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대신 도깨비... 서구 소재 벗어나 ‘K소재’로 승부 보는 게임 업계

안별 기자 2026. 5.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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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이기몹의 ‘무사: 더티 페이트’ 예고편. /엑스박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게임 공식과 같았던 드래곤과 마법사 같은 서구식 중세 판타지 대신, 갓을 쓴 도사, 임진왜란 영웅, 좀비가 창궐한 서울 낙원상가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K 소재’가 게임 업계 대세가 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로 다져진 글로벌 K컬처의 영향력을 지렛대 삼아, 글로벌 시장의 문턱을 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적 소재 다루는 방식 정교해져

최근 국내 게임사가 개발 중인 신작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적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과거보다 훨씬 정교해지는 모양새다. 3월 엑스박스 쇼케이스에서 스튜디오 이기몹의 ‘무사: 더티 페이트’가 대표적이다. 2027년 출시 예정인 이 게임은 17세기 조선을 덮친 ‘경신대기근’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삼았다. 단순히 배경만 빌려온 게 아니라, 빈민촌과 뒷골목 등 당시 풍경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지난달 28일 출시한 조이시티 ‘임진왜란: 조선의 반격’은 고증에 승부를 걸었다. 이순신·권율 장군 등 실존 인물을 캐릭터화한 것은 물론, 당시 사용된 병기들을 철저히 고증해 현장감을 높였다. 넥슨게임즈가 개발 중인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고전소설 ‘전우치전’ 속 주인공인 전우치를 현대적 감각의 ‘K슈퍼히어로’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서구의 마법사나 전사가 아니라 조선 도사만의 독특한 액션으로 글로벌 게임 이용자를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현대 한국의 일상도 녹인 게임들

전통 소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 한국의 일상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넥슨이 개발 중인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는 좀비가 창궐한 서울 낙원상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엔씨의 ‘신더시티’는 강남 삼성동과 판교 일대를 사실적으로 구현해 미래형 도시 전장을 만들 예정이고, 크래프톤이 작년 출시한 ‘인조이’는 서울을 모티브로 한 도시 ‘도원’에서 한국 특유의 일상 풍경을 구현해 ‘한국판 심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펄어비스가 준비 중인 ‘도깨비’ 역시 한국적 색채를 극대화한 세계관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체된 게임 시장, 신선함으로 ‘틈새시장’ 노린다

게임 업계가 한국적 소재 발굴에 적극적인 이유는 신선함 때문이다.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사무라이와 닌자 같은 일본 문화나 삼국지 같은 중국 문화는 이미 익숙한 소재지만, 갓을 쓴 도사나 조선의 궁술은 글로벌 게임 이용자에게 신선한 ‘틈새시장’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소재를 받아들일 문화적 토양도 비옥해졌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이 전 세계인의 안방을 점령하면서 한국적 배경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4년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40억달러(약 21조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갓이 해외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듯, 이제는 한국적 소재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IP(지식재산권)가 된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고 있다. ‘K소재’라는 껍데기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게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펄어비스 ‘붉은사막’이 예시로 꼽힌다. 흔한 중세 판타지가 배경이지만, 압도적인 그래픽과 액션, 여러 서브 콘텐츠 같은 ‘게임성’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5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한국적 소재를 어떻게 세련된 게임 문법으로 녹여내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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