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세지고 부모는 늙는다…부족한 인프라가 잉태한 비극 [기자수첩]

취재를 위해 4학년 교실에 들어섰을 때, 방금 본 A군을 다시 마주하며 반가움도 잠시 A군은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자고 졸랐다. 나가자는 말 대신 손을 들어 문밖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최근 은광학교로 전학 온 A군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수업 시간마다 밖을 찾는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영상을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수업을, 영상 기자는 촬영을 맡아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A군을 돌보는 일은 기자 몫이 됐다. 당시 교실에는 A군을 포함해 4명의 학생, 선생님은 한 명이었다.
A군은 이내 기자가 자신을 전담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선생님 대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나가자던 아이는 거절이 반복되자 화가 난 듯 힘을 주기 시작했다. 기자 역시 A군과 같은 나이 아들을 키우고 있어 어느 정도 힘은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실랑이는 고작 30분 남짓이었다. 처음엔 "선생님 수업 들어야지, 곧 아빠 오실 거야"라며 타일렀지만, 끈질기게 잡아끄는 힘에 지쳐 나중에는 "선생님, 아빠" 두 단어만 연발했다. 다행히 A군이 직접적인 폭력을 쓰지 않았지만 분을 참지 못하는 아이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3시간 같은 30분이 지나고 A군의 아버지가 학교에 도착했다. 건장한 체격의 A군 옆에 선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작고 왜소해 보였다.
■특수학교 진학률 26%, 갈 곳 없는 아이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11만561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전문적인 특수학교에 다니는 인원은 3만27명(약 26%)에 불과하다. 특수학급(6만5966명)이나 일반 학생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학급(1만9254명)에 배치된 학생이 대다수다.
전문 인프라를 갖춘 특수학교 수용률이 낮다 보니 많은 학생이 일반 학교로 향하거나, 아예 학교 밖으로 밀려난다. 대안학교나 가정 보육을 택한 아이들은 교육부 통계에서조차 누락된 실정이다.
안지훈 특수교육협회 협회장은 "서울만 해도 특수학교 미설치 자치구가 8개나 된다"며 "특수학교 부족으로 가정 보육하거나 일반 학교에 배치돼 등교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사망 원인 1위 '자해', 돌봄 지옥에 갇힌 가족들
학령기 시설 부족도 심각하지만, 더 큰 절벽은 성인이 된 이후에 찾아온다. 발달장애인의 생애 주기는 비장애인은 물론 일반 장애인에 비해서도 확연히 짧다.
2020년 국립재활원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사망 시 평균연령은 76.7세이나, 자폐성 장애인은 23.8세, 지적장애인은 56.3세로 집계됐다. 특히 자폐성 장애인의 사망 원인 1위가 '고의적 자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지적장애인의 사망 원인 17위에는 '가해(타살)'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가족이 모든 짐을 짊어지다 결국 비극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시 출입 기자 당시 2023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만난 한 어머니 절규는 여전히 머리에 박혀있다.
"아이 힘은 점점 세지는데 나는 늙어만 간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누가 돌보나. 시설이라도 없으면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부모가 있겠느냐."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는다. 국가가 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존속살인'이라는 이름의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수학교 설립과 성인기 돌봄 인프라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다.
박동준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