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에 깨어난 항일의 혼 윤가현 선생 첫 추모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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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활동가였던 윤가현(1912~1950년) 선생을 기리는 첫 추모제가 지난 2일 강진군 대구면 수동마을 생가 터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장재성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해방 후 좌우 대립과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잊혔던 윤가현 선생의 삶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국가 서훈과 명예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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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활동가였던 윤가현(1912~1950년) 선생을 기리는 첫 추모제가 지난 2일 강진군 대구면 수동마을 생가 터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사)장재성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해방 후 좌우 대립과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잊혔던 윤가현 선생의 삶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국가 서훈과 명예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추모제 현장에는 장재성 기념사업회의 형광석 회장과 박동기 상임고문, 황광우 인문학자, 윤 선생의 딸 윤순초(87) 씨를 비롯한 유족과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윤가현 선생은 1930년 강진 대구면 보통학교 동맹휴교를 주도해 목포형무소에서 2년옥고를 치렀으며,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조직 운동으로 3년간 투옥되는 등 일제강점기 치열한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광복 후 1947년 남로당 전남도위원회 목포시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 행적으로 인해 1950년 6·25 전쟁 중 대둔산에서 사망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박동기 상임고문은 추도사에서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잊혔던 윤가현 선생의 독립 공적은 반드시 정당하게 재평가되어야 한다”라며 국가 차원의 서훈과 명예회복 필요성을 주장했다.
80대 고령의 나이에 아버지의 첫 추모제를 마주한 딸 윤순초 씨의 눈물은 참석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개인의 추모를 넘어, 우리 현대사의 아픈 단면을 직시하고 통합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남철희 기자 chou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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