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 49. 화폐 속 위인들의 위대한 환생
대학생 제안서에서 출발…1년 산학협력 결실
![조폐공사와 국민대가 산학 협력으로 개발한 화폐 캐릭터 이미지 원본. (왼쪽부터 세종대왕 ‘훈민’, 신사임당 ‘다임’, 이순신 장군 ‘순식’) [조폐공사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dt/20260503100548922clft.jpg)
잠깐, 지금 지갑을 한번 열어보자.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본 게 언제였던가. 세종대왕의 눈매, 곤룡포의 섬세한 무늬, 그 뒤에 새겨진 혼천의까지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카드 한 번, 스마트폰 화면 한 번이면 결제는 끝난다. 지폐를 꺼낼 일이 줄어들수록, 그 위의 얼굴들도 우리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간다.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고,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했으며, 신사임당은 예술과 학문을 넘나들었다. 그런 인물들이 지금 지갑 깊숙한 곳에서 먼지를 맞고 있다. 현금 없는 세상이 위인들도 함께 지워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조폐공사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그 물음 하나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원니버스(Wonniverse)’, 화폐 단위 ‘원(Won)’과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이다.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이 현대에 환생해 새로운 임무를 이어간다는 세계관이다.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몇 개를 홍보물에 얹는 발상이 아니었다. MZ세대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 인물들을 다시 살려내겠다는, 꽤 나 진지한 도전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 프로젝트의 첫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대상이 대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2025년 4월, 국민대학교 미디어·광고학부 학생들이 공공 PR 수업에서 조폐공사를 연구하다 먼저 홍보실 문을 두드렸다. “화폐라는 소재는 역사, 가치, 문화적 의미를 한꺼번에 담고 있어 세계관 마케팅에 최적화된 조건”이라는 게 학생들의 판단이었다. 조폐공사는 그 참신한 제안을 흘려듣지 않았다. 토론회, 1:1 심층 인터뷰, 업무협약을 차례로 거치며 약 1년간의 산학협력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됐다.
![디지털 세상에서 현금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조팸스(JOFAMS: 조폐+패밀리 합성어)’ 캐릭터(훈민, 다임, 순식)들의 활동 모습. (AI 이미지 활용) [조폐공사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3/dt/20260503100550236aaod.jpg)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올해 3월 30일, 서울 광흥창역 ‘화폐제품판매관’에서 세 인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민, 순식, 다임. 만 원권의 세종대왕은 문화사업 총괄자 ‘훈민’으로, 100원짜리 동전 속 이순신 장군은 주화 조각가 ‘순식’으로,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은 화폐 디자이너 ‘다임’으로 환생했다. 세 캐릭터를 묶어 부르는 이름은 ‘조팸스(JOFAMS)’, ‘조폐’와 ‘가족(Fams)’을 합친 말이다.
사실 세계관 마케팅이 낯선 전략은 아니다. 대전시의 ‘꿈씨패밀리’는 꿈돌이를 중심으로 가족 캐릭터를 확장해 축제, 굿즈, SNS 콘텐츠로 뻗어나갔다. 민간 기업도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왕자 캐릭터로 바나나맛우유와 메로나를 왕국의 신하로 만들었고, 소비자들은 댓글과 2차 창작으로 자발적으로 그 세계에 뛰어들었다.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새로’는 ‘새로구미’ 캐릭터 하나만으로 광고 없이도 팬덤을 형성했다.
조팸스 프로젝트가 이들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여기다. 공공기관 최초의 세계관 마케팅이라는 점. 딱딱한 규정과 느린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판다’는 발상 자체가 어색했던 공공기관이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김성수 국민대 교수는 이를 두고 “공공 PR의 새로운 유형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와 예술적 미학을 재미와 이야기로 풀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훈민이 화폐 굿즈를 통해 화폐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순식이 기념주화 위에 기록의 가치를 새기고, 다임이 보안 인쇄 기술로 전통과 디지털을 연결하는 이 세계관은, 결국 화폐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문화자산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업이다. 웹툰, 애니메이션, 굿즈, 팝업 이벤트로 이어질 콘텐츠 확장 계획은 K-컬처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써나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꽤 역설적인 이야기다. 현금 없는 세상이 화폐 속 인물들을 지워가고 있지만, 바로 그 위기가 그들을 다시 불러냈다. 지갑 속에서, 동전 지갑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세종대왕과 신사임당과 이순신 장군이, 이제 틱톡과 인스타그램과 팝업스토어 위에서 깨어나고 있다.
화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꺼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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