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 바꿔야 새 풍경 봅니다"…순두부집 사장님의 '인생 환승' [괜찮아, 다시 인생]

김희선 2026. 5.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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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포동 순두부 맛집 '삼화식당' 운영하던 송정희씨
갑상선 질환으로 반백년 가업 문 닫고, 디지털 장벽 넘어 50대 구직자로
어린이집 조리사 취업 후 '봉급생활자'로 인생 2막
"자존감 바닥쳐도 배움 멈추지 않아…인생의 환승구간, 잘 지나왔습니다"
시부모님께 물려받아 운영하던 '삼화식당'이 문을 닫던 날, 송정희씨 부부 /사진=본인 제공

[파이낸셜뉴스] 부산 남포동의 번화가, 한때 종업원 17명이 쉴 새 없이 배달통을 나르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책자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순두부 맛집'이 있었습니다. 1968년 시부모님이 문을 연 뒤, 며느리 송정희씨(61) 부부가 이어받아 반백년을 지켜온 '삼화식당'입니다.

잡지 '선데이 서울'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했던 맛집은 2017년의 마지막 날, 조용히 문을 닫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생의 전부였던 가마솥을 뒤로 하고 이제는 아이들의 따뜻한 밥상을 책임지는 어린이집 조리사로 인생 2막을 사는 송정희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아니 왜 그만두세요? 그럼 이 맛은 어디서 보나요"… 눈물로 끈 가마솥 불

시부모님이 개업한 식당은 그 시절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자연스레 가업이 된 식당을 물려받은 송씨 부부는 평생의 업이라 생각하며 성실하게 장사를 해왔고요. 송씨는 식당의 메인 주방장을 맡아 쉴 새 없이 찌개를 끓여내고, 밑반찬을 만드느라 하루 종일 식당에서 살아야 했죠. 송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할 만큼 제 삶의 모든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그런 송씨에게 반백 년 이어온 가업을 접는다는 것은 생계 이상의 의미였죠. 하지만 쉼 없이 달려온 몸에 적신호가 켜지자,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평생의 업이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이상 질환이 있다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건강이 우선이라며 고심 끝에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죠. 관할 세무서에 폐업 신고를 하러 간 날, 직원분이 극구 만류하며 '아니 왜요? 왜 그만두세요? 그럼 어디 가서 이 순두부를 먹어요?'라고 물으시더군요. 그 의구심을 뒤로하고 2017년 12월 31일, 반백 년의 서사를 마치고 폐업 신고를 했습니다."

마지막 영업 날에는 큰딸이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맛있는 순두부 많이 먹고 자라 이렇게 어른이 되었어요. 전국 일등 순두부를 이제 못 먹어서 아쉽지만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울컥한 송씨는 그제야 '이제 진짜 마지막 날이구나' 싶어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할 만큼 했다, 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영업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과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공허함에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송정희씨가 운영하던 '삼화식당'의 순두부찌개 한 상. /사진=본인 제공

사장님에서 50대 '경단녀'로… 디지털 장벽 너머의 고군분투

식당 문을 닫았을 때 송씨의 나이는 53세였습니다. 그리고 50대에 다시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차가웠죠. 송씨는 "구직자로 나서보니 내 나이가 적지는 않다는 부분에서 내심 멘탈이 쪼그라들기도 했다"고 그때 기억을 되짚었습니다.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세상은 많이 변해있었고 송씨의 20년 자영업 경력은 구직 시장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했죠. 이력서 한 장 보낼 때도 '이메일 접수 요함'이라는 조건이 붙어 송씨의 앞을 '디지털 장벽'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직업소개소는 구시대적 산물이 되어 있었고 모든 일자리가 이메일 접수를 요구하더군요. 구청 디지털 배움터에서 전산 교육을 받고 여성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해 필요한 자격을 갖추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2~3번의 탈락을 거치면서 자존감이 제로가 되는 경험도 했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아 그런 걸까?', '자영업 경력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나?' 의심이 가는 의심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는 막막함이 밀려올 때마다 마음을 관리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러다 영영 사회로부터 멀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 때마다 공부에 매진했고, 하나하나 자격을 갖춰나갔습니다. "이러다 보면 내 전문성을 알아봐 주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대어 도전을 이어나갔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면접 후에도 채용이 누락되는 등 연이은 실패에 우울증 위기도 있었고요. 그때마다 송씨는 남편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버텨냈습니다.

0.49의 염도로 빚어낸 인생 2막… "월급날이 기다려집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자리는 어린이집 조리사였습니다. 20년 경력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곳이었기에 안도감마저 들었죠. 그래서 송씨는 "생애 마지막 일터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어른들의 입맛을 맞추던 손길이기에, 아이들을 먹일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재취업했을 때의 기분은 첫 아이 낳는 기분처럼 경이로웠습니다. 다만 유아용 음식은 칼질부터 달랐습니다. 최대한 작게 썰고 자르고 다지는 인내심이 필요했죠. 염도 조절도 쉽지 않았습니다. 성인 먹거리와 달리 어린이집 조리사는 국물 염도를 0.49까지 맞추는 것이 적정선입니다. 성인 먹거리에서 유아용 먹거리로 바꿔 조리하는 건 쉽지만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어린이집 조리사로 새 삶을 살게 된 지 벌써 7년째, 송씨는 매일 매출을 걱정하던 사장님에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일정한 급여를 받는 봉급생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늘 가게 일이 1순위였는데 이제 주5일 근무로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일상을 살게 됐다며 '시간 부자'가 되었다고 귀띔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려받는 기분입니다. 예전에는 급여를 지불할 때마다 한 달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월급날이 기다려집니다.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의 극명한 대조를 경험한 것이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생겼고, 글 쓰는 작가가 되어 플랫폼에 저의 경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가업을 접으며 찾아온 뜻밖의 기쁨입니다."

어린이집 조리사로 7년째 근무 중인 송정희씨 /사진=본인 제공

"앉은 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송씨는 자신의 경험을 '인생의 환승구간'이라 부릅니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는 망설였지만 결정하고 나니 큰 산 하나를 넘었다는 대견함이 생겼다"고 돌아본 송씨는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처럼 인생의 지도를 다시 펴고 환승에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늘 가던 길은 익숙해서 편하지만 다른 길로 가보는 것도 긴 인생 여정에 다양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앉은 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없다'는 문구가 늘 제 마음을 새롭게 환기합니다. 저는 지금의 자리에서 건재하고, 내친 김에 일흔이 됐을 때도 다시 한번 삶을 바꿔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꿔봅니다."

삼화식당의 가마솥 불은 꺼졌지만, 그의 인생 2막은 이제 막 가장 맛있는 온도로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후식으로 더 맛있고 달콤한 인생 3막을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주변에 멋지게 인생 2막을 시작한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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