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배달앱 판을 바꾸다

정혜인 2026. 5. 3. 13: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렵도·명화·영화 패러디…'B급' 광고로 단숨에 1위로
신춘문예·치믈리에까지…소비자를 '팬'으로 만든 놀이
10년 지나도 여전한 '배민다움'…이제는 상생의 책임까지
그래픽=비즈워치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화면에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그려지던 '수렵도'와 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전통 악기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남자가 말을 타고 달린다. 오래 전 우리 조상의 것처럼 보이는 옷을 입었는데 손에 든 건 중국집 배달 철가방이다. 갑자기 화면 한쪽에서 짜장면 그릇이 날아온다. 말을 탄 남자가 그 그릇을 한 손으로 멋있게 낚아채더니 계속 달려나간다. 곧 묵직한 목소리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이 광고의 주인공은 화면 속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든 철가방에 쓰인 이름, '배달의민족(배민)'이었죠. 2014년 초 배민이 내놓은 이 티저 광고는 아주 단순합니다. 하지만 한민족을 가리키는 '배달 민족'과 고구려 수렵도를 엮어 단박에 브랜드 이름을 각인 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짧은 'B급' 광고는 배달앱 시장의 판을 뒤집게 됩니다.

명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지금은 배민이 배달앱 시장 점유율 6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1위지만 원래는 후발주자였습니다. 2011년 배민이 처음 등장했을 땐 이미 요기요와 배달통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죠. 그런데 수렵도를 패러디한 티저 광고 이후 나온 B급 광고들이 히트를 치면서 배민은 배달앱의 대명사로 떠올랐습니다.

티저 광고와 같은 해 선보인 명화 패러디편이 대표적입니다. 수트를 차려입은 류승룡이 고풍스러운 미술관처럼 보이는 곳에서 벽에 걸린 명화들을 바라봅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듯 손을 엑스자로 긋고 한숨을 쉽니다. 왜일까요? 배달이 빠졌으니까요. 그리고는 밀레의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같은 고전 명화 속 인물들이 배달음식을 즐기는 모습으로 전환됩니다. 명화 속 인물로 분한 류승룡이 진지한 표정으로 치킨을 뜯거나 짜장면을 먹는 장면이 폭소를 자아냈죠.

이어진 광고인 '전단지편'은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 예고편처럼 만든 광고였는데요. 류승룡 외에도 여러 배우들을 출연시켜 정말 영화처럼 찍었습니다. 오토바이 추격전에 자동차 폭발신에 건물 복도 추격신까지,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던 장면들이 1분 동안 긴박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배우들이 진지하게 외치는 대사는 또 배달과 관련된 재치있는 한마디들이었습니다. 액션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는 의미 없는 전단지로 가득해요" "탕수육 하나 먹겠다고 평생 쿠폰이나 모을래?" 같은 대사가 터지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진짜 영화가 개봉하는 줄 알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고 아예 이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들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배민이 선택한 'B급 감성'은 단순히 촌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든 촌스러움이었죠. 진중함과 유머러스함을 갖춘 배우 류승룡을 캐스팅한 것부터가 그랬습니다. 진지한 듯 웃기고 촌스러운 듯 감각적인 그 묘한 균형이 배민만의 B급이었습니다. 기존 대기업 광고들이 '우리가 최고'라고 외칠 때 배민은 '함께 노는' 느낌을 주면서 주 타깃인 2030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광고를 넘어 문화로

배민은 정말로 소비자들과 '함께 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시작한 '배민신춘문예'가 대표적입니다. 음식을 주제로 한 창작시 공모전인데 당시 1등 상품이 365마리의 치킨이었죠. 여기서 탄생한 명작이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자주 회자되는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입니다. 이외에 '박수칠 때 떠놔라 -회' 같은 센스 있는 작품들도 쏟아졌고요. 

2017년 열린 '치믈리에 자격시험'도 배민의 이름을 알린 유쾌한 행사였습니다. 치킨과 소믈리에의 합성어인 '치믈리에'는 국내 유통 치킨의 맛과 향과 식감을 파악하는 전문가를 뽑는 시험이었습니다. OMR 카드에 답안을 적고 듣기평가까지 치르는 진짜 시험 같은 구성이었죠. 실제 자격증도 만들어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배민은 소비자를 '고객'이 아니라 '팬'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광고로 눈도장을 찍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브랜드를 만들려는 전략이었죠.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지 않아도 팬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재생산하며 배민을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실제로 배민을 좋아하는 열성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팬클럽 '배짱이(배달의민족을 짱 좋아하는 이들)'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인기 K팝 가수도 아닌 배달앱에 팬클럽이라니 생소한 이야기였는데요. 1기 모집 당시엔 경쟁률이 1대 1이었다고 하는데 2년 뒤 3기 400명을 모집할 땐 무려 20만명이 온라인 시험을 치를 정도였습니다.

배민만의 독특한 브랜딩에 사용된 또 다른 무기는 '서체'와 '굿즈'였습니다. 2013년 출시된 '한나체'를 시작으로 여러 서체를 무료로 배포하면서 배민만의 독특한 글씨체가 브랜드 정체성이 됐습니다. 지금도 배민 하면 떠오르는 그 글씨체가 바로 한나체입니다.

배민은 이 서체를 활용해 굿즈도 만들었는데요. '다 때가 있다'고 적힌 때밀이 수건, '깨우면 안대'라고 쓰인 수면 안대가 대표적이고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적힌 문구와 비슷한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이쁩니다'라고 적힌 손거울, 영화 '달콤한 인생'의 유명 대사를 패러디해 '넌 내게 목욕감을 줬어'를 새긴 목욕 세트도 있었죠.

브랜드 이름조차 크게 박아놓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굿즈의 글씨체와 위트만 보고도 배민의 상품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상품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이 곧 배민의 정체성이 됐죠.

여전히 배민답게

이런 B급 감성과 팬들과의 놀이는 배민을 배달앱 1위로 만들었습니다. 10년이 넘게 흐른 현재 배민은 여전히 배달앱 시장 점유율 60% 가까이를 차지하는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7월 배민은 또 한 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앱 출시 15주년을 맞아 '배민2.0 리브랜딩'에 돌입한 건데요. 배민의 상징적인 브랜드 컬러 민트 색은 좀 더 밝고 산뜻한 톤으로 바꿨고요. 폰트도 한나체 대신 '워크체'로 교체됐죠. 그렇다고 단순히 디자인만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서비스 철학과 미션까지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배민의 새 미션은 '세상 모든 것이 식지 않도록'입니다. 그간 재미있고 위트 있는 브랜드로 승부했다면 이제는 보다 진지하게 느껴지는 미션인데요. 배달앱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1위로서 외식업주와 소비자와 라이더 모두의 불편과 불만을 실시간으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민은 여전히 위트 있고 친근합니다. 촌스럽고 엉뚱하지만 어딘가 감각적인 그 B급 감성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배민 안에 살아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상생'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날 뿐입니다.

10년 전 배민이 광고 속에서 던진 질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는 지금도 답이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밤참'을 사랑하고 여전히 배달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배민도 여전히 사랑받는 1위고요. 그런 만큼 배민이 새로운 미션처럼 외식업주와 소비자, 라이더 모두를 위한 배달 생태계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