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그동안 오만소리를 다 들었나('아니 근데 진짜')

정석희 칼럼니스트 2026. 5. 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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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먼지 쌓여가는 ‘라디오 스타’, 리모델링 성공한 ‘아니 근데 진짜’를 보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기록을 보니 챗GPT를 처음 접했던 게 2023년이다. '별로네, 왜 이렇게 엉터리야'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불과 몇 년 사이에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 달라지고 계속 새로운 게 나온다. 어디까지 갈지 가늠조차 어렵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같은 속도로 방송과 TV는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주요 예능 시청률이 3~4% 대. OTT에서라도 활로를 찾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녹록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보는 안일함이다.

편의점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손님이 뜸해진 동네 구멍가게가 떠오른다. 먼지 쌓인 진열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노부부와 같다고 할까. 다행히 땅은 본인 소유라 당장 쫓겨날 일은 없지만 가게를 접거나 업종을 바꿀 용기도 기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나는 '수십 년 단골인 나라도 팔아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찾는 동네 주민 입장이다. 아무리 장사가 안 되도 먼지라도 털고 불도 환하게 켜놓고 편의점에선 못 사는 물건을 들여놓을 궁리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젠가 문을 닫더라도 '그 집 없어져서 아쉽다'는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특히 토크쇼는 딱 먼지 앉은 진열대다. 주요 예능인들이 유튜브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제 토크쇼는 유튜브가 강세다. 최근 TV, OTT, 유튜브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본 토크쇼를 꼽으라면 유재석 채널 〈핑계고〉에 배우 주지훈, 김남길, 윤경호가 출연한 회차다. 2시간 가까운 분량임에도 조회수가 1,300만 회를 너끈히 넘었다. PPL도 붙고 제작진은 단출하니 효율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날은 평소 유재석을 거들던 이른바 '키링' 멤버들도 필요 없었다.

MBC 〈라디오 스타〉와 종영한 SBS 〈돌싱 포맨〉엔 공통점이 있었다. 진행자 넷이 서너 명의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 그리고 내가 질색하는 큐카드 보며 질문 읽기다. 인원이 워낙 많으니 이야기가 어우러지지 못하고 끊길 때가 부지기수고 병풍 노릇을 하다 돌아가는 출연자까지 생긴다. 방송사 사정이 어렵다면서 굳이 그 많은 진행자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핑계고〉 제작 환경을 보면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돌싱 포맨〉의 경우 초반엔 이혼 남성들의 일상을 비추다가 결국 토크쇼로 정착했다. 제작비도 덜 들고 만들기도 수월해서가 아닐까. 그 후속 격으로 월요일 밤에 방송되는 〈아니 근데 진짜!〉. 올 2월 첫 방송 이후 현재 14회까지 왔는데 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그동안 〈돌싱 포맨〉에 미련을 못 버렸던 건지. 김준호·이상민이 결혼할 즈음 깔끔하게 접었으면 될 일을, 왜 반년 넘게 끌면서 오만소리를 다 들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1부, 2부로 나뉘고 초대 손님에 따라 매번 다른 세계관과 상황, 배역이 주어지니 품은 몇 배나 많이 들 터, 그래도 제작진 입장에서는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지 싶다. 쿠팡플레이 〈SNL〉로 내공을 쌓은 이수지가 중심이 되어 상황극을 이끌고, 수시로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가 절실한데 탁재훈이 그 부분에서는 업계 최고가 아닌가.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여기에 밝고 유연한 예상 밖의 카드 '엑소'의 카이가 신의 한수다. 이상민, 탁재훈, 이수지, 장르가 다르고 어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연장자들 사이에서 조급한 기색 없이 관조하듯 앉아 있다가 툭툭 한마디씩 던진다. 타고난 예능력, 이건 연습한다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게스트에 따라 완성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10회 신동엽 편에서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확실해졌다. 상황극의 달인인 신동엽이 맥락을 잡아주면서 11회, 배우 김성균과 개그맨 양상국이 경상도 사투리를 주제로 출연한 날도 그 못지않은 재미가 있었다. 그날 설정이 조폭이었는데 양상국이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던졌다. "아니 무슨 깡패들이 대본이 있습니까?" 옳은 소리다. 엄연히 상황극이거늘 리허설도 아니고 본 방송에 대본을 펼쳐놓고 찍다니.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고 간판을 바꿔 달아도 이상민과 탁재훈에겐 여전히 토크쇼인 모양이다. 새로이 판을 짰다고 정장까지 맞춰 입혀줬더니 산책용 운동모자를 눌러 쓰고 나온 격이지 뭔가.

예전에 이상민이 Mnet 〈음악의 신〉으로 복귀했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크게 사업을 하고 기획을 해본 사람이라 시야가 다르구나 싶었다. 한때 새벽에 수산시장에서 장 봐다 요리하고, 적은 돈으로 해외를 떠돌며 궁상을 자처하던 그 치열함은 어디로 갔을까. 〈돌싱 포맨〉이 돌고 돌아 토크쇼에 정착한 것처럼 이번 모처럼의 시도 또한 거품처럼 가라앉을 수 있다. 지금의 네 멤버, 노래 되고 춤 되고 연기까지 되는 조합이다. 잘만 활용하면 MBC 〈놀면 뭐하니?〉식 프로젝트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훨훨 날아오르는 유튜브와 경쟁하려면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빤한 토크쇼로는 어림도 없다.

〈아니 근데 진짜!〉는 숙고 끝에 리모델링을 마쳤고 점차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비슷한 구성의 〈라디오 스타〉는 무슨 대책이 있는 걸까. 2007년 〈황금어장〉 속 5분짜리 코너로 출발한 이래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봐온, 수많은 스타가 발굴되는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답답한 마음일 뿐이다. 집수리할 계획이 없다면 제발 먼지라도 털고 진열이라도 다시 하시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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