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근로’에서 주체적인 ‘노동’으로… 2026년, 제자리를 찾은 노동절 의미 [굿모닝 인천 - 이승기 변호사의 사건수첩]

김요한 기자 2026. 5.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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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를 넘어 '노동'으로: 2026년, 이름에 담긴 진짜 주권
1886년 시카고의 총성과 '8시간 노동'의 절실한 시작
일제강점기 조선 노동자들, "우리는 권리를 가진 인간이다"
전태일의 불꽃과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로 쓴 현대사
당신의 일상이 곧 노동의 가치...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 방송 : 경인방송 <굿모닝 인천, 박주언입니다> (FM 90.7MHz 오전 7~9시 방송)

■ 코너 : 사건수첩

■ 진행 : 박주언 앵커

■ 인터뷰 : 이승기 변호사

■ 방송 다시 듣기 [클릭]

*인터뷰 저작권은 경인방송에 있습니다. 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박주언 : 경인방송 90.7MHz 굿모닝 인천 박주언입니다. 2부는 <사건수첩> 시간입니다. 오늘은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 노동자의 인권 관련한 주요 사건들이 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서강대학교 겸임교수이면서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의 이승기 변호사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십시오.

◇ 이승기 : 예, 안녕하세요. 

◆ 박주언 : 오늘 노동절인데 이렇게 나오셔서 감사합니다.

◇ 이승기 : 아유, 당연히 나와야죠.
이승기 변호사 2026.5.1 [경인방송 시사뉴스팀]

◆ 박주언 : 그래서 오늘 얘기가 또 노동절 얘기일 텐데 오늘이 2026년 5월 1일 노동절이잖아요. 달력에 이제 빨갛게 표시가 되어 있는데 사실 예전에는 이날이 좀 애매한 날이긴 했던 것 같아요.

누구는 쉬기도 했고, 뭐 누구는 출근을 했고, 누구는 수당을 받고, 누구는 뭐 그게 무슨 날이야 하면서? 그냥 일하기도 하고. 그런데 올해부터는 이제 법정 공휴일 지정이 되고 격상이 되면서 전 국민이 함께 기념을 하고 쉴 수 있는 그런 날이 됐는데 그런데 여기에 또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더 있더라고요.

지난해까지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불렀었는데 올해부터는 노동절로 바뀌었어요. 이게 이름만 단순히 바꾼 게 아니라 이 안에 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근로라고 하면 왠지 성실하게 일해라, 부지런히 일해라라는 이런 느낌이 강합니다. 약간 사용자 측면에서 부르는 느낌이 강하죠. 역사적으로도 근로보국, 근로봉사처럼 국가를 위해 내 몸 바쳐 일한다라는 뉘앙스가 있었고요. 그런데 노동은 좀 다릅니다.

내가 내 시간, 내 몸, 내 기술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뜻이 좀 분명합니다. 그래서 쉽게 말해 노동자는 뒤에서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이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도 5월 1일을 노동절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 노동계에서도 계속해서 노동절로 바꾸자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노동절로 이름이 바뀐 것은 결국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정면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도 있는 겁니다.

◆ 박주언 : 그러고 보니까 진짜 근로자라는 말은 사용자 입장에서 부르는 말인 것 같고 노동자는 내가 노동을 한다. 자기 주체적인 얘기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하필 5월 1일인지 대부분의 나라가 이날로 기념을 하잖아요. 그냥 달력 보고 고른 건 아닌 것 같은데.

◇ 이승기 : 당연히 아니고요. 5월 1일은 어찌 보면 피와 희생으로 이제 새겨진 날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작은 1886년 미국으로 거슬러 가는데요. 당시 노동자들이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심하면 14시간 넘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계속 공장에 붙잡혀 있는 건데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외친 게 하루 8시간만 좀 일하게 해달라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리고 이 요구를 들고 1886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약 30만 명에서 50만 명 사이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이제 시카고 인근 공장에서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공식 사망자 수가 4명인데요. 노동자 4명 정도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로부터 한 또 며칠 뒤인 5월 4일날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이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리는데요.

처음인 이게 평화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강제로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경찰 쪽으로 폭탄을 던졌고요. 여기서 경찰이 한 11명 정도 가 사망하는 그런 총 7명인가 9명인가 하여튼 그 꽤 많은 인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경찰이 또 노동자를 향해 또 총을 발사했고요. 노동자가 또 11명 정도 사망하는 그래서 경찰과 노동자 양쪽 모두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혹한 사건으로 이게 또 번집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진짜 그 노동절의 시작이라고 하면 그냥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 이 얘기일 뿐이었는데 이게 결국에는 서로 간에 피로 번진 그런 사건이 됐군요.
1886년 당시 헤이마켓 사건을 다룬 판화 [사진=시카고 역사 박물관 웹사이트]

◇ 이승기 :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그다음인데요. 폭탄을 누가 던졌는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고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사법 당국이 어떻게 했냐 하면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이 노동운동을 이끌던 주동자 8명을 폭동죄로 재판에 넘깁니다.쉽게 말하면 범인은 잘 모르겠지만 너희가 그 분위기를 만들었으니 책임져라 이런 식으로 이제 한 거죠.

그래서 결국 그중 8명 중에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요. 그중 4명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3명에 대해서는 사면이 되는데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사건이 전 세계 노동운동의 상징이 됩니다.

그러면서 하루 8시간 노동할 권리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 이게 이제 국제적 의제가 되면서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 인터네셔널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노동자의 연대와 권리를 기념하는 날로 선언했고 그게 오늘날 노동절까지 이어진 겁니다.

◆ 박주언 : 근데 참 이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헤이마켓 사건이라는 거 아까 알려주신 것처럼 미국에서 벌어졌는데 정작 미국은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지 않는다고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9월 첫 번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했고요. 호주는 주마다 좀 날짜가 다릅니다.

그리고 일본도 5월 1일이 아니라 11월 23일을 근로 감사의 날로 기념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뭐 대부분의 나라가 5월 1일을 기념을 하지만 아닌 나라도 꽤 있다라는 거고요.

그런데 미국이 5월 1일을 피한 이유가 바로 정치적 부담 때문인데요. 헤이마켓 사건이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운동과 연결되면서  5월 1일 노동절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 크게 기념하는 날이 된 겁니다.

특히 북한, 중국, 러시아가 대표적인데요. 북한의 경우는 1950년부터 이미 5월 1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올해부터 지정을 했는데.

◆ 박주언 : 그러니까요. 차이가 많이 나네요.

◇ 이승기 : 그러면서 5.1절 또는 국제 노동절이라고 부르면서 아주 크게 기념하고 있고요. 중국의 경우에는 아예 노동절을 춘절 국경절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연휴로 보고 5월 1일부터 5일까지를 황금 연휴 시즌을 아예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노동절이라는 게 사회주의 정부에서 많이 기념하는 날이다 보니까 미국은 이날을 그대로 쓰면 사회주의 기념일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보고 아예 어떻게 했냐, 1882년 뉴욕 중앙노동연맹이 노동절 행사를 열었던 9월을 노동절로 택한 겁니다.

그래서 같은 노동절이라도 날짜 안에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가 들어 있다는 겁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전 세계적으로 같은 날짜가 아니라는 것도 이렇게 정치적인 속내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한데 이제 우리나라 얘기로 넘어와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5월 1일 노동절, 이 역사가 꽤 오래된 거라고요.
독일 코블렌츠서 열린 독일노총의 노동절 집회 [사진=연합뉴스]

◇ 이승기 :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1일 노동절 행사가 처음 열린 게 1923년입니다.이때가 일제 강점기였는데요.

당시 조선노동연맹회가 서울에서 노동절 행사를 열면서 어떤 요구를 했냐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라, 임금을 인상하라, 실업을 막아달라, 그리고 산업재해와 질병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 달라,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게 당연한 요구지만 당시가 식민지 상황이었는데 이걸 공개적으로 외친 건 정말 엄청난 일인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도 권리를 가진 인간이다. 우리를 함부로 부르지 마라라고 선언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노동운동의 첫 장면이라고 보면 되고요. 아주 뜨겁게 이 시작을 연 겁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역시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민지 상황이지만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국민이었다라는 게 좀 와닿는데 그 흐름이 멈추지 않았다고 하고요. 대표적인 사건이 원산 총파업이라고요.

◇ 이승기 : 예, 그렇습니다. 1929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하에서 원산 총파업이 있었는데요. 당시 원산 노동자들이 일본 자본가, 사용자들의 임금 삭감과 차별 그리고 장시간 노동에 맞서 대규모 파업을 벌였습니다.

단순히 월급 좀 올려주세요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노동자들이 일본 자본의 낮은 임금에 혹사당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 구조 자체를 문제 삼은 겁니다.

그래서 원산 총파업은 노동운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에 또 독립운동의 성격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시작부터 밥그릇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요구하고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부터 시작한 그런 역사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 박주언 : 이렇게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그런 결로 보면 그럴 것 같지가 않은데 해방됐다고 해서 바로 노동절이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 오히려 5월 1일 노동절이 한동안은 밀려났었다고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이 해방 이후에는 좌우 이념 대립이 워낙 또 심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보호해야 할 권리라기보다는 뭐 감시하고 통제해야 될 대상으로 취급을 했고요. 특히 이승만 정부 같은 경우에는 이제 권위주의 정부잖아요.

그래서 5월 1일을 공산주의 진영에서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날이다라고 보면서 아예 어떻게 하냐, 1958년에 아예 이 노동절을 대한노총창립일인 3월 10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날짜를 바꿨고요. 이후 이 3월 10일로 쭉 이어져 오는데요.

특히 1963년에는 근로자의 날을 처음으로 유급 휴일로 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쉬는 날은 아니고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을 하다 보니까 공무원이나 교사 등은 제외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그때부터 근로자의 날로 쭉 왔고 뭐 하지만 좀 뭐랄까 모두의 노동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보기에는 좀 부족한 측면이 있었던 겁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그런 기억들이 있는데 그럼 우리가 다시 5월 1일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는 그때는 언제예요?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청와대가 노동절 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2026.5.1 [사진=연합뉴스]

◇ 이승기 : 긴 싸움 끝에 이제 1994년이 되는데요. 그 전에 이제 1970년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 이후 노동현실에 대한 이 사회적인 각성이 좀 커졌고요. 그러면서 1980년대 노동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면서 노동계에서는 3월 11일 어용 노동절이다라고 비판을 하면서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로 되돌려야 한다라고 계속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그러면서 이제 김영삼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근로자의 날이 다시 5월 1일로 환원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올해부터는 이 명칭도 노동절로 되돌리고 유급휴일 적용도 모든 직종으로 넓혔는데요. 말하자면 지금은 이제 날짜도 되찾고 이름도 되찾고 그 의미까지도 되찾은 셈이 되는 겁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이제 제자리를 잡았다라고 하면서 정말 이분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구나라는 게 바로 전태일 열사 얘기인 것 같은데 왜 이 청년의 죽음이 우리나라를 전체를 흔들어버린 사건이 됐는지 좀 짚어주시겠어요?

◇ 이승기 : 전태일 열사는 1948년 대구의 가난한 집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요.

그러다 평화시장 피복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당시 노동 환경은 지금 보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하루 14시간 넘게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차 한 잔 값 정도인 50원 정도라고 합니다 일당이.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어린 여공들, 어린 여공들이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이 좁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점심도 굶은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박봉이었고요.

그런데 전태일 열사가 본 건 여기서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습니다.병들어도 버려지고 다쳐도 보호받지 못하고 어려도 기계처럼 일해야 되는 현실이었는데요. 특히 전태일 열사가 함께 일하던 여공이 폐렴이 걸렸는데 해고를 당합니다. 그걸 보면서.

◆ 박주언 : 아프다고 해고당한 거예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이건 개인이 참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이제 노동 운동에 눈을 뜨게 되는 겁니다.

◆ 박주언 : 이게 생각해 보면 꽤 가까운 우리의 역사잖아요. 실제 이런 일이 있었고 뭐 우리 부모님 세대 얘기다 보니까 그렇게 해서 뭐 가족들 먹여 살렸던 여공 얘기 이런 건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근데 그때 그러면 근로기준법이 없었나 싶은데 법은 있었대요. 근데 현장에서 적용이 안 된 건가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법전에는 당연히 근로기준법이 있었지만 다만 이제는 노동 현장에는 그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는 그 모순을 발견하고 근로기준법 해설책을 구해서 혼자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법률 용어를 붙잡고 읽으면서 법에는 이렇게 돼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일을 하지? 라고 되물은 겁니다.

그러면서 평화시장으로 돌아와서 본인이 공부한 내용을 주변에 알리면서 바보회, 그리고 삼동친목회 같은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업주들과 근로 조건을 어떻게 보면 좀 근로 조건을 좀 더 노동자 친화적으로 만들겠다고 협의도 했지만 문제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결국 그러면서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뭘 준비하냐면 동료들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켜지지 않는 법이라면 이 법전이 무슨 소용이냐 라는 항의성으로 이걸 준비하는데 그런데 그때 경찰이 시위를 막아선 겁니다. 시위를 진압을 하니까 당시에 만 22세의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을 하는데요.

그러면서 외친 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이런 구호를 외치는 겁니다. 어찌 보면 이건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당시 힘들게 살던 이 노동자들의 삶을 압축한 절규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 박주언 : 요즘은 사실 시대가 AI 시대라서 진짜 기계들이 일을 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그 말이 참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은데 이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한 청년의 비극으로 끝나지를 않았어요.

◇ 이승기 : 그렇습니다. 이게 참 우리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이제 외면하던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고요. 그전까지는 이제 경제 성장이라는 말 뒤에서 너무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다 가려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먼지 속에서 병들고 누군가는 어려서 자기 권리조차 몰랐고요. 누군가는 쓰러져도 보호를 받지 못했는데 전태일 열사가 사람을 기계처럼 쓰면서 만든 성장이 과연 정당한가, 이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 겁니다.

이 사건 이후에 2주 만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됐고 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약 2,500개의 노동조합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노동 문제가 모든 국민이 노동 문제에 각성을 하면서 노동조합이 마치 전국에 걸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겁니다.

◆ 박주언 : 그런데 이렇게 전태일 열사 사건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그런 노동 사건들 이런 게 있지 않았나요?

◇ 이승기 : 그렇죠. 대표적으로는 동일방직 사건과 YH무역 사건이 또 있습니다.

◆ 박주언 : 동일방직 사건 이건 뭐예요?
1970년대 노동 운동을 벌인 동일방직 인천공장 노조 [사진=연합뉴스]

◇ 이승기 : 당시 동일 방직은 노동자 약 1300명 중에 1200명 이상이 여성이었고요. 그러나 이제는 노동 노조의 간부들 그러니까 회사의 간부들이죠. 회사 간부들은 남성들이 독점을 하면서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 어용 노조를 또 만든 그런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1972년, 여성 노동자들이 단결을 해서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최초로 여성 지부장을 선출하며 민주적인 노조를 건설합니다. 그런데 이 1970년대, 유신 체제였잖아요. 이때 회사는 중앙정보부와 같은 이 국가 권력과 결탁을 해서 노조를 와해시키고자 탄압을 하는데요.

특히 1976년에 이 여성 노동자들이 옷을 벗은 여성의 몸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알몸 시위를 벌였는데도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연행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78년에는 노조 대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 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에 난입을 해서 투표하려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인분을 뿌리고 입에 집어넣는 반인륜적인 폭언을 저질렀습니다. 당시에 경찰은 현장에 있었음에도 이걸 방조했고요.

이 사건으로 124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이들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재취업도 못하게 막았는데요. 뭐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어찌 보면 또 대한민국의 한 노동 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인분 뒤집어 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사진=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기증자료] 

◆ 박주언 : 그러게요. 근데 이게 나중에 정부에 의해서 기획된 공작이었다 이게 밝혀졌잖아요.

◇ 이승기 : 그렇죠. 중앙정보부 관계자의 양심 선언을 통해 밝혀졌는데요. 그러면서 이 사건은 유신 체제의 폭압에 맞선 인권운동이자 또 민주화 운동으로도 평가가 된 겁니다. 그리고 또 YH무역 사건이 있는데요. 이 사건은 노동 운동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YH무역이 1970년대 초반에 국내 최대 가발 수출 업체로 성장을 했는데 이 경영진이 자금을 해외 유출하고 무리하게 사업 확장하면서 경영난에 빠지면서 아예 일방적으로 폐업을 권고합니다. 그러자 187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호를 걸고 8월 9일, 서울 마포구의 신민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당시 정부가 1200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신민당사에 난입을 해 노동자와 국회의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강제 진압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대의원이었던 21세 김경숙 열사가 추락해 사망하는데 당시 정부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한 타살로 확인이 됩니다.

◆ 박주언 : 그렇군요. 결국에 이 오늘의 노동절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휴일이 아니라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과 우리 노동자들의 희생이 쌓여서 만들어진 그런 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승기 : 그렇죠. 특히 방금 말한 YH 사건 같은 경우에는 그로 인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명되면서 이제는 어떻게 보면 부마항쟁으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12.6 사건으로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는 그런 사건으로도 가는데요.

결국에는 뭐 이런 뭐 어찌 보면 이런 굵직한 노동 사건들이 이어지고 또 우리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게 지금의 노동절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2026 세계노동절 인천대회 [사진=연합뉴스]

◆ 박주언 :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정말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하루에 그냥 8시간 일하게 해달라 이렇게 외쳤던 세계의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나라 식민지 조선이었는데 거기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요청한 거, 그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희생, 또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까지 다 이렇게 쌓이면서 오늘의 노동절이 된 것 같은데...

사실은 우리가 매일 타는 지하철, 버스, 식당도 그렇고요. 공장도 그렇고 병원, 학교, 공무원 분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다 전부 노동이 쌓여서 국가가 돌아가는 거거든요. 그게 당연히 존중받아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오늘 변호사님 덕분에 한번 잘 살펴봤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 이승기 : 예, 감사합니다.

◆ 박주언 : 지금까지 <사건수첩> 이승기 변호사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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