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천인'까지, 이제 '부활'만 남았다… 말러리안의 10년의 집념

조동균 2026. 5. 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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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천인 교향곡' 리뷰
리더십과 기획력 인정 받은 예술감독 진솔
성숙한 관객 매너 여전한 숙제로 남아
말러리안 창단 10주년 기념 '천인'교향곡 공연 사진 / 사진. 말러리안 제공.

어떤 공연은 완벽함으로 기억되고, 어떤 공연은 시도 자체로 역사가 된다. 지난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말러리안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은 후자였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은 단순히 규모만 거대한 작품이 아니다. 공연의 본질적 가치는 음악적 완성도 이전에 존재한다. ‘천인’이라는 부제가 상징하듯, 압도적인 편성과 막대한 예산의 압박으로 국공립 단체조차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작을 민간 예술단체가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다.

특히 이번 무대는 2005년 임헌정과 부천시향이 일궈냈던 ‘말러 신드롬’과도 비교된다. 당시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낸 역사적 성취를 한 민간 단체가 완주에 대한 집념만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17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말러리안의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는 이제 교향곡 2번 ‘부활’만을 남겨두고 있다.

118명의 오케스트라와 224명의 합창단, 8명의 독창자까지 총 350인의 연주자가 빚어낸 거대한 사운드는 객석을 압도하며 황홀경을 선사했다. 이날 공연에서 무엇보다 주목받은 것은 지휘자 진솔이 보여준 리더십과 음악적 담력이었다. 수백 명의 연주자를 이끌고 말러 8번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는 과정에서 그는 개척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로 시작한 1부에서 그는 시종일관 밀도 높은 속도감을 유지하며 작품 전체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비록 몰아치는 전개 속에서 파트 간 잔향이 정교하게 맞물리지 못한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이는 거대한 음향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지휘자의 해석이자 승부수로 읽혔다.

(왼쪽부터)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메조소프라노 김세린, 소프라노 김수정, 소프라노 이윤정 / 사진. 말러리안 제공.

성악가들의 가창 부문에서는 명암이 엇갈렸다. 소프라노 이윤정은 1부와 2부를 관통하는 가장 안정적인 가창으로 무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합창석 우측 뒤편에서 등장해 ‘영광의 마리아’를 노래한 장혜지는 정확한 피치와 긴 호흡의 프레이즈로 천상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메조소프라노 김세린 또한 안정적인 발성과 균형감 있는 음색으로 무대를 지탱했다. 반면 일부 성악가는 악보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해 솔로의 시작 타이밍을 놓치거나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배음을 뚫지 못하는 음량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립합창단과 부천시립합창단, 위너오페라코러스 등 184인조 성인합창단과 40인조 김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모인 연합 합창단은 이번 공연의 중심축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된 위너오페라코러스는 압도적인 음량으로 공연의 볼륨감을 책임졌다. 하지만 여러 단체가 모인 구조에서 드러난 한계도 분명했다.

2부 도입부에서 테너와 베이스가 같은 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메아리처럼 텍스트의 반복이 공간을 채워야 했지만, 기대만큼 입체적인 효과를 만들지 못했다. 가사의 종결 자음 처리 역시 단체별 차이가 드러나며 음향적 응집력이 떨어졌다. 특히 피날레에서 제2테너가 맡아야 할 하이 C가 거의 들리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작곡자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마지막 상승 구조에서 정점의 긴장감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예술감독 진솔이 이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거대한 편성의 무게를 견디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목관군과 금관군의 음정 난조가 작품의 긴장을 흔들며 체력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연의 집중에 지장을 준 훼방은 객석에서 나왔다.

1부의 숭고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울린 휴대전화 벨소리와 2부의 내밀한 피아니시모를 가른 ‘카톡’ 알림음은 350여 명의 연주자가 공들여 쌓아 올린 집중을 단숨에 깨뜨렸다. 예술적 순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가 결국 성숙한 관람 문화임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말러리안 예술감독 진솔 / 사진. 말러리안 제공.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보낸 기립박수에는 단순한 감동 이상의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이날 무대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한 해석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의 의지다. 말러리안이 10년의 시간을 견디며 쌓아 올린 이 불완전한 우주는 역설적으로 한국 민간 클래식계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제 완주까지 남은 공연은 단 하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이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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