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철거된 정강자의 전위예술, 56년 만에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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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막 뒤 공간에 들어서면 연기가 바닥을 가득 메우며 올라온다.
독일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에서 첫선을 보인 후 이탈리아 로마와 홍콩을 거쳐 리움미술관으로 온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는 1956년에서 1976년 사이 아시아와 유럽, 남·북미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 10여 명의 공간 설치 작품을 복원해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오늘날에는 미술 작가들의 공간 설치를 흔히 볼 수 있지만, 60여 년 전에는 '환경(ambiente) 예술'이라 불리던 생소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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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정부가 철거한 '무체전'도 재현

검은 장막 뒤 공간에 들어서면 연기가 바닥을 가득 메우며 올라온다. 사이렌이 울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조명이 관람객의 얼굴을 비추고, 작가의 생전 목소리를 되살린 인공지능(AI) 음성이 흘러나온다.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이 1970년 사라졌던 정강자의 '무체전'을 고증을 거쳐 재구성해 5일부터 전시장에 공개한다. '무체전'은 정강자가 1970년 전위예술가 그룹 '제4집단' 활동의 일환으로 당시 서울 중구에 있던 국립공보관을 빌려 공개한 전시의 명칭이다. 빛과 소리, 특수효과를 총동원해 관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몰입형 설치 작업이 56년 전 한국에서 이미 시도된 셈이다.
이 전시는 제4집단을 불온세력으로 몰던 정부에 의해 사흘 만에 강제 철거당한 후 기록으로만 남은 불운의 전시이기도 하다. 기획을 맡은 조은정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당시 언론 보도와 작가가 남긴 작업노트, 유족이 보유하고 있던 현장 사진 등을 연구해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고증했다"고 밝혔다. 정강자의 실험은 1970년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에 의해 좌절됐지만, 2026년에 되살아나 당시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리움미술관이 사라졌던 '무체전'을 되살린 것은 비슷한 시기에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여성 작가들의 공간 설치 실험과 견주기 위해서다. 독일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에서 첫선을 보인 후 이탈리아 로마와 홍콩을 거쳐 리움미술관으로 온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는 1956년에서 1976년 사이 아시아와 유럽, 남·북미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 10여 명의 공간 설치 작품을 복원해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오늘날에는 미술 작가들의 공간 설치를 흔히 볼 수 있지만, 60여 년 전에는 '환경(ambiente) 예술'이라 불리던 생소한 시도였다. 그래서 반세기 이상 지나 부활한 작품들이 오히려 시대를 초월한 듯 다가온다. 큰 공간을 깃털로 가득 채운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이나, 좁은 통로를 모험하듯 지나가게 하는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스펙트럼 통로' 등은 전시를 넘어 놀이기구에 가까운 체험처럼 보인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환경 예술은 (과거에) 봉인된 역사적 장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시 쓰이는 살아있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의 다른 특징은 여성 작가의 작품만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회화·조각 중심의 주류 예술에 대항하는 표현의 해방구로서 환경 예술을 적극 개척했다. 마리나 풀리에세 밀라노 뮤데크(MUDEC) 관장은 "여성 설치 작가들은 여성의 몸을 공개적인 소재로 다루거나, 딱딱한 주류 예술과 달리 부드러운 물성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였다"면서 "이들은 미술사와 환경예술의 역사 양쪽 모두에서 지워지는 이중의 소외를 겪었다"고 말했다. 11월 29일까지.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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