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움으로써 당신을 돕는 사람

최승현 2026. 5. 3. 12: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일엔 쉽니다] 교회 성폭력 피해 생존자 유진
가해자 재판부터 주변인 연대 거쳐 변호사가 되기까지
지나온 경험들 5월부터 연재
"내 기록이 다른 생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뉴스앤조이-최승현 편집국장] 먼저 이번 '주일엔 쉽니다'는 앞선 기사들과 하나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전제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인터뷰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필명이다. 

이번 인터뷰 대상 '유진'(가명)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중학생 때 교회 전도사에게 성폭력을 겪었다. 신앙의 언어를 내세웠기에, 피해가 피해인지를 자각하고 용기를 내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몇 년 후 큰마음을 먹고 내 담임목사에게 사건을 알렸지만, 목사는 전도사가 아닌 피해자를 탓했다. 이후에도 그랬다. 교회와 노회가 합심해서 그의 신앙을 박탈하려 작정했나 싶을 정도로 교회는 그를 밀어냈다. 너 나 할 것 없이 유진의 행실을 나무랐고, 가해자를 불쌍히 여겼다. 

<뉴스앤조이>는 몇 년 전 그의 사건 공론화 및 재판 과정에서 몇 차례 그를 만났다. 인연은 이어졌다. 그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차에, 마침내 올해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됐다. 합격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이제 글을 쓰려 한다는 것. 사실 그전부터 알음알음 계약 의사(?)를 <뉴스앤조이>에 알려 오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유진은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에서 정신실 작가(Ruach루아심리영성연구소)가 이끄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글쓰기 모임을 계속해 왔다.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는 자조 모임이었다. 정 작가의 권유로, 자기가 보고 듣고 느꼈던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던 차였다. 

수사와 재판 그 이후, 유진은 어떤 여정을 거쳐 왔을까. 그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4월 초 서울 용산역 앞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몇 년 전 교회 성폭력 사건 취재 과정에서 <뉴스앤조이>를 만난 유진. 그는 자신이 보고 겪은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사진 제공 유진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은 가해자의 항소였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고, 인터뷰 중 가장 그의 감정을 동요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1심 판결문은 열 번도 넘게 읽었다. 고소에 나아가기 전까지 이것이 피해인지, 피해를 피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혼란스럽고 힘겨웠던 7년의 시간은 1심 판결로 인정을 받은 듯했다. 가해자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1심 판결에 불복했다. 항소 이유는 사실 오인과 양형 부당. 쉽게 설명하면 사실 오인은 죄가 아닌 걸 죄라고 판결했다는 뜻이고, 양형 부당은 지은 죄에 비해 형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죄는 인정하지만 형이 무겁다고 항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지은 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가해자는 일부 혐의는 무죄여야 한다고, 그리고 전부 유죄라 치더라도 4년을 선고한 건 너무 무겁다며 두 가지를 다 주장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절망했다. 가해자가 회개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깨달았고, 사람이기를 포기했구나 싶었다. 가해자가 항소를 한 날 처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한강에 가기도 했다. 

그를 살린 건 주변인들이었다. 대학 생활 시절, 짐 싸들고 와서 한 달간 같이 생활한 친구가 있었다. 혼자 있기 힘들어할 때면 함께 있어 주는 또 다른 친구도 있었다. "내가 과연 피해자가 맞을까?" 되물을 때마다 항상 지지하고 함께해 줬던 친구들, 병원 선생님, 교수님, 그리고 기반센. 또 고향 교회와 달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믿고 지지해 줬던 대학 시절 교회 청년부 목회자와 청년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고 유진은 회상했다. 

바로 변호사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사실은 활동가가 '될 뻔'했다. 살아는 있는데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졸업이 다가왔다. '사회 진출' 시기여서 뭘 하든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기반센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2020년 2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다가 엎어졌다. 그때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도움받는 사람에서 돕는 사람으로

그때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법 공부를 해야겠다는 건 자기 사건에서 체감한 여러 불친절과 불평등, 불합리 때문이었다. 결심의 복선이 이미 깔려 있었다고 해야 할까. 절차와 상황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헤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검찰에서 조사받으러 오라고 하면 갔고, 오지 말라면 안 갔다. 시키는 대로만 했다. 어떤 과정 속에 있는지 잘 모른 채 사건은 진행되고 있었다.

재판이 시작된 후의 일화다. 공판 일정에 맞춰 법원에 가려 했는데, 국선변호인이 "피해자는 안 와도 된다"고 얘기했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아니, 내가 신고를 했는데 왜 당사자가 아니에요?" 황당했지만, 형사법정에 가면 피해자는 좌석도 없다. 그냥 방청석에 앉아야 한다. 재판 출석 의무도 없다. 단순한 절차 안내였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와 피고인만 당사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위계' 여부였다. 공소 사실 자체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으므로, 가해자는 위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켜서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이용했는지가 쟁점이므로, 다시 말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유진은 이 사건에서 위계란 "지위나 계층 따위의 등급"(位階)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아니, 전도사고 학생인데 왜 위계가 없냐, 위계가 있지." 탄원서를 열심히 써서 냈다. 교회가 얼마나 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곳인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생각했던, 목사가 지위를 이용해 교인에게 범행을 저지르는 사건은 위계가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법정에서 위계란 무조건 '속인다'는 뜻이었다. "속였다는 거구나. 그럼 탄원서를 잘못 썼네. 다시 써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 한쪽 구석에는 법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 입시, 변호사시험 준비를 지겹게 했다. 사진 제공 유진

그래도 막상 시작하려니 난제가 많았다. 우선 로스쿨은 학벌(모든 대학이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과 학점, 활동을 주요하게 본다. 미리 준비한 게 아니어서 여러 모로 유진은 불리했다. 대학 다니면서 시작된 가해자 재판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코로나19는 한 곳에 틀어박혀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2년 공부 끝에 로스쿨에 합격했다. 

로스쿨 합격이 다가 아니다. 원래 법대생이 아니었던 만큼 외우고 공부할 게 더 많았다. 그래도 치열하게 또 3년간 공부를 했다.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해야 비로소 변호사가 될 수 있다. 시험과 공부의 연속.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친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가해자에 대한 분노? 생계 유지? 물음에 그가 답했다. 

"로스쿨 공부를 하면서, 계속 상담도 받고 글도 쓰고 또 치유의 과정을 지나가고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살고 싶어졌어요. 다시 살고 싶었고, 살아가는 게 재밌어졌어요. 미래를 봤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괴롭지만 변호사가 되고 나서 할 일들을 상상하면서. 분노도 아니었고 생계도 아니었어요.

로스쿨 2학년 봄에 가해자가 출소를 했어요. 그때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학교 근처에 비슷한 체격의 사람만 보이면 얼어붙고 막 토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기반센을 통해서 상담을 했는데, 상담이 마무리될 때쯤 상담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이제 시험 끝나면 곧 동료로 뵙겠네요.' 그 말이 제게 엄청 충격적으로, 좋게 다가왔어요. 나는 늘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그분이 '곧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비전을 제시해 주시니까 너무나 큰 원동력이 되는 거예요. '진짜 지겹고 힘들지만, 이것만 끝나면 이제 더 이상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게 되게 좋았어요."

선한 사마리아인? 나를 위해서

한국교회에 대한 마음은 저버렸다. 믿음의 언어로 폭력을 저지르고,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옹호했던 그 사람들이 찬양을 부르고, 두 손 들어 소리치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모습이 소화되지 않는다. 그런 신앙 행위들이, 말씀을 읽거나 찬양을 듣는 게 거룩해 보이지 않고 거북하다. 물론 도운 사람도 있었다. 대학에 올라와서 교회를 다닐 때 만난 청년부 목사는 그가 겪었던 일을 '성폭력'이라고 명명해 줬고, 피해자로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왔다. 그에게는 여전히 인사를 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과 화해할 준비가 되셨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과정 중에 있다. "아니 어쩌라고요"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들었다. "믿어요. 믿는데… 아직도 좀 어려워요. 나는 뭔가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 살게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도하다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난 하나님이 너무 좋다.' 그래도 아직은 다가가기가 좀 무서운 것 같아요. 때가 오겠죠. 그때가 자연스럽게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도 유진은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러니한 말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 보호받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다.

"그 당시 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어른들이 많았어요. 저도 '저분들이 뭔가 아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지나고 들어보니 다들 알고 있었더라고요. '뭔가 좀 심상치는 않다'는 걸요. 근데 아무도 그걸 제지해 주지 않았던 거죠.

아직도 교회를 못 나가고 있는데, 그래도… 뭐랄까, 적진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어요. 교회를 다니고 싶다기보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교회에 있는 청소년기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아이들은 신앙이 없이 오잖아요, 교회를. 어른들이 데려다 놨는데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요. '구해 주고 싶다' 이런 마음은 아니고 정말 지켜 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울컥하게 하는 말에 조금 고약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까지 선한 사마리아인 DNA로 살려고 하나. 흑화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나. 공익이고 뭐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게 좋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나. 답이 돌아왔다.

"전부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게 저의 치유 여정이거든요. 성향이 그냥 그래요. 재밌어요. 사람들 만나는 게,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그런 게 신나요."

그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유진은 밝고 따뜻했다. 모든 과정은 남이 아닌 자기를 위해 한다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그가 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사진 제공 유진

인터뷰를 하면서도 유진은 자신이 드러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아직은 용기가 더 필요하다. 또 이런 마음도 있다. 나의 이야기가 성공을, 재기를, 회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다른 피해 생존자의 주변인들이 나의 사례를 들면서 '쟤는 저런데'라며 압박을 가하지는 않을까? 그런 점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다. 목적은 명확하다. "왜 아무도 이 시간에 대해서 나한테 말해 주지 않았지?" 이 물음에서 출발했다. 사건을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신고를 하고, 공론화를 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은 오히려 괜찮았다. 지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제는 다 끝난 이후였다. 재판 결과가 잘 나왔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세상에 "던져진" 느낌이 났다. "다른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마땅한 기록들이 별로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기다렸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겨운 공부가 끝나서 여유가 생기니 쓰는 거예요." 변호사 초년생으로 소속 로펌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미뤄 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5월부터 <뉴스앤조이>에 'Me Too - 나도 말한다'라는 이름으로 월 2회 연재를 한다. 피해 경험과 고소·고발 과정에서의 그 힘들었던 사법 절차, 그리고 교회와 교단이 피해자를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 또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까지. 사건 이후 계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으려 한다. 

"'다 끝났는데 왜 나 아직도 이렇게 힘들지?', '남들도 다 그런가?'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신만 그런 거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가 봐요. '다 그래요, 저도 그렇던데요' 이런 글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요. 저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재는 5월 6일부터 매월 1, 3번째 수요일에 진행됩니다.

최승현 shchoi@newsnjoy.or.kr

Copyright ©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