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20년 전 감동 그대로
제작진·배우 그대로 돌아온 속편…세계관 지키고 시야 넓혀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06년 개봉해 전 세계에서 3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칙릿(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과 문학을 의미하는 'literature'를 합친 신조어. 20·30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가벼운 소설) 계열에 등장한 '퀸'이었다. 브리짓 존스(《브리짓 존스의 일기》), 캐리 브래드쇼(《섹스 앤 더 시티》)에 이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가상의 패션 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레슬리(메릴 스트립)와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비서 앤디(앤 해서웨이)는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패션계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성들의 분투를 그렸던 이 영화가 20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전편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그대로 합류한 채로 작품의 세계관은 확실히 지켜내면서, 한층 넓은 시야를 장착하고 돌아온 이 귀환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설의 '세룰리안 블루'를 기억한다면
패션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매 시즌 들썩이는 전 세계 패션위크와 화려한 쇼들은 애초에 산업 관계자들 사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명품은 그저 사치의 명목일 뿐. 아직도 이렇게까지 심드렁해하는 사람이라면 20년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들려준 깔끔 그 자체의 반격을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패션 잡지 런웨이에 인턴으로 취업한 앤디는 화보 촬영 콘셉트를 두고 논의 중인 미란다와 담당 에디터의 대화를 듣다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에디터의 손에는 발레리나 스커트에 착장할 두 가지 벨트가 들려 있는데, 앤디가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때 미란다가 특유의 고저 없는 목소리로 앤디에게 차분하게 일갈한다.
"너는 네 옷장에서 보풀이 잔뜩 일어난 블루 스웨터를 껴입고 대단한 지성이나 갖춘 양 잘난 척을 떠는데, 넌 네가 입은 게 뭔지도 모르고 있어. 그건 그냥 블루가 아니라 세룰리안 블루야. 또 당연히 모르겠지만 2002년에 오스카 드 라 렌타와 입생로랑 모두 그 세룰리안 컬렉션을 했지. 세룰리안 블루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랑받다가 슬프게도 네가 애용하는 할인매장에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수백만 달러의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했어. 그런데 패션계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그 스웨터를 네가 패션을 경멸하는 상징물로 선택하다니, 웃기지 않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보여준 세계는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화려한 아름다움에만 목숨을 거는 이들의 무대가 아니었다. 가장 멋진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비슷해 보이는 수천 장의 밀착 필름을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봐야 하는 일, 밤낮없이 미쳐 몰두해야 하는 일, 남들에겐 사소해도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하는 가치를 믿는 일. '런웨이'는 패션과 미디어 종사자들이 피와 땀으로 지은 성전이었다. 패션은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혐오감을 안고 출발한 앤디의 여정은 종국에는 자신이 원래 지향했던 저널리즘의 본질로 향했지만, 그것이 미란다로 대변되는 패션 업계의 수고와 진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20년의 세월 동안 미란다와 앤디는 어떻게 살았을까. 속편은 그들 각자가 여전한 현역인 상황을 비추며 시작한다. 사회 초년생 티를 완전히 벗은 앤디의 출근길. 지나는 길에 비슷해 보이는 벨트를 손에 들고 차이를 설명하는 듯한 좌판 판매원을 보며 웃음 지을 정도로, 앤디에게서는 여유가 엿보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런웨이가 마련하는 쇼의 준비가 한창인 사이에 앤디가 도착한 곳은 저널리즘 어워즈다. 얼마 전 쓴 연재 보도로 수상했다는 기쁨도 잠시,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알람은 앤디를 포함한 탐사보도 전문지 '뱅가드'의 동료들 모두가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받았음을 알린다. 모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한 결정 앞에 "저널리즘은 여전히 존X 중요하다고요!"를 외치는 앤디의 항변은 무색하기만 하다.
다른 선택지 없는 사람들의 투지
그사이 런웨이에도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거대한 광풍 앞에 천하의 미란다도 휘청인다. 줄어든 판매부수, "치실로 써도 될 만큼" 얇아진 잡지의 두께, 하이패션 브랜드들의 광고가 아니면 매체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앞에서 미란다는 이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코트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던 악마 같은 편집장이 아니다. 광고주들을 설득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주기로 협의하는 것이 미란다의 현실이다.
마침 런웨이의 구원투수로 앤디가 등판한다. 노동착취 브랜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 런웨이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새로운 기획 에디터로 부름받은 것이다. "얘 누구야? 내가 만났던 사람이야?" 미란다가 여전히 앤디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부러 무시하는 사이, 미란다의 오른팔이자 오랫동안 런웨이를 지켜온 선임 나이젤(스탠리 투치)이 그간의 변화를 설명한다. "우리 종이 잡지 관뒀어. 다 디지털이지. 요즘 사람들은 오줌 누면서 스크롤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패션 업계를 둘러싼 전작의 화려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급변한 미디어 환경을 꿰뚫는 통찰력을 발휘한다. 소셜미디어를 넘어 인공지능까지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든 현재, 지면 기반의 레거시 미디어들은 날로 위태롭다. 그렇다고 '좋은 저널리즘'이 미디어를 구원할 수 있는가? 앤디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사명감은 분명 좋은 글을 만들지만, 좋은 기사라고 해서 독자들에게 널리 도달하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도 어느새 클릭을 유도하는 글쓰기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자본의 논리에 앞서는 저널리즘의 가치는 순진한 낙관이다.
디지털 시대에 인쇄 매체가 맞닥뜨린 도전의 과제들이 비단 미디어 환경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운 미래가 수 분, 수 초 단위로 돌진해 오는 사이에 우리의 삶은 계속 흔들린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위한 헌신, 인간이 이뤄낸 눈부신 성취 같은 것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력함으로 뒤바뀌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미란다와 앤디는 롤러코스터처럼 이어지는 반전과 반격의 소동 안에서 "타이타닉 옆에서 함께 가라앉는 판자"를 부여잡고서라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켜나가며 버티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패배라 해도 그들은 말한다. "다른 선택지도 없잖아." 1편이 앤디의 성장이었다면, 2편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우아하게 지는 해가 되기를 택한 미란다의 성장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가치를 지키려 하는 미란다와 앤디의 상황은 영화 바깥, 끊임없는 위기론에 맞서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공명하기도 한다. 각자 살아남기 위한 분투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는지 알 순 없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아직 우리의 몫이다. 혹시 이 시리즈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하느라 화려한 쇼와 눈이 휘둥그레지던 럭셔리 브랜드 컬렉션 향연의 색채를 줄인 것인지 걱정 중이라면,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런웨이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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