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의 우정은 정말로 가능할까

한겨레21 2026. 5. 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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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빈의 과학 읽다]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보여준 수학의 효용성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여기 우주의 고독한 적막을 가로지르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임무는 죽어가는 태양을 살려낼 단서를 찾아 타우 세티에 가는 것이지만 오랫동안 가사 상태였던 탓에 기억이 희미하다. 잃어버린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남자는 한 우주선을 만난다. 우주선 안에는 거미를 닮은 바위 외계인 로키가 타고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이야기다. 이후 남자와 외계인은 좌충우돌 모험을 함께한 끝에 우주의 구원자이자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우가 된다. 두 존재의 목숨을 건, 기적과도 같은 우정에 많은 관객이 눈시울을 붉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영화가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었으니 감동을 뒤로하고 좀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남자와 외계인의 우정은 정말로 가능한 것이었을까?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이유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왜 이런 주장에 이르렀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철학적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장은 세계를 묘사하고, 단어는 대상을 가리킨다’는 철학의 전통적 전제를 부정한다. 그가 보기에 어떤 단어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불과하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일종의 게임이지, 언어가 실재 세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차이는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중대한 전환이다. 언어가 실재와 일치한다고 할 때, 우리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의 눈앞에나 단단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가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는 기반은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의 규칙에 있게 된다.

그렇다면 게임의 규칙은 무엇인가? 간단한 예시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올바르게 쓰려면 “미안”의 정의를 암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자신이 상대에게 폐를 끼쳤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사과가 필요함을 아는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이 게임의 규칙을 형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두고 “하나의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이제 우리는 사자에 관한 앞선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사자와 말이 통할 가능성이 없는 이유는 사자의 삶의 형식이 인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트겐슈타인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감상한다면, 남자와 외계인의 우정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일 테니까. 그럼에도 더 논의해볼 만한 지점은 남아 있다.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번역, 그러니까 최소한의 과학적 의사소통도 불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남자와 외계인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수학과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 외계인은 조악한 항성계 모델을 통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전한다. 남자는 외계인에게서 8개의 구슬이 꿰인 고리 한 쌍을 받는데, 그것이 8개의 전자를 지닌 산소 원자 2개, 즉 O₂라는 것을 깨닫고 우주복 헬멧을 벗는다. 나아가 두 존재가 말을 트는 과정은 숫자에서 시작해 천천히 진전된다.

수학은 발견한 것인가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학에는 “과학에 대한 비합리적 유효성”이 있다. 인간이 상상해 만들어낸 추상적인 구조에 불과한 수학이 놀라울 정도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기술하는 데 유용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허수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숫자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수가 필요하다. 또한 소수(prime number)는 곱셈과 나눗셈의 개념에서 유래했으나, 우리는 자연 속에서 소수로 이루어진 수많은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수학의 비합리적 유효성은 수학이 언어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 구조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수학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라고. 만약 그렇다면 수학과 과학은 이 우주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된 삶의 형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원주율은 3.141592… 입니다” 하고.

이와 같은 이른바 수학 발견설은 수많은 에스에프(SF)를 비롯해 현실의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주었다.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가 대표적이다. 소설 속에서 인류가 외계로부터 처음 받은 메시지는 소수의 나열이었다. 연속적인 소수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은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추지 않고는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 과학자들은 해당 메시지를 지적인 존재가 보내는 화친의 신호라고 여겼다. 비슷한 일이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났다. 1970년대에 나사(NASA)가 태양계 밖으로 발사한 탐사선 보이저호에는 ‘골든 레코드’가 실렸다. 골든 레코드에는 인간의 모습과 태양계 위치 등이 그려져 있었는데, 레코드를 재생하기 위해 필요한 값은 이진법 계산을 통해 알아내야 한다. 여기에는 외계인이 지구의 언어를 모르더라도 수학과 과학을 통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전제돼 있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 장밋빛 전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수학 역시 인간의 뇌가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 만든 특수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수학적 구성주의’라 하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이 십진법을 쓰는 이유는 단지 손가락이 열 개여서 그렇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외계인처럼 암석으로 된 몸을 갖고 있으며 손가락이 없는 존재의 수학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원’은 시각적으로 둥근 곡선이지만, 소리로 세상을 보는 영화 속 외계인에게 원은 모든 방향에서 똑같은 반향이 돌아오는 소리의 벽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느끼고 사용하는 ‘맥락’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앞선 지적이 수학과 과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서로 다른 언어의 규칙

수학이 우주의 절대적 질서인지, 아니면 생명체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발명한 정교한 안경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사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수학 공식으로 말을 건다 해도, 사자가 느끼는 사냥의 희열이나 초원의 고독까지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언어라는 게임의 규칙이 다른 이상,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삶의 형식’ 주변을 겉도는 이방인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 외계인을 만나지 못했고 우주는 넓고 적막한 채로 있다. 그 적막은 인간의 언어나 감정을 위한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타자를 향해 숫자를 적고 전파를 보낸다. 그것이 우리가 과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전부일지라도 말이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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