 월간 수송량의 약 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전쟁 이전에는 중동이 공급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미국이 그 공백을 대체하는 구조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돌입한 가운데 봉쇄 조치 이후 유조선이 페르시아만(걸프 해협) 방면으로 통항한 첫 사례가 나왔다. 15일(현지시간) 선박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몰타 선적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아기오스파누리오스Ⅰ는 이날 오전 6시6분께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했으며, 오는 16일 이라크 바스라에 입항할 예정이다. [마린트래픽 캡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ned/20260503150219865koiy.jpg)
실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하루 약 1000만배럴 규모의 원유 수출이 차단되면서 미국산 원유 수출은 급증했다. 미국 수출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원유 공급량은 약 3분의 1 증가해 하루 520만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이 공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항공사들이 연료 부족에 대응해 항공편을 줄이면서, 미국산 항공유 수출도 두 배로 증가하며 역시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이 순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된 지 5년 만에 맞는 결정적 기회라는 평가다. 백악관은 중동의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는 상황을 활용해 글로벌 석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중동의 공급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의 생산 능력도 전쟁으로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 원유 생산량의 약 3분의 1이 단기간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드론 공격과 시설 파괴로 인해 유전과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복구 비용만 최소 340억달러에서 최대 58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량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18일 베네수엘라 줄리아 주 마라카이보 인근 마라카이보 호수에 정박한 원유 운반선[AFP]](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ned/20260503150220180zaom.jpg)
이처럼 중동 공급이 장기간 불안정해질 경우 글로벌 에너지 질서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틈을 타 남미가 새로운 에너지 공급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브라질, 가이아나, 수리남의 해상 유전과 아르헨티나의 바카무에르타 셰일층은 향후 글로벌 원유 공급 증가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기존 전망에 따르면 이 지역은 2030년대까지 하루 약 250만배럴의 추가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경우 추가 생산량은 더 확대될 수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매장량을 바탕으로 생산 확대 가능성이 크다. 일부 전망에서는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추가 생산이 가능하며, 상황에 따라 200만배럴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유업체들도 이미 남미 원유를 활용해 유럽 시장에 수출을 확대하며 수익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영구적으로 고착될지는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단기간 내 재개방될 경우 공급 구조가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우드맥켄지의 딜런 화이트 이사는 “미주 지역 생산 확대는 일시적일 수 있으며, 해협 재개방 시 중동 물량이 다시 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흔들린 공급 구조가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우세하다.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ned/20260503150220454zmbh.png)
이와 동시에 에너지 질서는 ‘화석연료 중심’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이동하는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으며,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의 60~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란 사태 발발 이후 중국의 태양광 설비 수출은 한 달 만에 두 배로 증가해 68GW를 기록했다. 이는 스페인 전체 태양광 설비 용량을 넘어서는 규모다.
아프리카로의 수출은 176% 증가했고, 아시아 지역 수출도 두 배로 늘어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또 중국은 약 14억배럴 규모의 전략적 원유 비축을 확보해 에너지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기차 보급 확대를 통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 신차 판매의 절반이 전기차로 채워지며 목표치를 크게 초과 달성했다. 이는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세군도에 위치한 셰브론 정유공장에서 원유 운반선 ‘키오스’호가 화물을 하역하는 와중에 엘포르토 해변에서 시민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AP]](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ned/20260503150220713gzfq.jpg)
전문가들은 이번 에너지 위기가 각국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던컨 우드 태평양국제정책협의회 회장은 “현재 상황은 단순한 공급 충격이 아니라, 각국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공급원을 다변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엠버(Ember)의 유안 그레이엄 분석가는 “화석연료 가격 급등이 태양광 에너지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 속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미국, 남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 축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화석연료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남미는 신흥 산유국으로 부상하며 새로운 공급 축을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패권을 강화하며 에너지 질서 변화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기존 중동 중심의 에너지 질서는 점차 약화되고, 다극화된 구조로 전환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에너지 공급과 기술, 시장 주도권이 분산되는 ‘다극 체제’가 형성되는 전환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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